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캐나다에서 살며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는 운전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 학교, 운동, 종교 그 모든 활동은 집에서 쉽게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대중교통도 한국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다양한 수단이나 노선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한다. 특히 운동을 하는 둘째는 다른 도시로 여기저기 원정 경기를 가기 때문에 꽤 장거리를 운전할 때가 잦은 편이다.
먼 거리를 운전하다 보면 졸리거나 지루한 시간이 이어지기 때문에 나는 유료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신청해 음악을 곧잘 듣는데, 운전을 하며 음원을 선택하거나 조작을 쉽게 할 수 있지 않아 아이들에게 주로 핸드폰을 맡기고 음악을 고르게 한다. 처음 선곡을 맡겼을 때 아이들은 여기 아이들이 자주 듣는 팝송을 고르곤 했는데, 어느 날인가 일부러 한국 노래를 위주로 재생하라고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몇 번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한국 노래에 익숙해졌고, 또 최근 K-pop의 인기와 더불어 아이들도 한국 노래를 직접 찾아 듣는 경향이 생겼다.
처음 캐나다에 오면서부터 나는 아이들이 현지의 언어와 문화에 쉽게 익숙해지고 노출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잊지 않고, 한국 문화를 자주 접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스스로 한국 노래를 좋아하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점차 아이들이 자라며 함께 의견을 주고받게 되면 될수록 같이 무언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 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아이가 자기가 요즘 좋아하는 노래라며 음악 하나를 추천했다.
“엄마, 요즘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데 한 번 들어볼래요?”
“그래? 그러자! 엄마 한 번 들려줘 봐.”
“네! 좋아요. 엄마도 좋아할 거 같아요.”
말을 마치고 아이가 음악을 트는데, 멜로디가 정말 익숙했다. 점점 곡이 진행되면서 가사가 들리며 문득 이 노래가 과거 나의 고등학교 시절 한참 유행하던 ‘캔디’라는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용히 가사를 기억해 따라 부르니, 아들이 아는 노래였냐고 묻더라.
“그럼! 이 노래 엄마 어린 시절 노래야. 원 곡은 H.O.T라고 엄마 어렸을 때 정말 인기 많았던 보이그룹이었어. 그때 이 노래가 진짜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었을껄?”
“아, 저는 NCT 노래라고 알았는데요.”
“아마 리메이크 했나보다. 신기하네.”
1996년도의 노래를 2022년에 후배 보이 그룹이 리메이크를 해서 불렀더라. 멜로디 라인이나 곡 구성은 그대로라 과거에 듣던 곡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전혀 낯선 기분이 아니었다. 더불어 순간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나보다 30살이나 어린 아들이 나의 어린 시절의 노래를 다른 버전이긴 하지만 지금 즐기며 듣고 있다는 사실이 무언가 신기하기도 하고, 또 같은 음악으로 함께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다.
갓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와 점점 마음을 어떻게 나눌까, 대화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었는데 한 편으로 이렇게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도 느꼈다. 게다가 나의 문화권과 아이의 문화권이 다르다는 것은 꽤나 큰 걸림돌이었는데 그런 걱정이 해소되는 기분도 들었다. 음악은 언어와 문화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니까.
나의 고향 나라에 살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에게 나와 같은 상식과 이해를 심어주기에 한계가 있다. 게다가 나는 아이에게 향하는 한국 문화를 전하는 단 하나의 창구지만 아이가 경험하는 이 나라의 것은 여러 다양한 경로를 통하기 때문에 언어와 문화의 공통점이 순식간에 줄어들기만 한다. 그런데 음악 하나로 아이와 나는 그 거리감을 순식간에 줄일 수 있었다. 30년 차이가 나는 아이와 30년 가까이 차이 나는 음악을 또 다르게 접하고 함께 듣고 따라 부르며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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