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거대한 돈의 위력을 등에 업고 세상의 부조리는 날로 커지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우리 삶의 고유한 영역까지 파고들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을 품게 한다. 그런데도 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서 여전히 우리의 삶과 사회 속에는 돈으로 가치를 측정하고 거래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며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옳은 말이지만 사랑도 우정도 돈이 있어야 표현할 수 있고, 증명되는 세상에서 가진 것이 많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돈 없이 어떻게 우린 안의 소중한 것들을 꿋꿋이 지키고 가꿀 수 있을까?
동학 개미 운동에 불을 지피고, 모든 국민이 금융 문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던 금융 전문가 존 리는 ‘커피 대신 주식을 사라’고 말했다. 돈을 잠재우지 말고, 투자해서 돈이 일하게 하라는 것이다. 확신에 찬 그의 강의를 들으며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밀려오는 무력감은 더욱 커졌다. 돈이 돈을 번다는 세상에서 투자할 돈이 없는 사람들은 알아도 뭘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커피 한 잔도 아끼란다. 네가 가난한 건 없는 주제에 커피를 사 마시는 사치에서 비롯된 거라고 누군가 조소를 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 커피 한 잔을 아껴서 내가 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불멸의 존재라고 한다면 나는 커피 값을 아껴 미래의 더 나은 삶에 투자할 것이다. 내게 가까운 내일이라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오늘의 행복을 기꺼이 내려놓고 수고를 감수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유한한 한 생을 살며 가까운 미래조차 감히 예측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었고, 갑자기 시장에 많은 돈이 풀리면서 집값이 하루아침에 천정 부지로 오르는 것을 봤으며, 현재 사람들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의 고통 속에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최근 ‘캐나다의 삶의 질과 생활비 실태’를 조사한 연방 통계청은 캐나다 주민의 상당수가 재정적으로 불안한 상황을 견디고 있으며, 5명 중 1명은 생활 지출이 5백 달러만 늘어나도 생계 유지가 어렵다고 밝혔다.
경제적 발전과 풍요 속에서 돈의 힘을 보고 경험한 우리는 암울한 현실에 적잖이 긴장하게 된다. 쌀 한 톨 동전 한 닢도 허투루 쓰지 않고 근검 절약하는 것이 미덕이던 부모님 세대를 보고 자란 나로서는 어려운 작금의 경제 상황 속에서 허리띠를 졸라 매고 더 아껴야 함이 마땅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실존에 주목하고 오늘을 기쁘고 명랑하게 살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 있다면 취하여 얻기로 했다.
예년에 비해 빨리 찾아온 봄 기운에 이끌려 노란색 들꽃이 그려진 화사한 쿠션을 사고, 장미 한 송이를 사서 꽃병에 꽂았다.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의 콘서트 실황을 영화로 만들어 상영한다는 소식에 표를 예매하고, 그들을 상징하는 보라색 티셔츠를 주문했다. 잠시 이민자의 삶 속에 드리워진 그늘에서 벗어나 극장에서 우리말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함성을 지르며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에 도취되었다. 가족들의 환한 웃음 속에서 오늘 내가 돈으로 산 행복의 가치는 금전으로 매겨질 수 없음을 알았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돈의 위력 앞에서 보잘것없어진 삶의 소중한 순간과 가치들을 떠올리니, 돈으로 살 수 있는 작은 행복이나마 사수하자 다짐하게 된다. 그것이 내가 돈을 버는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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