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함 줄리아헤븐 김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상반된 이미지의 미나리와 파김치는 둘 다 나를 지칭하는 말이다.
집에 있을 땐 파김치가 되어 축 늘어져 있다가 문밖을 나서기만 하면 바로 즉시 생기가 돌며 파릇파릇한 미나리가 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그런데 이 별명을 지어준 사람이 친구가 아닌 울 엄마이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선 딸의 신체적, 정신적 특징을 정확히 간파하신 훌륭한 어머니로 꽤 인기 있는 우리들의 엄마로 통했다. 감기와 몸살로 이틀 앓고 있으면 울 엄마는 삼 일째 되는 날 나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슬그머니 전화하신다. 집에 와서 쟤 좀 데리고 나가라고 하시는 거다. 당연히 쟤는 나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에게 두둑이 용돈을 쥐여 주시며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영화도 한 편 보고 오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엄마의 처방은 언제나 특효약이 되어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씻은 듯이 앓던 병이 낫는 희한한 기적을 일으켰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몸살을 떨어내어 본래의 내 모습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친구들은 진심을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너, 언제 아프니?” 철이 없긴 나나 친구들이나 매한가지이던 시절이었다.
미나리와 파김치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지 않았다. 독특한 향을 지닌 쑥이나 미나리 같은 야채를 유달리 싫어했는데 희한하게 향이 강해도 깻잎 냄새는 오히려 식욕을 돋워 주었다. 고소한 양념장에 절인 깻잎김치는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반찬 중에 으뜸으로 꼽는다. 하지만, 쑥 냄새보다 더 싫어했던 미나리 향은 마치 품질이 좋지 않은 화장품 냄새 같아서 비위에 거슬렸다. 식탁에 미나리무침이 올라오면 코를 킁킁거리며 손을 뻗어 저만치 밀어 놓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나를 미나리나 파김치가 아닌 개코라고 하셨다. 내게 홀대받는 찬 중에는 파김치도 있는데 이것 또한 식탁에서 여지없이 나를 개코로 만들었고 엄마의 타박을 들어야만 했다. 파김치에서 풍기는 젓갈 냄새도 역하고 흐물거리는 모양새뿐 아니라 입 안의 감촉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 마디로 성숙하지 않은, 요즘 말로 초딩 입맛 같다고 해야 할까? 어찌 되었든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내 입맛이 세월의 급물살을 타고 변하기 시작했다.
아들과 TV 보던 중에 방송에서 개그우먼 김영자 씨가 파김치를 담그는 장면이 있었다. 동료 개그우먼의 집들이에 가져갈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는데 모두 파김치 맛에 감탄하며 순식간에 접시가 매번 비워지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단 한 번도 담가보지 않은 나조차 시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불끈 솟아오를 만큼 화면 안의 사람들은 파김치에 매료되어 있었다. 내게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화가 생겨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밀어내지는 않을 만큼 무엇보다 식탁에서의 개코가 사라졌던 때였다. 재료를 구입하고 다듬고 절이고… 과정을 제대로 보여주는 관찰 카메라 덕분에 그대로 따라 하기 쉬웠다. 지난 유월 초입의 그 당시는 예정된 수술을 받으면 회복하는 동안 부엌살림은 아무래도 아들의 몫이 될 것 같아 밑반찬을 한 가지 한 가지 만들어 놓던 시기였다. 특히 그날은 내 인생에 가장 긴 수술 시간을 눈앞에 둔 전날 저녁이었다. 주어진 여건 속에 최선이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엄마라는 타이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 부닥쳤을 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모성애를 가끔 전파를 타고 뉴스로 접하기도 한다. 나 역시 수술 전날 밤에 파김치를 담그고 있으니…. 영상을 보며 입맛을 다시던 아들의 모습에 주저 없이 일어섰다. 수술에 필요한 금식 시간을 두 시간여 남겨 두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다듬어 놓은 쪽파의 단단한 아래 흰 부분에 액젓을 살살 뿌려 놓고, 배와 생강과 양파, 마늘과 새우젓, 그리고 매실청을 믹서기에 갈아 버무릴 양념을 만드는데, 나는 한 가지 더 사과도 갈았다. 고춧가루와 액젓을 붓고 함께 섞어서 양념을 만드니 젊은 날에 기겁했을 냄새가 묘하게 향긋하게 느껴졌다. 양념소를 만드는 동안 절인 쪽파에 고춧가루를 뿌려 주고 하나하나 양념소에 치대서 가지런히 통에 눕히고 통깨를 솔솔 뿌리니 눈에 담기는 모양새만으로도 침이 꿀꺽 넘어간다. 먹기 좋게 돌돌 말아 입 안에 넣어 오물거리는데 기대 이상으로 정말 맛이 좋았다. 육십이 평생 처음 담근 파김치라고 하기엔 너무 근사하고 맛도 훌륭해서 눈물마저 핑그르르 감돌았다.
“파김치가 이런 맛이구나…”
파김치의 의미와 이미지가 젊은 날에 생각하던 것과 달라졌다. 잘 익어서 축 늘어진 파김치가 입안에 담기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얼마나 맛깔스러운지 무엇보다 어느 음식과 먹어도 궁합이 맞았다. 라면과 먹어도 맛이 있고, 맨밥에 파김치만 얹어 먹어도 밥도둑이 되어 있고, 심지어 스파게티에 곁들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카레라이스와 짜장면뿐만 아니라 간편하고 별다른 재료 없이 단순한 음식에도 어우러지는 파김치가 정말 신기했다. 맛있는 파김치가 되려면 다양한 재료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각각 지니고 있던 고유의 맛을 내려놓아야 한다. 생강과 양파, 새우젓과 멸치 액젓처럼 독특한 개성의 냄새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섞이면서 자기의 향을 드러내지 않아야 풍미를 주며 제대로 맛이 난다. 쪽파 또한 양념이 잘 밸 수 있도록 숨이 죽여져야 양념도 겉돌지 않고 스며들 수 있다. 단 한 가지의 재료라도 도드라지면 맛있는 파김치가 될 수 없듯이 수많은 사람과 어우러져 사는 우리도 자기만 옳다는 식의 주장은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축 늘어지고 보기 흉한 모습으로 빗대었던 파김치가 알고 보니 정말 강한 향을 가진 재료들이 자기를 숨기며 희생하듯 서로 화합하여 일궈낸 새로운 맛의 창조였다. 파김치야말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지 않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이미지로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다소 엉뚱한 발상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렇게 파김치의 의미를 되새기다 보니 갈라디아서 3장 26~28절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예전엔 상반된 의미로 나를 지칭했지만, 이제는 나이는 들었어도 파릇파릇한 미나리처럼 생동감 넘치는 끊임없는 열정을 갖고 또 본래 재료의 맛에서 거듭난 파김치처럼 사람들과 섞이어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진정한 미나리와 파김치로 거듭난 사람으로….
일찌감치 울 엄마는 딸내미가 세상 속에서 모나지 않은 둥글둥글한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라셨기에 파김치라고 부르셨나 보다. 그 덕택에 예순둘에 파김치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미나리와 파김치는 내게 딱 들어맞는 정말 멋진 별명이다. 이참에 미나리나 파김치로 예명을 가져 볼까?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2022년 9월 3일 식탁 위에 올려놓은 파김치에 매료되던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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