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지난 70년간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어요. 한국인 모두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지난 15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프랑스 참전 용사 사진전 개막식.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남유럽협의회가 마련한 이 행사에 프랑스인 참전 용사 6명의 육성을 담은 8분짜리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고맙다”였다.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줘서 고맙다” “(6·25전쟁의 폐허에서) 번영하는 나라를 일궈 줘 고맙다” “우리가 평생 간직해 온, 좋은 기억을 선사해 줘 고맙다”.
자크 그리솔레, 폴 로랑, 세르주 아르샴보, 미셸 오즈월드, 앙드레 다차리, 마르셀 브누아 등 6명의 참전 용사들은 삶에 대한 희망과 기운이 가득할 20대 초반의 나이에 한국에 와 참혹한 전쟁을 겪었다. 여름의 찌는 더위, 살을 에는 겨울 추위 속에 인민군·중공군과 혈투를 벌였고, 하나둘 스러져 가는 전우들 곁에서 몸과 마음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어찌 보면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를 한국이지만, 그들은 젊음을 바쳐 지킨 한국의 성공에 기뻐했고, 한국에 여전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아르샴보씨와 오즈월드씨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70년 전 한국이 떠오른다”며 “그때나 지금이나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들은 무고한 백성들이다”라며 안타까워 했다. 다차리씨는 또 “북한의 권력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그들도 물론 통일을 원하지만, 남한을 손에 넣어 권력을 장악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참전 용사들은 70년 전 국제 정세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6·25전쟁은 왜 일어났는가’란 질문에 로랑씨는 “김일성은 남한마저 손에 넣어 단일 국가를 만들려 했다”며 “그래서 우리가 한국에 갔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지금 (프랑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은 것 같다”며 “공산주의가 한반도 전체를 집어삼키는 것을 막기 위해, 유엔군이 자발적으로 한국에 갔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이) 잊지 않고 상기시켜줬다”고 했다.
그들은 남북의 통일과 분단의 현실에 대해서도 냉엄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다차리씨는 “남북한의 통일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김일성의 일족은 (통일 과정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 북한 지도자들과 함께라면 과연 통일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고도 했다. 전쟁과 분단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재 왕국’을 누려온 이들이 평화롭고 민주적인 통일에 진심으로 응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비극이 오늘날 유럽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오즈월드씨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6·25전쟁과 똑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며 “(더 큰 권력을 위해) 먹잇감을 찾아 나선 독재자가 전쟁을 벌인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처럼 우크라이나도 분단이 돼 다른 한쪽이 계속 침공의 위협을 받으며 살 것 같다. 정말 안타깝다”고 했다.
만약 20대의 어린 나이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리고 또 다시 한국에서 침략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그들은 참전의 결심을 할까. 로랑씨는 “당연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제 94세가 다 되어가지만, 나는 그때와 여전히 똑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그저 과거의 추억이 머문 곳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영혼이 함께하는 땅이었다. 그리솔레씨는 “한국인들은 항상 우리 가슴속에, 내 인생 내내 함께하고 있다”고 했고, 오즈월드씨는 “내 마음은 항상 한국에 가 있다”고 했다.
영상 말미에 몇몇 참전 용사들이 “나는 한국에 꼭 돌아가겠다. 그래서 내 전우들 곁에 묻히겠다”며 “곧 만납시다, 한국”이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자, 행사장에서 영상을 지켜보던 70여 명 모두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국인은 물론, 프랑스인도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유엔군의 일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군인은 총 3421명이다. 이중 292명이 전사했고, 현재 생존해 남은 이는 29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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