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에게 ‘기립박수’ 캐나다 의회··· 국제 망신살

손상호 기자 ssh@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22일 캐나다 의회에서 기립박수를 받고 있는 나치 친위대 출신 우크라이나계 이민자 야로슬라브 훈카 (영상 캡처)

캐나다 의회에서 전쟁 영웅으로 칭송되며 기립박수를 받았던 90대 노인이 나치 친위대 출신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캐나다가 국제적인 망신을 사고 있다. 이 노인을 섭외한 앤서니 로타 하원의장은 사퇴 압박 속에 끝내 사의를 표명했다.

이 황당한 일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캐나다 의회를 방문했던 지난 22일 발생했다.

로타 하원의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의회 방문을 더욱더 의미 있게 하기 위해, 본인의 지역구(온타리오 닙싱-티미스카밍)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이민자 출신의 98세 퇴역군인 야로슬라브 훈카를 초대했다.

로타 의장은 이어서 훈카를 세계 2차대전에서 우크라이나 독립군에 소속돼 러시아(소련)를 상대로 싸웠던 전쟁 영웅이자 캐나다의 영웅이라고 소개하며, 의원들과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유도했다.

그러나 의회에서 박수를 받았던 훈카가 2차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 소속으로 복무했던 일원이라는 사실이 한 유대인 인권 단체로부터 확인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캐나다 의회가 나치 부역자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그가 소속됐던 SS 14사단은 우크라이나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2일 캐나다 의회에서 앤서니 로타 하원의장(위)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 (Speaker of the HoC Twitter)

2차대전 당시만 해도 소련이 캐나다를 비롯한 영연방군의 아군이었다는 기초적인 역사 지식을 로타 의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인식만 했더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지적이다. 로타 하원의장은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며 뒤늦게 사과했지만, 여야를 가리지 않고 사퇴 압박이 커지자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26일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쉽게 진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신들도 이번 사태를 주요 뉴스로 보도하는 등 캐나다는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면서, 가뜩이나 지지율 하락으로 고민이 깊어지는 저스틴 트뤼도 총리와 자유당도 곤경에 처하게 됐다. 로타 의장은 자유당 소속 6선 의원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탈나치화’라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만큼, 캐나다 의회에서 벌어진 이번 일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 사태에 대해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캐나다를 강하게 비판했다.

손상호 기자 ssh@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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