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보복이 더 잔혹한 보복 불렀다, 분노 키운 하마스의 살해 영상

예루살렘(이스라엘)=정철환 특파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10-12 09:55

이스라엘 예루살렘 현장··· 정철환 특파원 르포
하마스, 소셜미디어에 여성·아이들 희생 영상 살포
이스라엘도 참상 보도하며 분노 증폭시켜··· 피의 보복 악순환
“아이의 휴대폰에서 인스타그램·틱톡·X(옛 트위터)를 지우십시오. 하마스가 공포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악용하고 있습니다.” 10일(현지 시각)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의 학부형들에게 이 같은 공지가 전달됐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습해 전쟁이 발발한 후 소셜미디어에 잔혹한 참상을 담은 이미지가 쏟아지자 텔아비브 교육청이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소셜미디어엔 납치된 젊은 이스라엘 여성이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영상, 납치 후 살해된 노인의 사진, 닭장 속에 이스라엘 아이들을 가둬놓고 조롱하는 영상 등이 여과 없이 쏟아지고 있다. 아이와 여성이 희생된 모습을 담은 잔혹한 이미지도 적지 않다. 대부분 게시물은 극심한 공포의 확산을 노리는 하마스 측이 올렸다. IS(이슬람국가) 등 이슬람 테러 조직들이 흔히 써온 수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하마스의 잔인함, 피에 대한 갈증은 테러 집단 IS가 저질렀던 최악의 만행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난했다.

이날 이스라엘 방송들은 가자지구 인근 베에리 키부츠(집단농장)에 이어 크파르 키부츠에서도 최소 100여 명이 하마스에 의해 학살되고, 참수(斬首)된 여성과 아이들의 시신도 나왔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보도했다. 방송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해진 잔혹한 장면들은 이스라엘의 분노에 기름을 붓고, 냉정한 대응을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점점 묻히는 분위기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를 완전 포위하고, 매일 백여 건의 폭격을 하고 있다.

오랜 기간 응축돼온, 서로를 향한 뿌리 깊은 증오는 ‘피의 보복’으로 분출되려 하고 있다. 이스라엘 건국 후 75년간 축적된 보복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알아크사 사원, 이른바 ‘성전산(聖殿山)’이 있는 동(東)예루살렘을 10일 찾았다. 평소엔 성지 순례자들로 붐비던 이곳엔 긴장과 두려움이 뒤섞인 적막만이 감돌았다.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당신들 더 이상 못 들어간다. 여긴 접근 금지다.” 10일 오후(현지 시각)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 입구를 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경찰 세 명이 가로막았다. 저지하는 이유를 물으니 “무슬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머뭇거리자 사원 반대쪽을 가리키며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속하지만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통제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 7일 아무도 예상 못 했던 중동의 전쟁이 시작된 후 국제 사회는 예고 없는 무차별 포격 직후 민간인을 참혹하게 살해하고 납치한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를 규탄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불안하나마 유지되어 온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공존을 하마스가 극단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최근 극우 민족주의 정책을 펼치며 팔레스타인을 계속 자극하고,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 등 무장 단체에 공격의 빌미를 만들어 준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축적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소가 이곳 알아크사다. 알아크사는 동예루살렘 구(舊)시가지 내 있는 14만㎡ 고(高)지대 구역이자, 이곳에 있는 이슬람 사원의 이름이기도 하다.

하마스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로켓포 폭격과 무장 전투원 침투를 단행하면서 작전명을 ‘알아크사 홍수’라고 지었다. 그러면서 공격의 명분 중 하나로 “이스라엘이 알아크사 성지를 지속적으로 훼손했다”는 점을 들었다. 예루살렘 한복판의 언덕 위에 있는 알아크사(아랍어로 ‘최고의’라는 뜻) 사원은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공통 성지다. 유대교·이슬람교 신자들은 알아크사를 두고 서로를 향한 증오를 거듭 드러내 왔고 이 장소는 언제든 분쟁과 폭력으로 치달을 수 있는 ‘화약고’로 여겨졌다.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이지 않는 와중에 양측은 아슬아슬한 타협안을 토대로 갈등을 조절해 왔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알아크사 지역을 방문할 순 있지만 기도와 예배는 하지 못한다는 중재안이었다. ‘제한 없는 성전산 방문’을 원하는 유대교 초정통파와 이스라엘 민족주의 강경파들은 이에 큰 불만을 표출해왔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집권을 위해 극우 성향 정당들과 손을 잡으면서 조마조마한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지난 1월 극우 정당 출신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의 알아크사 사원 방문 사건은 기폭제가 됐다. 그는 당시 트위터(현재 ‘X’)에 “사원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돼 있다.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그들(아랍인)에게 이해시켜라”고 올렸다.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국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아랍에미리트는 예정돼 있던 네타냐후 총리와의 정상회담마저 전격 취소했다. 뒤이어 지난 4월 이스라엘 경찰의 사원 진입은 팔레스타인 강경파에 들고 일어날 명분을 줬다. 벤그비르 장관의 사원 방문 항의 시위를 진압한다며 이스라엘 경찰이 사원 경내에 진입하자 아랍인들은 ‘선을 넘었다’며 분개했다.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들은 일제히 ‘보복’을 천명했고, 하마스는 결국 지난 7일 이스라엘을 기습해 전쟁의 문을 열었다.

동예루살렘은 평소 전 세계에서 몰려든 성지 순례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전쟁 발발 후 예루살렘 내 테러 우려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구시가지는 텅 비다시피한 모습이었다. 상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고, 좁은 골목엔 순찰을 도는 이스라엘 군경만이 보였다. 같은 골목을 공유하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간에 아직 물리적 충돌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서로를 적(敵)으로 여기며 견제하는 침묵 가운데의 팽팽한 긴장이 감지됐다.

기념품점을 운영하는 팔레스타인 상인 라시드(39)씨는 “7일 공격 이후 우리(팔레스타인인) 쪽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축하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로 인해 분위기가 험악해진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쪽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 중엔 과격한 하마스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동예루살렘 유대인 거주 구역에서 만난 미국 출신 제롬(29)씨는 “지난 며칠간 주변 아랍 마을에서 (공격 성공을 축하하며) 폭죽을 터뜨리고, 하늘로 총질을 하는가 하면 밤새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 쪽으로 물건을 던지거나 레이저 포인터를 겨누는 등 도발 행위가 잇따랐다”고 했다. 그는 “남부(가자지구 인근)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들이 이곳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공포 속에 살얼음을 걷는 듯한 며칠이 지났다”고 했다.

이스라엘 측은 현재 이곳에서 양측의 충돌을 예방하고 질서 유지를 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테러 및 소요 가능성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성벽 안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수십 명의 병사들이 실탄을 장전한 소총을 매고 근무를 서고, 구시가지 곳곳을 서너 명씩 조를 이뤄 순찰을 돌고 있었다. 구시가지 외곽 서예루살렘 지역도 주요 골목마다 탐지견들이 동원돼 테러 공격에 대비하며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 이스라엘 경찰은 기자들을 불러 세우곤 “어느 나라 사람이냐. 뭐하러 왔냐. 왜 경찰의 사진을 찍느냐”고 캐물었다. 그는 “안전을 보장 못 하니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가지 말라”고도 경고했다.

◇키워드: 동예루살렘·서예루살렘

1948년 예루살렘은 서예루살렘(이스라엘령)과 동예루살렘(요르단령)으로 분할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 전쟁 때 동예루살렘까지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공식 선포했지만, 유엔은 국제법상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으로 간주한다. 동예루살렘을 실질 관할하는 팔레스타인은 장차 독립국가가 건설될 경우 이곳을 정식 수도로 삼는다는 입장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외곽의 한 대형 공연장에서 22일 무차별 총격에 이은 화재가 발생, 40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러시아 당국은 이를 즉각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고, 친(親)우크라이나 혹은 반(反) 푸틴 세력의 연관 여부를 조사...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자빈이 22일 공개된 동영상을 통해 자신의 암 발병 사실을 밝히고 있다. /BBC 제공지난 1월 복부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이라던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자빈(42)이 암...
10일 공개된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자빈의 사진에서 편집이 의심된다는 지적을 받은 부분들. /인디펜던트 제공영국 왕실이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과 세 자녀가 함께 있는 가족사진 한...
이스라엘군은 성탄절 전날인 24일(현지 시각)에도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 지구에 대한 집중 공격을 이어갔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성명에서 “지난 밤부터 지금까지 육·해·공 합동 작전을 통해 약 200개의 가자지구 내 테러리스트 목표물을...
▲카렐대 캠퍼스 모습 (wikimedia)체코 수도 프라하 중심가에 있는 카렐대 캠퍼스에서 21일(현지 시각)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져 14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체코 경찰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현지시각) 동성애자와 동성 커플에 대해 제한적으로 축복을 허용한다는 공식 방침을 내놨다. 혼인 성사(성당에서 하는 결혼식)나 미사와 같이 교회의 전통적...
지난 11일(현지 시각) 영국 현충일(1차 세계대전 종전일) 기념 행사가 열린 영국 런던 로열 앨버트홀 바닥에 태극기와 무궁화가 조명으로 띄워져 있다. 찰스 3세 국왕과 리시 수낙 총리 등이...
韓·英 수교 140주년 맞아 8일 한인 타운 ‘뉴몰든’ 방문
영국 런던 뉴몰든 역 앞 거리. 한글 간판이 쉽게 눈에 띈다. /조선 DB영국 찰스 3세 국왕이 유럽의 ‘작은 한국’으로 불리는 영국 런던 외곽의 한인 타운 ‘뉴몰든(New Malden)’을 오는 8일(현지 시각) 방문한다고 3일 영국 왕실이 발표했다. 찰스 3세 국왕 개인은 물론,...
“이스라엘이 전쟁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28일 오후(현지시각)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상전 개시’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스라엘은 전날(27일) 오후부터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 북부...
이스라엘 예루살렘 현장··· 정철환 특파원 르포
하마스, 소셜미디어에 여성·아이들 희생 영상 살포
이스라엘도 참상 보도하며 분노 증폭시켜··· 피의 보복 악순환
▲10일(현지 시각)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 입구에서 이스라엘 경찰들이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채 입장을 통제하고 있다. /정철환 특파원“아이의 휴대폰에서 인스타그램·틱톡·X(옛...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가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이에 이스라엘이 즉각 보복 공격에 나서고 레바논 무장 단체 헤즈볼라도 이스라엘 북부를 폭격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이 신(新)중동전쟁 수준으로 확전될 위험이...
경찰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 총격으로 숨진 나엘(17)의 장례식이 벌어진 1일(현지시각) 오후 파리 북서부 낭테르시. 장례식장인 ‘이븐 바디스’ 모스크(회교 사원)로 향하는 길은 곳곳에 무장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검은색 복면 차림의 한 경찰은 “장례식 직후...
러시아 용병 단체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62)이 24일(현지 시각) 휘하 부대를 이끌고 러시아 군부를 겨냥한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가 하루 만에 철수했다. 러시아에서 무장 반란이 일어난 것은 1991년 8월 소련 공산당 보수파가 일으킨 쿠데타 이후 약...
러시아 군부를 상대로 반란을 선언한 러시아 민간 용병 단체 와그너(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각) 오후 “우리는 반역자가 아닌 애국자”라며 와그너 그룹을 반역자로 규정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연설 내용을 정면 반박했다.그는...
러시아 보안·방위군 저항 약한 듯…“모스크바 경계 태세 강화”
러시아 군부를 겨냥한 무장 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민간 용병 단체 와그너(바그너) 그룹 선봉대가 24일(현지시간) 오후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350㎞ 떨어진 리페츠크까지 진출한 것이 확인됐다. 앞서 영국 국방부는 “바그너 그룹의 부대가 모스크바까지 가려...
영국에 ‘찰스 3세 시대’가 공식 개막했다. 찰스 3세 국왕과 커밀라 왕비는 6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중심가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치르고, 영국과 14개 영(英)연방 왕국의 군주로 등극했음을 공식 선포했다.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 부부는 이날 오후...
폭언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구설에 올랐던 도미닉 라브(49) 영국 부총리 겸 법무부 장관이 사임한다고 21일(현지 시각) 밝혔다. 전날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특별 조사위원회가 그의 혐의 대부분이 문제가 되는 행동이라고 인정하는 47쪽짜리 보고서를 내놓자 스스로...
영국 해리 왕자가 자서전 ‘스페어(Spare·예비품)’에서 영국 왕실에 대한 신랄한 폭로와 함께 자신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25명을 사살한 사실을 밝혀 나라 안팎에서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국내에선 “생명 경시 태도이자 영국군을 욕보인 것”이란...
자서전서 폭로
▲사진출처=Bruce Detorres via Flickr찰스 3세 영국 국왕의 차남 해리 왕자의 자서전 ‘스페어(spare·예비품)’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왕실 내 가족 간 갈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파문을...
유명 축구선수 아자다니 포함
이란 축구선수 아미르 나스르-아자다니(26). 이란 관영 매체 IRNA에 따르면, 나스르-아자다니는 지난달 16일 중부 도시 이스파한에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던 중 보안요원 3명을 살해한...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