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광고문의
연락처: 604-877-1178

사실은 속 깊은 키오스크(Kiosk)

민완기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10-23 09:47

민완기 / (사)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지난 9월 한달 여를 근 7년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모처럼 고국 나들이 길에 설레임과 좋은 추억들도 많았지만, 돌아와 생각해보니 가장 힘들었던 것을 꼽아보자면 단연 ‘키오스크’와의 독대(獨對)하는 시간들이었다.

  팬데믹 이후 가급적 대면접촉을 피해야하고, 그만큼 인건비와 업무 부담도 줄일 수 있기에
도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순간순간 여행의 발목을 잡아오는 키오스크 복병의 매복과 공격에 녹아나는 순간들이 많았다.

  원래 이 단어는 궁전을 이르는 페르시아어 “쿠슈크’에서 유래된 말로, 그 흔적이 남아있는
터키어 ‘쾨슈크’는 작은 여름용 별장이나 정원에 건축된 작은 누각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이후 키오스크는 그런 모양으로 지은 간이건축물을 이르며 오늘날 간이 판매대, 무인소형매점, 무인 단말기 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작은 건축물이 우리 부부를 도착하는 날부터 얼마나 격하게 환영하는지…

  수하물을 찾아서 입국장을 빠져나오니, 마침 삼성동 공항터미널행 리무진버스가 막 출발을
하려고 한다. 황급히 뛰어가서 아내는 버스에 오르게 하고 기사 분과 함께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기사 분께 준비해간 지갑 속 한화를 현금으로 내밀자 황당한 표정으로 저쪽 키오스크에가서 빨리 표를 끊어 오란다. 11시간 비행과 1시간 가까운 입국 과정에 지쳐있는 내게 버스 티켓 2장 발권하는 일이 이리도 어려울 일일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화면을 터치하니 하차 지점, 인원수, 원하는 좌석 등 선택하라는 스크린이 차례로 떠서 나오는데 평소 같으면 사실 아무것도 아닐텐데 내 뒤 버스 창문으로 일제히 고개를 우향우하고 막 떠나려는 차를 잡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승객들의 눈총이 느껴진 순간부터 그야말로 멘붕, 블랙아웃이 찾아와 버렸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카드를 뒤로 꽂았다, 앞으로 꽂았다 하며 땀을 뻘뻘 흘리며 난리를 치는 모습을 보다 못해 기사 분이 돕고자 내려왔고, 뒤이어 나보다 조금 더 기계치인 아내까지 차에서 내려 다가왔다. 아마 자리에 앉아 그냥 기다리기가 숨이 막혔으리라. 어찌어찌 천신만고끝에 티켓팅을 하고 버스에 오르니, 아, 연변쯤 사는 옷 좀 차려 입은 외국인 근로자쯤 되나 보다 쳐다보는 그 감정 없는 시선들… 지금도 송연(悚然)하기만 하다.

  신고식을 호되게 치루고 두번째 키오스크와의 해프닝은 서류 관계로 차를 가지고 구청 방문을 하게 된 날이었다. 일을 마치고 출구 차단봉 옆 키오스크에서 결제를 하려니 그간 이상없이 잘 쓰던 BMO마스터카드가 해외발급카드인 연고로 결제가 안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카드 수수료때문인가 나름 짐작은 해보았지만 한국 관공서를 지키는 키오스크 형님들은 더욱
녹록지가 않았다. 내 뒤로 서너 대가 금새 줄을 서서 빵빵대기 시작을 하고, 헤매던 중에 키오스크 하단에 빨간 버튼이 보여 누르니 직원이 스피커로 답을 한다. 내가 쓰는 폰으로 계좌이체안내 문자메세지를 보내겠단다. 그리고 내 폰으로는 송금이 안되니 은행 갈 때 내기로 맘먹고 3,4일간을 바쁜 일정으로 잊고 지내고 있는 터에 독촉 전화가 오기 시작하는데, 하루는 대학 동문들과 점심을 먹는 중에 또 전화가 와서 옆에서 통화를 들은 친구가 자기 폰으로 주차비 1,800원을 그 자리에서 대신 이체해 준 해프닝도 키오스크에게 당한 두번째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도 더 숱한 후일담이 있었으니, 성수동이 카페 핫플레이스로 변했다기에 마침 그곳을 지나는 길에 역에서 내려 한 카페를 들려서 주문을 하려고 다가가니 프론트 직원은 단 한마디 아무 말도 없이 손가락으로 옆을 가리키기에 쳐다보니 키오스크 형님이 떡하니 사람보다 먼저 나를 반겨준 것과, 여행 일정이 끝나서 밴쿠버에 돌아오게 되는 날에도 공항에 오면서 이미 스마트 폰으로 pre check in을 한 짧은 줄을 지나 그냥 길고 긴 줄에 가서 아무 말없이 서면서 문득 우리의 키오스크씨는 시니어들과 휠체어를 탄 키 낮은 장애인과의 만남은 노골적으로 사양을 하시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가져본 일이다.

  그러나 어쩌랴…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는 법. 혹시 다음에 또 이 작은 여름용 별장
키오스크에 놀러온다면, 초로의 우리 부부만 달랑 오지 말고 아들, 며느리, 손주들까지도 다 함께 오라는 키오스크 개발자의 속 깊은 충고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회귀본능 2025.08.08 (금)
저녁 준비로 산 연어 한 마리를 손질하면서 그는알에서 나와 강에서 살다가 바다로 간 연어의 회귀를 생각해본다자기장 속 기억을 더듬으며 거센 물줄기를 거꾸로 헤엄치는 귀향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허우적거리는 안간힘이 필요한 일이다 모국을 떠나 이역만리세월을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나그네 거꾸로 이민을 간다마음속에 묻은 처음으로 되돌아가려는 반사의 몸짓이다그는 연어를 닮았다민물에서 짠물로 바뀔 때의 냄새가 그의...
김영선
   어느새 8월이다. 마냥 뜨겁고 한없이 길 줄만 알았던 햇살도 수그러지고, 바야흐로 입추(立秋), 가을로 접어드는 초입이다. 산책길 늘 만나는 나무는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푸르렀는데 속살부터 홍조를 띄워가고, 잎들 사이사이로 바늘 같던 햇살은 참빗같이 성겨져 가지 사이로 조용히 스며든다. 문득 시절(時節)마다의 이름들과 별칭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 걸음을 멈추고는 폰을 꺼내서 구글 창에’한국 세시 풍속 사전’ 과 각 달의 별칭을...
민완기
  술 마실 때 형, 동생 하는 친구는 많아도  급하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친구는 별로 없다.                      나 죽었을 때 술 한잔 따라주며  눈물을 흘려 줄 친구는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공자  최근에 가끔 숨이 차는 현상이 있어 오랜만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모니터로 내 차트를 살펴보던 가정의가 살짝 핀잔을 준다.  “5 년 만에 오셨네요. 이제 연세도 드셨으니 1, 2년에 한...
이현재
숫돌 사원 2025.08.08 (금)
숫돌은 아버지의 사원이었다늘 마음을 다스리고 벼리시던 집,세상이 거꾸로 돌아갈 때나하늘이 내려앉을 때에도 아버지는 침묵으로한숨과 분노를 갈았다그러나 그 사원이 다 닳아질 때까지아버지의 한숨과 분노는 날이 서지 않았다아니, 날을 세울 수가 없었다등 뒤로 혁명처럼 돌아앉기만 했던 두 세 번의 정변, 이데올로기의 한복판에서 좌로 우로 바람이 불었다혁명의 칼날 앞에서는 등 뒤에 비수가 꽂혔다 더 이상 아버지는 존재하지...
이영춘
은밀함이 사라졌다.   추수감사절 연휴를 딸네서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녹색 장삼 걸친 삼나무에 둘러싸인 오두막이 그리워 발길을 서둘렀다. 녹색 그늘이 다 지워지고 없다. 삼나무 가지들이 뭉텅 잘려 나가고우둠지에만 이파리 몇 장이 남아있어 주변이 황량하다. 마치 녹색 베레모를 쓴 상이군인이 전장에서 두 팔을 잃고 돌아와 상심에 빠져있는 모습 같다.    ”대체 누구 짓이지?” 남편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분명 묵은...
김해영
   3주째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한국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밴쿠버 국제공항 국제선 도착 게이트 앞, 그 커다란 상징물 근처에서 말이다. 첫째 주에는 큰 아들을, 둘째 주에는 둘째 아들을, 그리고 이번 주에는 조카를 기다렸다. 같은 비행기, 같은 시간인 데도 매번 느껴지는 이 설렘은 도대체 뭘까.  아마도 이 공간 자체가 주는 특별함 때문일 것이다. 같은 목적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윤의정
매혹스러운 장미여!모든 사람이 유혹되니난 널 피하려 하였으나선선한 여름 뜨락에다마스크 로즈 향 덫을 놓고밤새 넌 날 기다렸구나. 향에 찔린 시린 가슴에마비된 발걸음 멈추어게슴츠레 너를 본다.도톰한 붉은 꽃 입술 이슬 맺혀 영롱하다. 붉은 입술이 다가와 비비니너의 이슬에 나의 수염이 젖었다.유혹의 향기에 취하여심 호흡하며 신음하니난 이미 너의 포로요, 노예가 되었다. 내 떠나갈 때같이 가고 싶으나 널 꺾음이 널...
김철훈
오래된 생각 2025.07.25 (금)
뭘 잘 못 버리겠어 타국살이 공간이 얼마나 된다고서랍도 옷장도 과거로 꽉 찼어그러니 사람도 못 끊어내 저도 해 지면 외롭겠지 싶어서 허구한 날 비 내리는 이 타향에서돌아가고 싶은데 겹겹이 접은 마음 바람에 널어 넣고 숲에도 걸어놓고반짝이는 강물에도 바다에도 데려가지 모천으로 가는 길 팔천 킬로미터연어처럼 거슬러 돌아간다해도낳아준 어미도 낳을 새끼도 없건만고단한 날에도 많이 웃은 날에도세월 얼른 보내고...
윤미숙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