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케이팝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한 유명인이 성경 강의를 한다고 해서, 유튜브를 통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강의 시작에 앞서 그 유명인은 자기의 사적인 이야기부터 꺼냈다. 얼마 전 생일날 친구로부터,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너에게.”로 시작되는 생일 카드를 받았다고 했다. 그 카드를 준 친구와는 무명 시절을 같이 보냈었는데, 현재 자기는 크게 성공했지만, 그 친구는 여전히 무명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 친구 눈에는 그가 얼마나 부러운 존재로 보였겠는가! 하지만 쉬운 삶은 없다고, 그 친구가 보는 것과는 달리 그도 힘든 속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털어놓는 얘기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였다. 성공하기까지 자기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자 친구였던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처참히 무너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너무도 고통스럽다고, 그는 토로했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가 면회를 가도 이젠 아들인 자기마저 못 알아보는 현실, 그 현실 앞에서 그는 큰 절망과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코비드가 터진 이후로는 보호자 면회 제한이 생겨 요즘은 아버지를 자주 볼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하는 말이 아버지를 볼 수 없는 면회 제한이 싫기보다는 되레 안도감을 느낀다고 했다. 산산이 무너져 가는 아버지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거기까지 말한 후 그가 성경 강의를 시작했는데, 난 그가 하는 강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치매 환자를 15년 가까이 돌본 경험으로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치매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을 때 간호사인 필자 또한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우리가 뭘 해줘도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 삶의 질로만 따진다면 치매 환자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닌 것만 같았다. 그 유명인처럼 치매 환자를 둔 많은 보호자가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왔다 갔다는 사실조차 기억 못 하는 환자를 보면서 큰 좌절감을 느꼈고, 그러다가 점점 발길을 끊어버리는 걸 수없이 봐왔었다. 물론 처음엔 그런 보호자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런데 병동 벽에 쓰인 이 문구를 이해하게 되면서, 치매 환자에 대한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I don’t remember days, but we remember moments.’ 처음엔 병동 벽에 쓰인 이 말이 뭔 말인가 싶어, 그 앞에 서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었다. 그런데도 그 의미가 크게 와닿질 않았다. 하지만 치매 환자를 돌보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그 의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루를 기억할 순 없지만, 순간은 기억한다.’ 이 말은, ‘치매로 기억을 잃어 하루를 기억할 순 없지만, 그래도 느낄 순 있기에 순간은 기억한다.’라는 말이었다. 치매 환자에 대해 사람들이 쉽게 하는 오해가 기억을 못하니, 느끼지도 못할 거라는 거였다. 하지만 치매 환자도 울고, 웃고, 외롭고, 우리처럼 모든 감정을 느낀다. 기억에 의존하는 과거나 미래에 매달리지 않고 그저 느낌으로 순간을 사는 삶, 이게 바로 치매 환자가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건 순간인데, 그 순간을 충실히 살 수만 있다면 그것도 그리 나쁠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치매 환자 스스로 그 순간을 충실히 채울 수 없다는 거였다. 그분들이 살아가는 그 순간을 충실히 채워주는 건, 바로 우리의 몫이었다.
치매 환자를 돌보다 보면, ‘Sundowning Syndrom’이라는 말을 꼭 배우게 된다. ‘황혼 증후군’이란 해 질 녘에 치매 환자들이 보이는 이상행동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이었다. 늦은 오후만 되면 치매 병동엔 불안감에 서성대고, 탈출하기 위해 비상문을 흔들어 대고, 이미 사망한 배우자에게 전화해달라고 떼를 쓰며 소리 지르고, 폭력적으로 변해 울부짖는 그런 일들이 자주 벌어지곤 한다. 왜 특정 시간만 되면 이런 이상행동을 하는지, 아직도 그 원인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치매 환자를 지켜보면서 알게 된 게, 가족이나 친구, 하물며 자원봉사자라도 찾아온 날이면 상당히 평온한 저녁을 맞는 듯했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날이면 저런 이상행동을 훨씬 더 보인다는 거였다. 그걸 보면서 깨달은 게, “아~! 저분들이 정서적으로 배고파서 저러는 거구나!”였다.
몸을 유지하기 위해선 음식을 먹어야 하듯이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선 누군가와 함께하고 손을 잡고 허그하는, 그런 정서적인 양식도 필요했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밥처럼 하루 분량의 스킨쉽이 필요한 건데, 그 누구도 그걸 채워주지 않으니 저런 이상행동이 나오는 거구나! 치매에 안 걸린 사람도 정서적으로 허기가 지면 미운 짓을 하고, 더 심통을 부리게 돼 있었다. 비록 기억은 잃었지만 치매 환자도 느낄 수는 있기에 마찬가지였다.
치매 환자에게 병원이 약과 음식은 제공할 수 있지만, 정서적 양식까지는 아니었다. 그걸 제공하는 건 바로 밖에 있는 우리의 몫이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끝까지 치매 환자를 찾아봐야 하는 이유였다. 꼭 쓰다듬고 허그하지 않아도, 방문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냥 옆에만 있어 줘도, 이 모든 게 정서적인 스킨쉽이라 할 수 있었다. 그날 강의를 한 유명인에게 필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다. “ 제발 발길을 끊지 마시고, 방문해서 아버지에게 필요한 하루 분량의 스킨쉽을 드리세요. 그러면 당신 아버지가 살아가는 순간이 사랑으로 채워집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박정은의 다른 기사
(더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