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매장 계산대의 경제학
6년 전 처음 무인 계산대를 도입한 영국 수퍼마켓 체인 ‘부스’가 이달 초 “매장 28곳 중 두 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매장에서 무인 계산대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고객 불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채·과일처럼 바코드 없는 품목을 정확히 식별하기 어렵고, 술을 사려면 성인 여부 확인을 위해 직원을 기다려야 했다. 부스의 운영 임원 나이절 머레이는 BBC라디오에 “직원이 (직접) 응대하는 계산 방식이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손님이 직접 바코드를 찍어 결제하는 무인 계산대(셀프 계산대)를 포기하는 유통 기업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무인 계산대는 대면 접촉을 꺼리는 팬데믹 기간에 보급 속도가 빨라졌다. 미국식품산업협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재작년 미국 식료품 소매유통업체의 96%가 무인 계산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산 실수가 잦고 상품을 훔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무인 계산대의 인건비 절감 효과가 반감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무인 계산대를 늘릴 때마다 “계산 업무를 고객에게 떠넘긴다”는 고객들의 반감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유통업체가 무인 계산대와 유인 계산대를 모두 저울에 올려놓고 ‘결제 프로세스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무인 계산대 제한하는 법안까지 등장
무인 계산대를 줄이려는 움직임은 미국에서 흔하다. 월마트는 최근 뉴멕시코주 매장 3곳에서 무인 계산대를 없앴다. 수퍼마켓 협동조합 숍라이트의 델라웨어주 매장 6곳은 팬데믹 기간 무인 계산대를 대거 도입했지만 불편을 호소하는 고객이 많아지자 지난 9월 유인 계산대를 다시 추가하기 시작했다.
앞서 지난해 수퍼마켓 체인 웨그먼스는 무인 계산 방식인 스캔 앱 사용을 중단했다. 고객이 스마트폰 앱으로 상품 바코드를 찍으며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무인 계산대에서 총액만 결제하는 방식이었다. 계산할 때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을 중단한 것은 고객이 고의든 실수든 바코드를 스캔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며 손실이 커졌기 때문이다.
무인 계산대 숫자를 제한하는 법안마저 등장했다. 로드아일랜드주 메건 코터 하원 의원은 올해 초 ‘한 매장에서 무인 계산대를 8대 이상 운영할 수 없고 무인 계산대 한 대당 유인 계산대도 한 대 이상 둬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고객이 10개 이상 품목을 무인 계산대에서 계산하면 10% 할인을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코터 의원은 “고객이 계산원 일을 대신 해준다면 이득이 있어야 공평하다”고 했다.
유럽에선 직원과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결제할 수 있는 이색 계산대가 등장했다. 네덜란드·벨기에 수퍼마켓 체인 ‘점보’는 지난 2019년 매장에 ‘수다 상자(Kletskassa)’라는 계산대를 도입했다. 직원과 가벼운 잡담을 나눠도 되는 계산대로, 현재는 매장 100곳 이상으로 확대했다. 프랑스의 카르푸도 비슷한 개념의 ‘수다 계산대(blabla caisse)’를 선보였다.
미국인 21% “실수로 계산 안해”
무인 계산대가 고객 불편을 초래한다는 지적과 별개로 유통업체에 수익을 높여주는 효과도 불분명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영국 레스터대 연구진은 무인 계산대 도입 매장에서 손님들이 계산하지 않고 갖고 나간 물품 액수가 전체 매출의 4%에 달한다고 계산했다. 연구진은 “도난을 적발해도 고객은 기계 결함이나 제품 바코드 문제 때문이라고 변명하거나 기기 조작에 능숙하지 않아 실수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금융 서비스 업체 렌딩트리가 지난 10월 무인 계산대를 사용해 본 소비자 1924명을 조사했더니 ‘고의로 바코드 스캔 없이 물품을 가져간 적 있다’는 답변이 15%였다. 또한 응답자의 21%는 ‘실수로 계산 없이 물품을 가져갔다’고 답했다. 과일·야채처럼 화면에서 상품 종류를 선택하고 무게를 달아 금액을 재는 상품의 경우에 실수가 흔하다. 비싼 유기농 야채를 저울에 올려놓고 가격이 더 싼 일반 야채 값을 지불하는 식이다.
무인 계산대가 계산원이 일자리를 잃게 만든다거나 고령층·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런 지적을 염두에 둔 미국 식료품 체인점 ‘스파클 마켓’은 지난 7월 “이웃을 고용하는 일은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계산원을 무인 계산대로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론 라슨 루터대 교수는 WEEKLY BIZ에 “모든 고객에게 무인 계산대를 사용하도록 강요하지 말고 선호에 따라 유인 계산대를 선택할 권리도 줘야 한다”고 했다.
하이브리드·자동 결제 방식 부상
수익성을 우선한다면 무인 계산대와 유인 계산대를 함께 두는 ‘하이브리드’ 방식이 가장 낫다는 분석도 있다. 컨설팅 업체 카탈리나가 재작년 미국 거래 데이터 45억건을 분석했더니 무인 계산대를 통해 이뤄진 거래는 전체 거래의 38%에 달했지만 이 거래들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4%에 불과했다. 무인 계산대에서 주로 10개 미만 소규모 품목을 결제하고, 상품을 대량으로 구매할 때는 유인 계산대를 선호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무인 계산대를 둘러싸고 과도기를 겪고 있을 뿐 결국은 기술 발전으로 계산대가 아예 사라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아마존이 만든 무인 매장 ‘아마존고’처럼 원하는 물건을 골라 나가면 매장의 AI 카메라가 감지해 자동 결제하는 매장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스캔 앱 사용을 중단했던 웨그먼스도 올해 카트에 물건을 담기만 하면 자동으로 인식하는 ‘스마트 쇼핑 카트’를 시범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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