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하루에도 몇 번을 오가는 거리가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의 모습 속에서, 외국어로 채워진 상가 외벽의 간판을 보며 나는 누구이고, 내가 있는 곳은 어디 인지를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자메뷰(Jamais Vu), 즉 미시감(未視感) 현상을 말하는 걸까? 익숙한 장소가 낯설게 느껴지면 재빨리 눈을 감거나 하늘을 올려다본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이국의 정취에 스며들지 못하는 나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처럼 가볍고, 흐리며, 형태가 없다. 어쩌면 그러기에 방향 없이 표류 하며 더 자유롭게 삶을 여행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늘 그리워하던 엄마가 여행자가 되어 딸을 보러 오셨다. 생각 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고, 나지막이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름, 엄마! 신이 나약한 인간에게 준 고귀한 선물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내 마음은 늘 엄마에게 달려간다. 환하게 웃으며 허기진 자식을 품에 안는 엄마를 떠올릴 때면 갓 지은 밥 냄새가 난다. 그리움이 깊으면 흐르는 물도 몸을 얼려 멈춰 선다고 했던가? 길 위에 멈춰 서 바라보는 세상은 늘 생경했다.
기다림 끝에 만난 엄마는 꿈같이 찾아와 대지를 깨우는 봄 볕 만큼이나 신비롭다. 그저 엄마와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산책하고, 장을 보는 평범한 순간들이 권태로웠던 생활에 신선한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차마 전하지 못하고 우수의 심연 속에 묻어두었던 감정들을 꺼내 엄마 앞에 풀어놓으니 갑갑했던 마음도 후련해졌다. 이해 받기 위해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진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마냥 감사했다.
나는 잘 먹고,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가 차려낸 밥상 앞에서 그동안 굶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거 아닌 일로도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익숙해질 법도 한 공간이 한없이 낯설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어떤 면에서는 엄마에게 붙어 공급 받던 이해와 애정의 결핍이 삶의 순간들을 굴절 시켜 왜곡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엄마로 인해 나의 세상은 따뜻해지고, 생기를 되찾았다. 오래도록 눈에 설어 멈춰 서야만 했던 공간 들이 엄마와 있으면 마음속에 간직한 정든 곳에 와있는 것처럼 편안했다. 존재 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하고 강력한가? 늙고 병들어 한없이 연약해 보이지만 엄마는 여전히 생명을 먹이고, 살리며, 삶을 긍정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 존재의 무게와 가치를 알기에 온 맘으로 아껴주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과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기만 했다. 엄마와 사 온 소형 종 장미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앙증맞은 연 분홍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은은하게 스며드는 행복감에 기분이 좋아진다. 꽃에 물을 주며 엄마의 노년이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고 아름답기를, 나의 삶이 받은 사랑을 거름 삼아 인생의 가을과 겨울에도 꽃 피울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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