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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동성커플에 제한적 축복 허용 “결혼이나 교회 의식 아니면 가능”

파리=정철환 특파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12-18 09:20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현지시각) 동성애자와 동성 커플에 대해 제한적으로 축복을 허용한다는 공식 방침을 내놨다. 혼인 성사(성당에서 하는 결혼식)나 미사와 같이 교회의 전통적 의식과 결부되지 않을 경우, 사제가 각각의 상황을 판단해 축복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동성애자라는 이유 만으로 모든 종류의 축복을 금지해서는 안되며, 신자들을 이끌고 포용하는 ‘사목적 차원’에서 일반적 축복은 허용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동성애와 동성 결혼이 죄악이라는 기존 교리와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방침은 그대로 유지된다.

교황청은 이날 ‘믿음의 간청(Fiducia supplicans)’이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통해 “축복은 가장 널리 행해지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교회의 성사(聖事)”라며 “축복을 통해 우리는 삶의 모든 사건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게 하고, 인간이 하나님을 찾고 사랑하며 충실히 섬기도록 초대받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따라서 사람 뿐만 아니라 성상(聖像), 예배의 대상, 삶의 장소(집과 일터 등), 노동의 결실 등 창조주를 재현하는 ‘모든 피조물’이 축복의 대상”이라고 했다. 이는 가톨릭 교회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대상에 동성애자 역시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교황청은 그러나 이러한 축복이 가톨릭 교리의 엄격한 테두리 내에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선언문은 “엄밀한 전례적(典禮的) 관점에서, 축복은 교회의 가르침에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서 “교회는 항상 (남녀의 결합이라는) 혼인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관계만을 옳은 것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혼인을 가장한 결합’이나 ‘혼인 외의 성행위’에 전례적 축복을 내릴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사제가 동성 간의 결혼식을 주례하거나, 미사 등의 공식적 행사에서 동성 커플을 축복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교황청은 이러한 전제 하에 동성애자에게 예외적으로 축복을 할 수 있는 상황을 정했다. 선언문은 “성당에서, 길거리에서, 성지 순례 중에, 몸이 아파 고통 받을 때 등 일상의 많은 순간에서 많은 이들이 사제를 만나 축복을 청한다”며 “이러한 축복은 모두를 위한 것이며,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혼인 성사에 합당한 축복과 혼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교회가 정하지 않은 형태에서 동성 커플과 비정상적(irregular) 상황의 커플을 축복할 수 있다”고 정했다. 또 “이러한 축복은 법적 결합 의식과 동시에, 혹은 그것과 연관되어 행해져선 안되며, 또 결혼과 연관된 복장이나 행위, 말과 결부되어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동성 커플이 결혼식 의복을 입고 길거리에서 우연을 가장, 사제를 만나 ‘축복해 달라’고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선언문은 “사제는 각각의 경우를 보고 (축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 교회는 동성애와 동성 간 성교를 죄악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동성애자에 대한 축복은 어떤 형태든 죄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허용 불가’를 고수해 왔다. 선언문은 다만 “축복의 의미를 전례적 관점으로 축소하면, 단순한 축복의 행위에 너무 많은 도덕적 전제 조건이 붙게 되고, 이는 축복이라는 행위의 기반이 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가리게 되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이번 선언문은 가톨릭 교회의 기존 입장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교황은 지난 10월 ‘사제들이 재량에 따라 동성 결합을 축복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놔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공식 승인하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왔다. 보수 성향 추기경들이 ‘동성 결합 축복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 등의 질문을 담은 서한을 보냈고, 교황은 ‘결혼은 이성 간의 결합에 한한다’는 점을 명시하며 “(교회는) 결혼이 아닌 것을 결혼으로 인정하도록 암시하는 의식은 피해야한다”고 답변했다.

교황청은 “(선언문을 통해) 가톨릭교회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상에 따라 축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고 풍부하게 했다”며 “축복의 정의를 확장함으로써 동성커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결혼과 관련한 교리를 바꾸지 않고도 축복하는 게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가톨릭 매체 팰르랑도 “이는 가톨릭 교회의 기존 교리를 그대로 지키면서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어떤 형태의 축복도 해서는 안된다는 기존의 입장을 다소 유연하게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사진출처= Long Thiên via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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