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완기 /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8월말부터 9월 한 달간을 한국 방문을 하고 돌아왔다. 마음먹고 출타하는 김에 마침 올해 환갑을 맞는 여동생을 축하할 겸 베트남 패키지여행과 그리고 몇 차례 일본 방문을 하면서도 유독 큐슈 지방은 기회가 없어서, 부산 일정 뒤로 후쿠오카 자유여행까지 조금 과장하면 연암의 ‘열하일기’에 버금가는 대장정을 펼치고 돌아왔다.
가격대가 저렴한 베트남 다낭 패키지 여행은 사실 아무런 기대없이 가격이 워낙 좋은 이유로, 그리고 하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리며 경기도 다낭시라고들 한다고 하기에 속는 셈치고 티켓팅을 했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 아니 가성비 갑 여행이었다. 왕복 항공권과 4성급 호텔 숙박에 3식 제공, 그리고 알찬 관광 프로그램으로 무장된 3박 5일 여행이 캔불 400-500불 선으로 되어있으니 과연 이게 가능할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물론 두차례 쇼핑을 끼워서 이윤을 남긴다고는 해도 강매분위기는 아니었고, 제공되는 식사의 질과, 한 코스의 관광이 끝나고 나면 덥고 습한 날씨에 지친 손님들에게 시원한 버스의 에어컨 바람과 함께 보너스로 제공되는 망고, 야자 냉 음료와 베트남 냉 연유 커피는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짚어주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그러나 이틀째인가 뱃사공 하나에 손님을 둘씩 태운 삿갓배가 대나무 숲으로 우거진 수로를 빠져나와 넓은 호수에 다다른 날이었다. 내심 망중한을 즐기고 모처럼 큰 호수에서 강바람에 더위도 식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삿갓배는 호수 가운데로 다들 모여 그곳에 마련된 수상 무대로 집결을 하더니 그와 동시에 무대에서는 한국의 트로트 메들리가 신바람나게 연주되면서, 무대로 뛰어올라간 흥이 넘치는 관광객들은 어깨춤과 막춤을 추며 ‘내 나이가 어때서’를 베트남 뱃사공과 함께 신나게 불러제끼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거나 마음에 담기는 실로 어려운 여행이였다.
한국에 머무는 기간 동안에는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안산 둘레길, 인왕산 둘레길, 남산 길을 걸었고 시간 날 때면 남대문 시장, 광장 시장에 들러 비좁아 부딪치며 걸으면서 사람 사는 냄새를 맡고 다녔다. 군산, 순천, 여수를 차로 돌아보고, SRT기차를 타고 부산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자연을 온전히 내 마음에 담을 수는 없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 오르던 안산 해골 바위와 약수터 가는 길은 너무나 반짝반짝 윤이 나는 고급 목재로 계단과 길이 나있고, 곳곳마다 맨발걷기 열풍으로 황토길을 조성해 놓아 신발을 신고 걷는 사람 숫자가 더 적어보이기까지 하였다. 늘 버킷리스트에 올라있던 ‘여수 밤바다’는 돌산도 입구까지 연결되는 케이블카가 그 기대를 대신 싣고 나르고 있었고, 부산 해운대에서 송정리까지는 폐선로 동해남부선 철로 위에 근사한 관광열차를 만들어 오륙도의 절경을 대신 책임지게하고 있었다. 오롯이 자연을 마음에 담기에는 내 선택지 잘못된 것 같았다.
후쿠오카를 베이스 캠프로 하고 인근 도시와 명소를 당일 여행으로 다녀온 큐슈 자유여행도 유후인 끝자락 금린호에 손을 담가본 기억과 벳부 유황온천 체험장에서 발을 담그고 족욕한 것을 빼고는 역시 온전한 자연을 마음에 담기는 어려웠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여 아직은 시차의 여파로 고전하는 중에 가까운 분의 권유로 10월 초, 마운틴 베이커 나들이를 다녀오게 되었다. 해발 3200m가 넘는 이 산은 밴쿠버 전역에서 그 자태가 한 눈에 보이는 캐스케이드 산맥에 속한 산으로 10월말이면 트레킹이 클로즈된다고 하여 그전에 한번 서둘러 가보기로 한 것이다.
차가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에 도착하기 직전, 산 위에 비밀처럼 드리워진 호수와 그리고 눈 산의 절경, 무엇보다 가을 햇살에 속살을 빨갛게 보여준 키 낮은 야생화와 나뭇잎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극치로 인해 짧은 감탄사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그 모습을 반 시간이나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바로 위 주차장에 차를 대고 준비가 부족하기에 먼 코스는 포기하고 약식 트레킹을 하기로 하였다. 얼추 그 코스의 가장 하이라이트인 야생화 만발한 지점에 도달해서 나는 비로소 자연을 마음에 담는 방법을 보게 되었다.
한 중년의 부부가 산길에서 살짝 벗어난 야생화 군락지로 걸어가더니 그곳에 앉아 거기까지 메고 온 악기를 꺼내 연주를 하는 것이었다. 우클렐레 합주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인지는 그 날 처음 깨달았다. 그들이 입을 열어 노래를 하기 시작하자 마운틴 베이커의 그토록 아름다운 절경은 그들이 부르는 멜로디와 함께 천상의 것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완전한 물아일체, 물심일여, 주객일체…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함에 취해 한참을 그곳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後記: 차로 돌아가는 길 한쪽에서 야생화로 꽃 장식을 한 신부와 어린 화동 2명, 그리고 신랑과 그의 친구로 보이는 증인 겸 주례가 산 정상에서 결혼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살면서 보아온 수많은 결혼식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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