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자연을 마음에 담는 법

민완기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12-18 11:27

민완기 /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8월말부터 9월 한 달간을 한국 방문을 하고 돌아왔다. 마음먹고 출타하는 김에 마침 올해 환갑을 맞는 여동생을 축하할 겸 베트남 패키지여행과 그리고 몇 차례 일본 방문을 하면서도 유독 큐슈 지방은 기회가 없어서, 부산 일정 뒤로 후쿠오카 자유여행까지 조금 과장하면 연암의 ‘열하일기’에 버금가는 대장정을 펼치고 돌아왔다.


 가격대가 저렴한 베트남 다낭 패키지 여행은 사실 아무런 기대없이 가격이 워낙 좋은 이유로, 그리고 하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리며 경기도 다낭시라고들 한다고 하기에 속는 셈치고 티켓팅을 했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 아니 가성비 갑 여행이었다. 왕복 항공권과 4성급 호텔 숙박에 3식 제공, 그리고 알찬 관광 프로그램으로 무장된 3박 5일 여행이 캔불 400-500불 선으로 되어있으니 과연 이게 가능할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물론 두차례 쇼핑을 끼워서 이윤을 남긴다고는 해도 강매분위기는 아니었고, 제공되는 식사의 질과, 한 코스의 관광이 끝나고 나면 덥고 습한 날씨에 지친 손님들에게 시원한 버스의 에어컨 바람과 함께 보너스로 제공되는 망고, 야자 냉 음료와 베트남 냉 연유 커피는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짚어주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그러나 이틀째인가 뱃사공 하나에 손님을 둘씩 태운 삿갓배가 대나무 숲으로 우거진 수로를 빠져나와 넓은 호수에 다다른 날이었다. 내심 망중한을 즐기고 모처럼 큰 호수에서 강바람에 더위도 식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삿갓배는 호수 가운데로 다들 모여 그곳에 마련된 수상 무대로 집결을 하더니 그와 동시에 무대에서는 한국의 트로트 메들리가 신바람나게 연주되면서, 무대로 뛰어올라간 흥이 넘치는 관광객들은 어깨춤과 막춤을 추며 ‘내 나이가 어때서’를 베트남 뱃사공과 함께 신나게 불러제끼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거나 마음에 담기는 실로 어려운 여행이였다. 


 한국에 머무는 기간 동안에는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안산 둘레길, 인왕산 둘레길, 남산 길을 걸었고 시간 날 때면 남대문 시장, 광장 시장에 들러 비좁아 부딪치며 걸으면서 사람 사는 냄새를 맡고 다녔다. 군산, 순천, 여수를 차로 돌아보고, SRT기차를 타고 부산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자연을 온전히 내 마음에 담을 수는 없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 오르던 안산 해골 바위와 약수터 가는 길은 너무나 반짝반짝 윤이 나는 고급 목재로 계단과 길이 나있고, 곳곳마다 맨발걷기 열풍으로 황토길을 조성해 놓아 신발을 신고 걷는 사람 숫자가 더 적어보이기까지 하였다. 늘 버킷리스트에 올라있던 ‘여수 밤바다’는 돌산도 입구까지 연결되는 케이블카가 그 기대를 대신 싣고 나르고 있었고, 부산 해운대에서 송정리까지는 폐선로 동해남부선 철로 위에 근사한 관광열차를 만들어 오륙도의 절경을 대신 책임지게하고 있었다. 오롯이 자연을 마음에 담기에는 내 선택지 잘못된 것 같았다.


 후쿠오카를 베이스 캠프로 하고 인근 도시와 명소를 당일 여행으로 다녀온 큐슈 자유여행도 유후인 끝자락 금린호에 손을 담가본 기억과 벳부 유황온천 체험장에서 발을 담그고 족욕한 것을 빼고는 역시 온전한 자연을 마음에 담기는 어려웠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여 아직은 시차의 여파로 고전하는 중에 가까운 분의 권유로 10월 초, 마운틴 베이커 나들이를 다녀오게 되었다. 해발 3200m가 넘는 이 산은 밴쿠버 전역에서 그 자태가 한 눈에 보이는 캐스케이드 산맥에 속한 산으로 10월말이면 트레킹이 클로즈된다고 하여 그전에 한번 서둘러 가보기로 한 것이다. 


차가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에 도착하기 직전, 산 위에 비밀처럼 드리워진 호수와 그리고 눈 산의 절경, 무엇보다 가을 햇살에 속살을 빨갛게 보여준 키 낮은 야생화와 나뭇잎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극치로 인해 짧은 감탄사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그 모습을 반 시간이나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바로 위 주차장에 차를 대고 준비가 부족하기에 먼 코스는 포기하고 약식 트레킹을 하기로 하였다. 얼추 그 코스의 가장 하이라이트인 야생화 만발한 지점에 도달해서 나는 비로소 자연을 마음에 담는 방법을 보게 되었다.


 한 중년의 부부가 산길에서 살짝 벗어난 야생화 군락지로 걸어가더니 그곳에 앉아 거기까지 메고 온 악기를 꺼내 연주를 하는 것이었다. 우클렐레 합주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인지는 그 날 처음 깨달았다. 그들이 입을 열어 노래를 하기 시작하자 마운틴 베이커의 그토록 아름다운 절경은 그들이 부르는 멜로디와 함께 천상의 것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완전한 물아일체, 물심일여, 주객일체…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함에 취해 한참을 그곳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後記: 차로 돌아가는 길 한쪽에서 야생화로 꽃 장식을 한 신부와 어린 화동 2명, 그리고 신랑과 그의 친구로 보이는 증인 겸 주례가 산 정상에서 결혼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살면서 보아온 수많은 결혼식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으로 남아있습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말씀이 어눌한 자 2026.09.18 (금)
출석하는 교회의 금요 예배 시간을 통해 EM청년부 담당 목사님으로부터 인상 깊은 주제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출애굽기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가 내놓은 답은 인간적인 주저함 그 자체였다.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어눌한 자니이다.” 한 민족의 운명을 짊어진 지도자로...
민완기
거울 2026.09.18 (금)
참 못생겼다참 많이 늙었다넌 잘났냐넌 젊으냐웃다가       울다가       싸우다가   또 웃다가  오늘도 두 영감이 함께황혼길 간다늙었다 못생겼다서로서로 놀리며마주보고 웃으며한평생둘도 없는길벗이 되어 
임윤빈
펴둔 채 2026.09.17 (목)
정원의 테이블은 봄에 폈다. 여름 내내 펴져 있었고, 지금도 그대로 펴져 있다. 한 번도 앉지 않았다.의자는 봄에 서로를 마주 보게 돌려두었다. 마주 앉아 이야기라도 나눌 것처럼, 둘을 바짝 당겨 붙여 두었다. 여름내 그 자세 그대로, 아무도 앉지 않은 두 의자가 서로를 마주 본 채 비어 있었다.의자 위로 먼지가 앉았다. 먼지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앉는 법이 없어서, 바람이 몇 번이고 지나가고 볕이 몇 번이고 들었다 물러간 뒤에야 겨우 얇은 막을...
윤의정
즈라촉 2026.09.17 (목)
당신은 나를 본다나는 당신을 본다가벼이가만히 즈려보는촉촉한 마음그 속에 비친 나빛난다​카니나마치 작은 소녀인 양​어두운 밤반짝이는 당신검은 밀도를 밀어내며 별빛을 두른다한 줄기 빛을 건넨다나는 그 눈동자 속작은 아이​꼬레마치 별을 삼킨 아이인 양​당신의 눈그 깊이 내가 스며 있나니​*즈라촉​*즈라촉(러시아어 зрачок)는 ‘눈동자’를 가리키거나눈동자와 관련된 여러 시대의 언어의 표현이다.
하태린
낙엽의 낯빛이 붉게 물들고 바람도 선선해지는 가을이 되면, 북쪽에 살던 캐나다 구스들은 따뜻한 남쪽으로 이사 갈 채비를 차렸다. 창공에 승리의 상징 같은 V자를 그리며 날아가는 구스들은 추운 북쪽 호숫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곳에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날갯죽지 깃털 속에 꿈을 숨겨 온 엄마 구스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자라날 때부터 연한 풀과 질긴 풀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어 체력이 유난히 좋았다. 게다가 더...
황정현
시절은 어느새 연분홍 자두꽃을 피워내는 중이다. 달력을 넘긴다. 손때 묻은 기억이 접힌 종이 위에 매달려 어제로 남는다. 지난달의 페이지를 뜯어내 버리면 한 달의 기억이 지워지거나 사라질 것만 같아서 그냥 뒤로 넘겨놓는다. 한 장씩 뒤로 밀려나면서 차곡차곡 쌓여 두터워지는 시간의 흔적. 어제의 두께는 한 달의 나를 품고 한 해의 나를 묵시한다. 여태 억지를 쓰며 새 달력 뒤의 벽에 붙박아 놓았던 지난해 달력을 이제 떠나보낸다. 달력을...
강은소
들꽃의 노래 2026.09.10 (목)
창조자의 섭리로봄의 문이 열리고 야생화의 작은 속삭임으로들녘마다 한 편의 시가 쓰인다 길섶의 민들레시냇가의 수선화돌 틈에 몸을 낮춘 할미꽃아무도 이름 불러 주지 않는이름 모를 꽃들까지 누가 먼저 오라 하지 않았는데도햇살이 따스해지면너희는 어느새환한 얼굴로 와 있구나 산들바람에 몸을 맡겨가만가만 춤을 추고말없이 향기를 피워 올리면하늘의 전령인벌새와 나비와 꿀벌이빛깔과 모양을 가리지 않고너희 곁으로 찾아...
김철훈
세월은내가 붙잡지 않아도저 혼자 흘러가고내마음은살아온 날들을하나씩 되돌아본다.젊은 날의 불꽃은이미 먼 데서 식었지만그 불꽃이 남긴 온기는아직도 내 안을 비춘다.나이 든다는 것은사라지는 것이 아니라조용히 내려놓는 일.기억이 흐려져도내가 살아낸 시간들은어디에도 사라지지 않는다.두려움이 찾아와도나는도망치지 않기로 한다흐려지는 날이 찾아와도내 마음만은흐려지지 않기를.남은 날들만큼은조용히,그러나 단단하게나로 살고...
이봉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