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서울 나들이

반숙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01-08 09:11

반숙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충청도 시골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가끔씩 서울 나들이를 한다. 서울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또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모처럼 가는 길이니 으레 올망 졸망 보따리를 거느리고 가야 하기 때문에 싸움터에 나가는 비장한 각오로 서울 행 직행 버스에 오른다.

  며칠 전부터 들기름 참기름을 짜고 콩이며 팥이며 골고루 챙겨 들다 보면 보따리는 서 너 개가 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이 가까워 오면 언제나 걱정과 실망이 먼저 온다. 그 많은 시외버스가 수없이 들며 나는 그곳에는 어찌 된 셈인지 아직까지 택시 승차장이 없다. 또 이상한 것은 빈 택시일 망정 짐이 있는 승객은 태워 주지를 않는다는 사실이다.

  손가방 하나 달랑 달랑 든 신사 숙녀 분은 잘도 타고 가는데 자식들에게 주려고 뼈 빠지게 일해서 머리에 이고 들고 늘어선 촌로들이나 아주머니들은 부지하 세월이다. 어디 이런 일이 마장동 터미널 뿐인가. 서울 천지 택시 타는 곳 어디고 보따리를 든 시골 사람은 귀찮은 존재다. 대부분 기사 양반들은 못 본 척 그냥 지나치기가 예사고 어쩌다 태워주기라도 하면 짐을 들고 앉아라, 요금을 더 내라, 재수가 없다는 등 구박이 말이 아니다.

  바람이 차고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요즘에도 농촌에서는 한가하지 못하다. 볏짚을 작두로 잘라서 논에 까는 일, 객토를 하는 일, 봄에 심을 고추 온상을 미리미리 손 보는 일, 과수 전정에 비닐하우스 돌보기 등 어느 한 가지 소홀할 수가 없다.
곤두박질 치는 축산물 시세에도, 연거푸 치솟은 사료 값에도, 적정 가를 밑도는 농산물 가격에도 이제는 놀랄 여력조차 없어 그저 막막할 뿐이다. 동네 고삿터나 경로당에 두세 사람만 모여 앉아도 무얼 해다 먹고 자식들 공부 시키느냐는 걱정이 태산이다.

  자립, 자조 의식 개혁은 철저히 되었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 보아야 현상 유지도 어려우니 채무밖에 늘어날 것이 더 있는가. 전기 세 기 천 원을 마련하기 위해 고추 열 근을 이고 장에 간다는 이웃들의 이야기는 농촌의 현실 그대로다.

  어느 한 철 편하게 앉아 볼 수 있는가. 논일 밭일 앞장서야 하고 영농 바라지에 집안 살림 도맡아야 하는 1인 다역의 농촌 주부들. 자녀들의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모처럼 얻은 농한기에도 파출부 자리라도 찾아 나서야 겠다는 농촌 어머니들의 모성애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들에게 만은 흙 두더지 같은 이 삶을 물려주지 않겠노라는 그들의 열망을 누가 탓할 것인가. 이렇듯 현실이 아무리 냉엄 해도 우리 다수의 농민들에게는 땅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믿음과 진실이 있다. 세태가 그렇지 조상 대대 뼈 묻고 살아온 고향 산천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도 천대 하지도 않는다는 죽음 같은 신앙이 있다.

  장기적인 영농 정책은 요원한 것인가. 과잉 생산의 조절은 그리도 힘이 드는 것일까. 농한기라도 일할 수 있게 부업을 맡겨줄 기업체는 없는가. 정말이지 이제는 이 헐벗음에서, 이 불안에서 헤어나 안심하고 농사짓는 농부가 되고 싶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보장 받는 농민, 따뜻한 대접 받는 농민이 되고 싶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대관령 양 떼 목장에 눈이 내린다영하 13도의 추위 속목장 언덕에 눈이 쌓이고돌풍 바람은 눈보라를 일으키며뿌연 안개를 뿌린다뺨을 때리는 눈보라로 얼굴이 얼얼하다뒤로 돌아서서 바람을 막아보지만앞으로 곤두박질 치고 만다전날 내린 비로 나뭇가지마다물방울이 얼어서 유리 구슬이 트리처럼 달리고세찬 바람에 꺾어진 가지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아래를 보나 위를 보나멀리 보나 가까이 보나 하얀 눈의 세계몸이 휘청 거리게 흔들어 대는...
조순배
  늙은 개와 70 이 넘은 늙은이는 그 성질을 바꾸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그들의 사고나 생활 습관이 이미 오랫동안 굳어지면서 그걸 고치기가 매우 힘들다는 이야기 인 듯하다. 필자의 경우도 새벽 2시 경이 되어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나쁜 습관을 옆에서 바꾸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마이동풍이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웬만하면 그냥 접고 만다. 특히 정치 이야기나 종교 이야기가 나오면 아무 소리...
정관일
하루를 다독인다 2024.02.12 (월)
하늘에 먹구름 한 점이 맘에 짙게 내린 어스름 같아바람이여 가져가라 했는데바람이 더디 온다고 구름은들먹들먹 울고 있다홀로 쏟는 속 울음이그리 쉬이 강이 되어 흐를 수 없어언젠가 올 바람을 기다리며두 손 모아 축축한 무릎그렁그렁 눈물로 씻는다마음에 창 하나 그려하늘가에 열어 놓고알몸으로 굴러야 했던 하루를바람결 이랑이랑 애절히 묻고가슴 비벼 문지르며썩어라, 아픔도 잘 썩으면꽃으로 피어나리버거웠던 하루를 다독인다
한부연
시인의 뜨락 2024.02.12 (월)
허퉁할 때 들여다보는 비밀의 뜨락이 있다몸집 가녀린 진달래가 머리숱 돋은 반송을 두르고실팍한 일본단풍 뒤 키만 껑충한 설악산 단풍나무 새강아지풀 같은 입술 내민 양버들까지다들 고꾸라질 듯 앞으로 몸을 내밀고 있다볕이 그리운 게다서녘볕이나마 온몸에 받고 싶은 게다고곡 방문길 노시인의 속주머니에 묻어와노수필가의 정성으로 틔운 고향 진달래병든 소설가의 퇴원길에 안겨온 희미한 분홍색 튤립제각기 다른 품, 다른 발길에...
김해영
전나무와 향나무 2024.02.12 (월)
   나무를 잘랐다. 앞마당에서 전나무와 함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었던 향나무였다. 이사 왔을 때만 해도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해가 지나 서로의 몸체가 불어나면서 향나무 가지가 전나무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향나무와 맞닿은 전나무 부분은 푸른색을 잃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향나무를 진즉 다듬어 주어 서로의 간격을 마련해 주어야 했다. 나무에 대해 잘 몰랐던 무지함과 게으름의 결과였다....
민정희
광교산 계곡에서 출발해 소리 없이 흘러온 물이 수문 앞에 다다라 소용돌이쳤다. 태양이 서포루(화성 서측 성벽 위 2층 누각) 너머로 뚝 떨어지는 순간, 사나운 포성을 질렀다.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하던 물이 일곱 홍예(화성의 북쪽 수문)를 지나 수직 낙하하며 갑자기 격정의 폭포수로 변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실개천보다 크고 일반 하천보다 작은 공간에 소망을 추구하는 사람, 우연의 재회를 꿈꾸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꿈들이 모여 방주의 천정...
박병호
   어린 시절 나는 눈을 참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동생과 뛰쳐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코끝과 손끝이 발개져서 집에 들어오면 갑작스레 따뜻해진 공기에 손발이 가려워 피가 맺힐 때까지 긁어 대곤 했다. 그래도 동네 친구들과 함께 눈을 굴려 가며 누가 더 큰 눈사람을 만들지를 겨루는 시간은 더없이 즐겁기만 했던 기억이다.  그 시절 눈이 오면 부모님이 “눈이 오네. 길 얼지...
윤의정
그림자 3 2024.02.05 (월)
한여름 고산의빙하를 감상하고내려오다 길을 잃었다초저녁부터브랜디와 와인을 걸친 산의 양 어깨는더욱 무거워 보였다어둠 속에서 혼자 싸우다 먹칠하다무사히 내려왔다​라면 끓여 허기 채우고산짐승 공포와 습기를 머금었던이슬 친 옷가지며 어두웠던 마음조차따사로운 모닥불에 털어 말렸다빠닥빠닥 말리고 훌훌 날려버렸다진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선애써 잠을 청했다산 그림자 서늘하다 못해오싹한 밤이었다​날카롭게 흘기던외 눈 달빛...
하태린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