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훈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언젠가 고국에서 유행했던 노래가 있다.
그 노래는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였다. 이 노래는 대한민국이 어려웠던 시절 많은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며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어졌던 대중가요이다. 그 당시 방송에서 흘려나오는 노랫가락은 내 입에서 무심코 흘러나올 정도로 잘 알려졌다. 모두가 힘든 시기에는 이렇게 희망을 주는 노래와 꿈을 갖게하는 설교는 듣는이들에게 희망을 갖게하거나 꿈을 꾸게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 있다.
내가 신학대학 때, 스승인 곽선희 목사님께서 우리들에게 “지금 할머니들까지 미국에 다녀오는 시절인데 목사가 외국을 모르고 어떻게 다음 세대의 목회를 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시며 “가능하다면 해외에 다녀오던지 유학을 다녀와야 할 것이다.” 라는 강의를 해 주셨다. 뿐만 아니라 그의 설교 중에는 반드시 “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라는 말씀을 수없이 많이 하셨다.
그 후 내가 밴쿠버 공항에서 곽선희 목사님을 영접하게 된 일이 있었다. 그 때 목사님께서 “아니, 자네가 여기에 있구만~”, 하셔서 나는 “네, 목사님께서, 예전에 할머니도 외국에 다녀온다하여 이렇게 유학을 왔습니다” 하며 함께 웃었던 일이있었다. 그 때 조영택 목사님과 곽목사님을 모시고 빅토리아 관광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유학 후 고국에 “쨍하고 돌아가리라”라는 꿈은 푸른 바닷물이 바위를 만나 부서지는 파도처럼 산산히 부서지는 물방울과 기체로 되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채 지금은 대형 트럭을 운전하는 트럭커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민자가 되었다. 이민자로서 이곳에서 우리가족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일하는 동안 세월도 흐르고 내 머리도 높은 산위에 흰 눈이 내리듯이 하얗게 변해버렸고 젊었던 얼굴은 굵은 주름, 잔 주름이 늘어난 할아버지 모습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않는 것은 오래전 비행기를 타고 올 때의 그 마음이다. 내가 외국에서 나이도 잊은 채 일하게 된 근원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젊음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열심히 일하고 지내면서 나의 마음 속에는 “나는 영원한 토종 한국인”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의 직업이 트럭을 타고 홀로 길을 달릴 때면 우리의 정서가 그립고 외로움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면 나는 아내에게 연락하여 “여보, 고국행 비행기 표 예약 해”하며 고국을 방문할 희망을 안고 운전을 하였다.
나는 지난 10월에 훌쩍 이곳을 떠나 11월에 고국에 다녀왔다. 인천 공항이 가까워지면서 부터 내 마음은 설레였으며 공항 로비에서는 나도 모르게 어린애 마냥 웃는 얼굴로 뛰어다녔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한 후 부터는 서울의 옛모습을 찿아 다니기 시작하였다. 경복궁, 덕수궁, 그리고 남대문과 광장시장에서 많은 사람들속에 섞여 지내다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서울의 모습은 현대와 옛 모습이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리고 전국 어디서나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발전된 전자국가의 모습, 놀라운 배달의 민족의 배달문화, 그리고 청계천과 중랑천에 잉어들이 살고 있는 광경은 실로 놀라웠다. 특히 내가 어려서 뛰놀았던 중랑천은 내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놀이터였다. 한 여름에는 물놀이는 물론, 개구리, 모래무지, 붕어 등등을 잡고, 가을에는 벼메뚜기를 잡아 참기름에 복아 먹었으며,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타던 그 시절이 떠올라 나는 잠시 추억속으로 빠져들었다. 고려의 시인 길제가 읆었던 “산천 의구한데 인걸은 간곳이 없네~ ”, 라는 시가 실감이 났다.
고국에 있는 동안 옛 친구를 만나고 친지들을 만나고 나니 그동안 내 속에 숨겨져 있었던 외로움과 그리움의 갈증은 어느정도 해소되었다. 특히 오랫만에 만난 친구와의 시간은 세월을 거슬러 우리들의 젊었던 날들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하였다. 서로의 이름을 자유롭게 부르는 옛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은 영화의 장면같은 추억이 떠오르며 그 순간 만큼은 생생한 기억들이 살아나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밴쿠버로 돌아오니 우리 문인협회 회원 한명이 캐나다 생활을 접고 고국으로 영주귀국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마 그는 나보다 더한 불치의 향수병에 걸린 듯하다. 우리 문인 중에는 해마다 이곳을 떠나 고국을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문학을 하고있음은 풍부한 감성과 예민한 정서를 갖고 있기에 더욱 향수병에 걸릴 위험이 있나보다. 나와 내 아내는 이미 고국을 향한 전염병에 걸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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