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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벌레 주워 먹어서라도 살아주길” 탈북 엄마의 눈물

신정선 기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01-21 16:37

다큐 ‘비욘드 유토피아’ 이소연씨

“엄마가 중국 가서 돈 많이 벌어 올게. 두 밤 자고 올게.” 탈북민 이소연(49)씨는 2008년 매달리는 6살 아들을 다독이고 북·중 국경을 넘었다. 그날이 아들을 본 마지막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국행에 성공한 이씨는 2018년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천안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를 찾아갔다. 이씨의 아들 구출 노력은 3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감독 매들린 개빈)에 담겼다. 이 영화는 23일 발표되는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작 중 다큐멘터리 부문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비욘드 유토피아’는 지난해 1월 미국 선댄스영화제 관객상 수상 후 입소문을 타고 지난해 10월 미국 영화관 600여 곳에서 정식 개봉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영화는 아들을 구출하려 애쓰는 이씨와 노영길씨 가족 5명의 집단 탈북을 교차해 보여준다. 코로나로 북·중 국경이 봉쇄되기 직전인 2019년 즈음 촬영됐다. 촬영 당시 두 가족의 탈출 성공 여부는 제작진도 모르는 상태였다. 밀반입한 휴대폰과 일부 경로에 동행한 촬영진의 카메라로 처절한 탈북 과정을 기록했다. 노씨 가족 5명의 탈북에는 브로커 50여 명이 관여했다. 노씨 장모, 노씨 부부, 두 딸은 중국에서 베트남 국경을 넘어 라오스 밀림을 지나 메콩강을 건너 태국까지 이르는 1만2000km를 목숨을 걸고 뚫어나간다. 일부 브로커가 깜깜한 밀림에서 노씨 가족을 같은 자리를 맴돌게 하면서 은근히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장면도 있다.

노씨 가족이 마침내 한국행에 성공하는 것과 달리, 이씨 아들은 도중에 중국 공안에 잡혀 강제 북송된다. 이씨는 19일 본지 인터뷰에서 “아들이 땅에 기어다니는 벌레를 주워 먹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만 있어주길 바랄 뿐”이라며 “아들과 얼굴을 마주 보고 밥 한 끼만 먹어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에서 탈북에 나선 우영복씨가 딸을 업고 어둠을 틈타 라오스 밀림을 헤쳐나가고 있다. 우씨와 두 딸, 남편 노영길씨, 우씨의 모친 박선옥씨는 함께 탈북에 성공해 한국에 정착했다.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에서 탈북에 나선 우영복씨가 딸을 업고 어둠을 틈타 라오스 밀림을 헤쳐나가고 있다. 우씨와 두 딸, 남편 노영길씨, 우씨의 모친 박선옥씨는 함께 탈북에 성공해 한국에 정착했다.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이씨는 한국에서 아들에게 보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 오전 7시부터 2시간은 시급 5000원 고시원 청소를 하고, 오후에는 서점에서 책을 나르고, 쪽잠을 잔 후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국에선 공부를 하면 알아주더라'는 생각에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탈북민의 한국 정착을 돕는 시민 단체인 ‘뉴코리아여성연합’을 설립해 수 년째 활동하고 있다.

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018년 즈음이었다. 북한을 드나든다는 조선족 브로커가 “2000만원만 주면 아들을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브로커는 건네받은 돈을 도박에 탕진하고 연락을 끊었다. 이씨는 김 목사를 찾아가 도움을 구하다 ‘비욘드 유토피아’ 촬영에 참여하게 됐다. 이때만 해도 해피엔딩을 믿었다. 그런데 아들의 탈북을 도와주겠다던 브로커가 배신해 공안에 밀고했다. 아들은 2019년 12월에 북송돼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다. 이씨는 “다른 브로커를 통해 아들이 고문을 당해 갈비뼈가 부러지고 초주검이 됐다는 전언을 듣고 내 탓이라는 자책감에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고위급 브로커가 이씨와 통화하며 “아들이 수용소를 나올 방법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장면도 들어있다.

이씨는 여전히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소개할 때도 “아들을 데려오지 못한 엄마 이소연입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선댄스 공개 직전까지도 아들 내용을 그대로 영화에 살릴지 고민했다. 혹시나 아들에게 해가 갈까 두려웠다. 이씨는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관심을 가져야 아들을 못 죽일 거라는 제작진 설득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10월쯤 브로커를 통해 아들이 살아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이씨는 “해외 시사회 관객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나도 엄마다’ ‘나도 아빠다’며 달려와 껴안아줘서 큰 힘을 얻었다”며 “제 아들과 같은 아들이 나오지 않도록, 김정은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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