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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디스 출신 화물기 조종사 “밤 비행 힘들지만, 승객 컴플레인 없죠”

김성윤 기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02-16 13:14

[아무튼, 주말] 사람은 태우지 않는 화물 항공기 타보니
새벽의 인천국제공항에서는 화물이 주인공이었다. 설 연휴 첫날이던 9일 오전 2시, 인천공항 여객터미널은 조용하다 못해 썰렁했다. 연휴를 맞아 해외 여행객들로 미어터지던 낮 풍경은 온데간데없었다.

반대로 화물터미널은 분주하고 활기가 넘쳤다. 창고에서 비행기까지 화물 뭉치를 꽁지에 매달아 운반하는 터그카(tug car), 그 화물을 비행기로 들어 올리는 카고로더(cargo loader) 등이 움직이며 내는 신호음과 소음, 불빛으로 시끌벅적했다. “화물 전용 항공기는 깊은 밤이나 새벽 운항이 많아요. 낮 시간은 여객기에 우선적으로 배정되거든요.”

항공업에서 화물은 승객만큼 중요한 부문이다. 해외 여행길이 거의 막힌 코로나 시절, 항공사는 화물 운송으로 간신히 생존할 수 있었다. ‘아무튼, 주말’은 이날 오전 4시 20분 이륙하는 에어인천 화물기에 탑승해 도쿄 나리타로 날아갔다. 에어인천은 2012년 설립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화물 전문 항공사다.

◇반도체부터 밴드 공연 장비까지

주기장에 세워진 에어인천 화물기 B737-800SF는 동체 왼쪽 옆구리가 활짝 열려 있었다. 카고로더가 들어 올린 화물을 작업자들이 밀어 넣는 중이었다. 에어인천 소속 로드마스터(loadmaster) 이현주 주임은 ULD(Unit Load Device·항공 화물 적재 장치) 운송장에 붙은 날짜와 무게를 꼼꼼하게 점검했다.

로드마스터는 ‘탑재물 관리 책임자’로 번역할 수 있다. 이 주임은 “화물을 탑재할 때 무게중심을 잘 파악해야 비행기를 띄울 수 있다”고 했다. “화물마다 부피와 중량이 달라요. 짐을 실을 때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배치합니다. 작지만 무거운 화물, 크지만 가벼운 화물도 있으니 계산기를 두드려요. 무게중심을 찾지 못하면 안전 운항을 위협할 수도 있으니까요.”

화물을 어떻게 적재하느냐에 따라 항공유 소비량도 달라진다. 항공사 수익과 직결되는 문제다. “연료 효율을 높이려면 무게중심이 항공기 앞쪽에 있어야 합니다. 이착륙 및 운항 중 안전에 최대한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연료 소모가 적도록 화물을 배치해요.”

B737-800SF는 보잉사의 중소형 기종이다. 제주도 등 국내선이나 저비용항공사(LCC)에서 주로 사용한다. 에어인천의 B737-800F는 측면에 창문을 막은 흔적이 보였다. 설왕수 안전보안실 부장은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항공기를 15년 정도 쓰면 잔고장 등 보수·점검할 것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때 대형 항공사들은 항공기 교체를 위해 사용하던 여객기를 내놓죠. 화물 항공사들은 대부분 이런 중고 여객기를 구매·개조해 운항합니다.” B737은 좌석 배치에 따라 승객 140~180명을 태우는데, 좌석을 모두 떼내면 화물을 21t가량 실을 수 있다.

중국·일본·베트남·말레이시아·러시아·싱가포르 등 6국 17도시에 취항 중인 에어인천에 실리는 화물은 핸드폰이나 반도체 같은 전자 제품·부품부터 화훼, 의류, 외교 문서, 구호 물품, 세계적 밴드 머룬5의 공연 장비까지 다양하다.

단골 고객은 전자·자동차 업체다. 조용무 운항통제실 실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애플…. 한마디로 작고 가볍지만 가격은 비싼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라고 했다. “해외 공장에서 제품 생산에 필요한 부품이 국내에서 화물기로 나갑니다. 해운으론 오래 걸리고 해풍 등으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죠. 현대자동차도 큰 고객입니다. 요즘은 자동차에도 전자 부품이 많이 들어가니까요.”

빠르게 변하는 패션 트렌드에 대응해야 하는 의류 업계도 큰 고객이다. 동대문시장에서 옷 샘플과 원단을 중국과 베트남으로 보내면 현지 공장에서 바로 생산해 한국으로 보낸다. 9일 나리타행 에어인천 화물기에는 전자기기, 화장품 등 중국에서 인천공항을 거쳐 일본 소비자에게 가는 제품이 많았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 중국 플랫폼이 국내는 물론 일본 전자상거래에 진출하면서 물량이 엄청 늘었습니다.”

◇스튜어디스 출신 여성 파일럿

스텝카(step car)에 장착된 계단을 밟고 항공기에 오르니 좌석이 3개 있었다. ‘승객도 안 타는 화물기에 웬 좌석이지’ 의아해하는데 김창희 정비본부 부장이 탑승하더니 자리에 앉았다. 정비사 경력 45년이 넘은 김 부장은 “나리타에 에어인천 정비사가 없어서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

“국토교통법상 비행기가 이륙하려면 공항 운항 관리사, 항공기 기장, 정비사 3명에게 이상 없이 비행할 수 있다는 확인을 받아야 합니다. 중국과 베트남 공항에는 우리 회사 정비사가 있어 확인해줄 수 있지만, 나리타에는 없기 때문에 갈 때마다 정비사가 동승해요.”

오전 4시, 콕피트(조종석)에서 운항을 준비하던 김승한 기장과 김현주 부기장이 나왔다. “화물기 탑승을 환영합니다.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되셨네요(웃음). 비상시 산소마스크가 천장에서 떨어질 겁니다. 구명조끼는 좌석 아래 있고요....” 평소 스피커로 듣던 안내 방송을 육성으로 들으니 신기했다.

오전 4시 20분,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김 기장이 콕피트 문을 열더니 “들어와 보라”고 했다. 구름 위에서 본 푸르스름한 새벽 하늘에 별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유난히 크고 반짝거리는 빛이 눈에 띄었다. “비행기냐?” 물으니 “금성(金星)”이라고 했다.

여성 파일럿이 모는 비행기를 타보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 부기장은 “항공 업계에 여성 운항승무원(파일럿)이 생각보다 많다”고 전했다. “대한항공에 57명, 진에어에 28명이 있어요. 에어인천은 4명이지만 운항승무원이 총 43명이니까 비율로는 가장 높지요.”

김 부기장은 ‘스튜어디스 출신 파일럿’이라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아시아나항공 객실 승무원으로 17년 근무했다. 퇴사 후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해 2018년 에어인천에 입사했고, 2500시간 넘게 화물기를 몰고 있다.

김 부기장은 “스튜어디스 때부터 비행기 조종에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콕피트를 들여다볼 때마다 재밌겠는 거예요. 아버지가 과학 선생님이셨고, 저도 이과(식품영양학과)여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기계를 좋아했어요. 마침 국내에 항공 조종 교육기관도 생기고, 교정시력 등 기장 기준도 완화되면서 도전했죠.”

야간 운항 위주인 화물기 조종이 힘들진 않을까. “힘들죠. 하지만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부담은 덜해요. 난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덜컹거리거나 출발 지연 등이 생기면 승객 컴플레인이 엄청나잖아요. 최악의 경우 비행기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 걱정도 덜하고요. 아직은 운항할 때마다 재미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남편이 ‘너는 좋겠다’고 해요(웃음).”

김 부기장은 곧 ‘모녀 파일럿’이 된다. “큰딸이 초당대학 항공운항과 3학년이에요. 졸업하고 나서 파일럿을 준비할 거래요.”

◇승객 없어도 기내식은 두 가지

이륙한 지 2시간 20분 만인 오전 6시 40분 나리타공항에 도착했다. 정비사 김 부장이 바빠졌다. 그가 확인 후 사인해야 하는 체크리스트를 보여줬다. A4 용지 3장에 작은 글씨로 30여 항목이 빽빽하게 인쇄돼 있었다.

“소고기 드실래요, 닭고기 드실래요?” 콕피트에서 나온 김 부기장이 물었다. 도쿄 현지 우동이나 소바를 맛보려나 했는데 “연 식당도 없고 나갈 시간도 없다”고 해 아쉬웠다. 승객도 없이 기장·부기장·정비사 고작 셋이 타면서 기내식이 두 종류인 게 의아했다. “여객기든 화물기든 기장과 부기장은 같은 음식을 먹으면 안 돼요. 음식이 상하거나 잘못됐을 경우라도 한 명은 멀쩡해야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거든요.”

기내식은 약간 부족하다 싶은 양에 샐러드·메인·디저트로 이뤄진 구성 등 여객기에서 먹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유난히 신선했다.

기내식을 먹는 동안 밖에서는 인천공항에서 실었던 화물을 내리고 한국으로 보낼 짐으로 다시 채우고 있었다. 이날 적재된 주요 화물은 화장품 용기였다. 설 부장은 “전자·기계 제품에 들어갈 부품이나 제품 생산에 필요한 기계 등이 일본에서 한국, 중국으로 많이 나간다”고 했다.

탑재를 마친 화물기가 오전 7시 40분 나리타를 이륙해 10시 25분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2시간 45분, 나리타로 갈 때보다 인천으로 올 때 25분 더 걸렸다. 김 부기장은 “갈 때는 뒷바람이라 빠르고, 올 때는 맞바람이라 느리다”며 “어떤 날에는 45분이나 차이 난다”고 했다.

직원용 버스를 타고 여객 터미널로 이동했다. 탑승권도 없이 화물기를 타고 도쿄에 가서 공항을 나가보지도 못하고 돌아왔지만, 여객기 타고 해외여행 다녀왔을 때와 동일하게 CIQ(세관·출입국·검역)를 거쳐야 했다. 출국하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익숙한 여객 터미널 풍경이 이날따라 낯설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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