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시간이 흐를수록 삶이란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이며 인간은 그 속에서 쉽게 넘어지고, 상처 받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누구나 늙고, 병들며 결국 죽음에 직면한다. 종종 불안과 절망으로 가득한 실존 적 두려움을 피해보려 하지만, 매스컴을 통해 매일 아침 인류의 고통을 새롭게 마주할 뿐이다. 언제 덮칠지 모르는 고통과 재난을 등지고 서서 어떻게 하면 이 존재의 한계와 가혹한 현실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한다.
창밖을 내다보니 밤새 내린 눈이 집과 나무, 도로와 자동차를 덮어 새하얀 풍경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평범하고 낡은 것들이 대체되어 마치 천상의 아름다움을 연상시켰다. 순간적으로 이렇게 황홀한 광경을 볼 수 있고, 살아있는 세계의 일부가 되어 존재한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나 머지않아 눈을 치우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커다란 삽을 들고 눈을 치우는 사람들은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려던 누군가의 노력이 역사 속에서 희미해졌 듯이, 조금 더 보기를 바라던 그림 같은 풍경도 서서히 지워졌다. 장면은 빠르게 바뀌고 잠에서 깨듯 현실로 돌아왔다. 눈 덥힌 풍경을 보며 감상에 젖었던 순간을 잊고, 눈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교통 혼잡과 차량 사고, 치워야 한다는 번거로움, 녹으면서 더러워질 진창 길과 녹은 눈이 얼어 미끄러울 빙판길을 떠올리며 짜증 섞인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는 부끄러웠다.
삶이 고통이고, 인간이 존재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해도 앞으로 닥칠 불행에 완벽히 대비하거나, 필멸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비난하고 분개하는 것으로 세상의 진로를 바꿀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온통 눈에 덮인 세상 속 신비에 빠져 더 오래 머물러야 했다. 생명의 원천이 되는 한 끼 식사에도 감격하고, 천천히 음식을 씹으며 맛을 깊이 음미해야 했다.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내가 속한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어야 했다. 불안에 떨며 숨어있기보다는 고독한 순간에 기도하며 침잠해야 했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자연을 벗 삼아 기울어진 정신을 일으켜야 했다.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집중하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의미를 찾고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인생이 항상 계획대로 되지 않고, 결국 죽음에 이르러 비극으로 끝난다고 해도 지금을 허투루 보내고 누리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지옥문을 스스로 여는 꼴이다. 고귀한 꿈을 꾸고 더 나은 세상을 바라며, 충실하게 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위험과 공포가 도사리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행복과 기쁨도 함께 존재한다. 어쩜 행복이라는 것은 높은 세상 적 지위나 성취가 아닌 평범한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기에 잘 인식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인해 생의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선한 마음을 가지고 오늘을 의미 있게 산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다정한 마음으로 눈 덮인 세상을 더 오래 감상하지 못한 아쉬움이 쌓여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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