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내 향기 내기 - 내 삶의 봄을 기다리며 -

최원현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04-02 16:40

최원현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 은은한 향기가 감돌고 있다. 무슨 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싫지 않은 냄새, 내 앞서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흔적일 것 같다.
나는 향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강렬한 향은 더욱 그렇다. 화장품도 향이 짙은 것보다 있는 듯 없는 듯 수수한 것을 선호한다. 사실 냄새란 무엇이건 그 자체만으로도 나기 마련이다. 미미한 것은 미미한 대로, 짙은 것은 짙은 대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스치기만 해도 느껴지는가 하면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만의 냄새가 맡아지기도 한다.
내 앞의 사람은 싫지 않은 향기를 내게 전해주고 갔는데 나는 어떨까. 혹여 좋지 않은 나만의 냄새가 다음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새삼 내 앞서 간 그가 고맙다. 내게 향기로움을 주고 갔으니 말이다.
사람은 그렇게 어디에 있던 어디로 가건 자기의 냄새를 풍기고 다님을 어쩌랴. 산다는 것은 결국 내 냄새를 피우는 행위가 아닐까. 그렇다면 더더욱 누구에게나 향기로운 냄새여야 되지 않을까.
사람의 향기란 곧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의 냄새일 것이다. 그래서 살아가면서도 내 삶의 향기가 어떨까를 확인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내게는 좋더라도 남에게는 나쁠 수도 있을 것 아닌가.

  나는 향수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런데 향수 중에 가장 향기로운 원액은 발칸 산맥에서 피어나는 장미에서 추출한다고 한다. 그것도 어두운,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에 딴다는 데 그때에 가장 향기로운 향을 뿜어내기 때문이란다.
자정에서 새벽 사이, 사방이 조용한 그 캄캄한 밤에 최상의 향기를 뿜어내는 장미를 상상해 보라. 짙은 어둠조차 장미 향에 젖을 것 같다. 그렇고 보면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그러면 사람에게 있어서 깊은 밤은 언제일까. 아픔과 슬픔을 겪는 어둠 곧 고통의 시간대가 아닐까. 사랑의 진실함도 그런 극한의 어려운 상황에서 나타날 것 같다. 그 진실함이야말로 그의 향기리라. 그런 고통과 슬픔, 진주를 아몰리는 아픔 속에서 작은 이룸을, 보람을 그리고 이해와 용서와 사랑을 쌓고 맺혀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인생의 향기도 가장 극심한 고통 중의 절망 같은 칠흑의 어둠 속에서 만들어질 것 같다.

  얼마 전 아내와 나들이를 했었다. 숙소가 가족 호텔이었는데 늦은 시간에 갔더니 얼마나 어둠이 짙던지 늘 환한 서울 길에 익숙해 있던 터라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렵게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야말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하늘을 보니 별 몇 개가 그 어둠 속에 동동 떠있었다. 얼마나 초롱 초롱한지 그리고 너무도 가까이 떠있는 별을 보며 나도 모르게 밖으로 이끌려 나갔다. 가로등이 없는 반대쪽은 분명 산일 터였다. 그러나 산도, 소리만 있는 물도 그저 까만 어둠의 보자기에 푹 싸여 있었다. 거기 숨 막혀 참을 수 없다는 듯 별 몇 이 그 보자기를 뚫고 고개를 내민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 그 별에선 별 냄새가 났다. 어린 날 다리미질을 하시는 할머니를 도와 다리미 질감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을 때 쉬익 왔다 가던 숯불 손 다리미의 열기, 그런 열기와 숯불 냄새였다.
사람에게 있어서 향기와 빛은 다 같이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것들이다. 향기는 향기대로, 빛은 빛대로 그가 살아온 빛과 냄새를 풍기게 되고 그가 살아온 모습을 나타내게 한다.

  나이가 조금씩 더 들어가면서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런 향기와 빛에 대한 부담이다. 말하자면 나에 대한 책임감이다. 젊을 때는 내가 어찌 했건 또 어찌 하건 크게 염려 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게 두려움이 된다. 내 지나온 걸음, 내가 찍고 온 발자국들에 대한 책임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한다. 남들은 다 똑바르고 일정한 간격인 것 같은데 유독 내 발자국만 삐뚤리고 간격도 들쑥날쑥 하다면 남들이 보면서 뭐라 할까. 나는 휙 스치고 지나와 버렸지만 그렇게 지나가 버린 나를 두고도 남겨진 냄새를 통해 또 뭐라 할 것인가. 괜시리 심란해진다. 그래서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고 하나 보다.

  봄이다. 한 해의 첫 계절에서 맞는 생각은 무엇보다 아까운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작정 시간을 아낀다는 것이기 보단 꼭 해야 할 일을 우선적으로 하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은 과감히 버릴 줄도 아는 분별력을 갖자는 뜻이다. 있어야 할 곳에는 분명히 가 있고, 없어야 할 곳에선 보이지 않는 그런 행보 속에서 내 냄새 내 빛깔을 남기고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시간은 흐름이다. 흐름에도 마디가 있다. 그냥 흘러가는 것 같은 물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주춤거리기도 하고 빨라지기도 한다. 그때마다 매듭이고 마디가 생긴다. 어쩌면 흐르는 것들도 잠깐씩 흐름을 멈추고 자신을 되돌아보려 하는지 모른다.
지나간 것 흘러간 것은 그리움이 되고 아쉬움이 된다. 그렇기에 또 가슴 설레는 시작을 준비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도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날이 아닌가. 그렇기에 아직 지나지 않은 시간에 대해 보다 신중해야 하리라.
이제 곧 여름도 되리라. 시간이 가는 것이 눈에도 보인다. 후회 없는 삶, 보다 아름다운 삶, 향기 나는 삶을 위해 나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마음도 열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잠깐씩이라도 고민도 하고, 지금의 내가 있도록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도 하는 그런 여유도 챙겼으면 싶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춥고 배고프고 어렵게 살면서도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고 있는 이들 덕에 이나마 나도 희망을 챙기는 것이 아닐까.

  겨울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봄이 곧 온다는 희망이었다. 그런 희망으로 살아가는 시간 시간 속에서 쉼표 하나씩을 찍어 숨 돌리기를 해가며 지나온 삶과 살아갈 삶을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시간의 마디, 시간의 매듭에 얹혀 멈칫하는 사이 내 머무름만큼 스쳐감 만큼 남을 내 냄새, 내 빛이 어떤 것일지를 생각해 보며 살아가는 삶이어야 한다는 철 늦은 깨달음이다.
언젠가 광화문의 큰 건물에 걸려있던 말이 생각난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그렇다. 나 아닌 누군가에게 아주 작게라도 힘이 되고 도움이 되어줄 때, 그런 삶일 때 내 향기, 내 빛은 내게는 보람으로, 내 뒤에 오는 이들에겐 희망이요 삶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한 계절을 살면서 내 삶의 계절에서만 풍겨낼 수 있는 나만의 향기를 만들고 품어간다. 산다는 것은 나만의 향기내기일 것이기에.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아모르 파티 2023.06.12 (월)
오면 반드시 가고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것이는 자연의 법칙이며진화와 멸종의 순리라 하네지극히 작고 유한한 생명체에 불과한 내가전생에 무슨 좋은 업을 지었기에이처럼 아름다운 창조주의 작품들을무시로 누릴 자격이 주어졌는가?공기, 빛, 물, 푸른 대지그리고 그대! 어제의 숲을 지나와오늘의 삶의 광장으로 흘러든 내가무한한 내일의 대양(大洋) 앞에 서서인간으로, 오직 하나뿐인 진정한 나로숨 쉬고 있음이여ㅡ 아모르...
안봉자
속삭임 2023.06.12 (월)
   시원한 강 바람 불어오는 선창가 봄을 맞이하는 상춘객으로 들끓는다. 어느새 겨울옷 벗고 밝고 상쾌한 차림인 그들의 소곤거림과 웃음소리가 새어 나가고 있다. 난 아직도 거무튀튀한 겨울의 칙칙함을 몸에 칭칭 감고 있다. 그러나 햇살은 영락없이 봄을 쏟아내며 현란한 빛을 자랑한다. 냄새와 실 바람은 감미로운 아이스크림같이 영혼에 스며든다. 강 둑에 넘치는 자연의 유희는 찰랑이고 아득한 산 자락은 산봉우리 꼭대기 흰 눈을...
박혜경
잠시 들이친 소나기처럼한 줄기 빛으로 날아와별 꽃처럼 빛나다찰라의 무지개 언덕을뜨거이 너머그리운 긴 그림자를 드리워애틋이 설레다시린 슬픔 고여 놓고기다림 깃든 여운 속을차거이 흩날려머물지 않는 사랑은영영 살아서그리운 불꽃으로서늘히 흔들려가는 바람
백혜순
 작년 9월에 주문했던 차가 일주일 내로 나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팬데믹으로 반도체 공급 난이 심해지면서, 신차 출고가 일 년씩 미뤄진 상태였는데 생각보다 빨리 새 차를 받게 되었다. 자동차 딜러는 운이 좋아 주문한 차가 빨리 나왔다며 좋아했지만,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십 년을 함께한 노후한 차와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왔기 때문이다. 살아있지 않은 대상에게서 생명체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어떤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
권은경
유월이 오네요 2023.06.05 (월)
당신의 마당에 우뚝실유카 꽃대 올라오네요꽃샘 바람, 황사 먼지 바람메케한 연기 바람 모두 쏟아내고지친 봄 날 서둘러 떠나가네요주렁주렁 실유카 꽃봉오리피어나려는 소리 울려 퍼지는하이얀 종소리 들리나요유월이 오네요우리 흩어진 마음 다독이면실유카 꽃송이 활짝 피겠지요단단한 열매도 낳겠지요
강은소
2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한밤중에 엄마는 나를 깨워 황급히 옷을 입혔다. 잠이 덜 깬 채 엄마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겨울바람이 쌩쌩 불었다.“에취! 추워!”며칠 집에 오시지 않던 아빠가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아빠!”나는 달려가 아빠 품에 안겼다.“세진아! 이제부터 우리 세진이가 엄마 보호자야.”“왜? 아빠는 어디 가는데요?”아빠는 나를 한 번 안아주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엄마는 나를 붙들고 떨고 있었다. “아빠,...
이정순
마음의 거울 2023.05.29 (월)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에고요한 하늘이 들어와 앉는 오월장미가 향기를 발하고 있다 살아온 시간 들이 세월로 엮여갯내만큼 깊이 스민다 무심코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지금쯤 다른 사람의 가슴에서무슨 색깔로 자라고 있을까늦은 저녁 찬찬히거울 속의 나를 본다 때 묻은 마음속엔자신을 감싸는 지혜를 키우면서남보다 나를 먼저 놓는 잣대는굵어져 갔을 것이다부끄러운 마음을 가슴에 안고거울 속의 나를 본다 내가 뿌린 말의...
강숙려
“향수” 2023.05.29 (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 이야기 지즐대는 ~ ”으로 시작되는 이 노랫말은 정지용 시인이 100년전 일본 유학생활 중 쓴 시이다. 이 시가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작곡가 김희갑에 의해 곡이 완성됨으로 인해 지금은 대한민국 국민의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우리 민족에게 고향은 눈을 감아도 잊지 못하는 곳이다.  우리 부모님들 세대에 6.25전쟁으로 북에서 피난 내려와서 두고온 땅을 그리워 하며 얼마나 애타게 고향노래를 불렀던가?...
김유훈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