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희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고백하자면 나는 악보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 그러나 부엌일을 하거나 단순한 손 일을 할 때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다. 음악을 들으며 일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힘든 줄도 모른다. 음식을 골라 음미하는 미식가 같은 진정한 음악 애호가는 아니지만 그저 클래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쇼팽, 모차르트, 바흐, 두루두루... 마음이 울적하면 아베마리아를, 단풍이 질 때는 비발디를 , 그때 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듣는다.
몬트리올에서의 이야기다. 2008년은 내 생애에서 가장 힘든 해였다. 38년간 함께 살았던 남편이 떠나고 난 후 빈 둥지가 된 집을 부동산에 내놓고 있던 11월이었다. 나에게 늘 불어를 번역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던 퀘벡인 명일중(Georges Morin. OFM) 신부님의 안내로 나가노(Nagano)가 지휘한 몬트리올 오케스트라의 메시앙(Messiaen) 의 ‘아씨 시의성 성 프란치스코’ 오페라를 가 보게 되었다. 긴 장편 오페라로 공연 중간에 저녁 식사 시간까지 합치면 거의 6시간 이상에 걸친 최장의 오페라였다. 내가 표를 구입했을 때 음악을 좀 아시는 분들이 메시앙의 오페라는 현대 음악이고 음악적으로도 어려운 오페라인데 어찌 소화하겠느냐는 친절한 우려를 해 주었다.
내가 겁 없이 오페라 ‘아씨 시의 성 프란치스코’ 표를 선뜻 샀던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따르는 프란치스칸 삶을 살기로 한 재속 회원이기 때문이었다. 중세의 음악과 미술 등 모든 예술 분야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야기를 메시앙이 어떻게 오페라에서 묘사하는지 보고 싶었다. 일단 입장권을 구입한 이상 할 수 있는 한 메시앙의 오페라를 알아야 했다. 인터넷을 통하여 메시앙 오페라에 관한 공부를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숲속을 거닐며 새 소리를 오선지 노트에 적으며 음악적 감수성을 키웠고 후에 빠리 음악 학교 교수를 하며 많은 유명 음악인들을 양성했다. 그는 또한 음악의 조류 학자라 불릴 정도로 새들의 노래를 음악으로 표현한 현대의 유명한 작곡가이기도 했다.
몬트리올의 11월 초순은 본격적인 겨울이 아니다. 그러나 그해 공연 당일은 오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많이 내린다는 불안한 일기예보가 있었기에 나는 예상 시간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시내는 주차하기도 어렵고 더욱이 눈이 오는 날이므로 집에서 멀지 않은 전철역 근처 주차장에 주차하고 전철을 탔다. 명 신부님과 수사님 한분도 함께 관람 했는데, 나는 전철을 이용한 관게로 개막 전에 도착했으나 그들은 시내버스로 오느라 약 3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벌써 눈이 많이 내려 교통 체증이 심하다고 했다. 불안감도 잠시 우리는 오페라 속으로 곧 빠져 들었다.
무대는 아주 단순했다. 짙은 밤색(프란치스칸 수도복 색깔) 과 흰색의 휘장들이 전부였다. 사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난과 겸손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았던 성인이기에 화려한 무대는 어울릴 수 없었을 것이다. 대사는 영 불어로 원하는 대로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오페라를 음악적으로 이해한다는 것, 특히 현대 음악인 메시앙의 오페라를 소화하기에는 나의 음악 지식으로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를 잘 알고 있으므로 오페라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 귀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음악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듣기 때문이었다.
프란치스코가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오를 때 그는 나뭇가지를 주어들고 마치 악기를 연주하듯 찬미의 시를 읊조렸다. 이 장면에서 나는 중세 음유시인(tourbadour)의 모습을 보았다. 인간들이 성인의 설교를 외면하자 새들에게 설교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함께 정글의 숲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또한 성인이 어느 수도원에서 몽둥이로 얻어맞으며 문전박대를 당했을 때 함께 있던 레오 형제에게 그런 모욕이 가장 큰 기쁨이라 했던 이야기에서 겸손의 극치를 보았다. 가장 내 가슴을 뛰게한 장면은 성인이 새들에게 설교할 때였다. 새들의 소리는 내 귀를 통하여 가슴 속 구석구석 파고들어 와 내 영혼을 흔들었다. 새들은 외침으로 혹은 날개짓으로 화답하며 찬미의 노래를 불렀다.
장장 6시간에 걸친 오페라가 막을 내렸을 때는 이미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철 안에서도 새들의 노래 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주차해 놓은 전철 역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는 자정이 거의 가까운 시각이었다. 눈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통행자도 없는 눈 내린 밤, 가로등에 비친 얼어붙은 주차장 표면은 매정한 날씨 답게 금속성의 번쩍임으로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내 차까지 걸어가는데 발목까지 눈에 푹푹 빠졌다. 어렵게 문을 열고 일단 시동을 걸어 보았다. 처음엔 부릉부릉 하다가 드디어 부응하고 시동이 걸렸다. 차는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영하로 내려간 탓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유리창에 눈을 대충 쓸어내고 눈 아래로 깔린 얼음을 깨야 했다. 꽁꽁 얼어붙은 주차장 한 가운데 무인도에 떨어진 미아처럼. 이럴 때 남편의 존재가 얼마나 크게 느껴졌는지…. 할 수 있는 모든 기도를 다 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여! 수호천사여! 나를 도와주세요, 얼음을 깨 주세요, 차를 주차장에서 빼 내 주세요! 나는 미친 듯이 기도하며 얼음을 깼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유리창 얼음이 금이 쩍 갈라지면서 우르르 얼음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다음 단계는 차를 도로까지 무사히 빼 내는 일이었다. 차 안에 들어가 가만가만 전진을 해보았다. 처음에는 타이어가 얼어붙어서 부드득 부드득 얼음 부서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순간 휙 하고 얼음을 가르고 타이어가 빠져나왔다. 겨우 도로로 나왔을 땐 이마에 땀이 송글거렸다.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자정이 넘어 집에 도착했으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꽁꽁 얼어붙었던 차를 도로까지 몰고 나온 기적 같은 감동과 메시앙 새들의 노래 소리로 아직도 가슴이 벅찼다. 그 날 밤 나는 꿈속에서 얼음 나라에 사는 날개 큰 새들이 얼음 벌판을 날아다니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코러스를 들었다. 그 후로도 나는 가끔 새들의 노래를 가슴으로 듣는다. 아직도 가슴이 뜨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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