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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부터 미래를 배운다

문영석 yssmoon@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24-05-31 08:46



지난 주말 늘푸른 장년회가 주관하는 원로교민 간담회에 참석해달라는 전화가 와서 필자는 원로가 아니어서 참석 안 하겠다 했더니 그날 좌담회의 주제가 한인 역사박물관 개설에 대해 논의하니 나와달라고 했다. 필자는 2007년 한국 정부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로부터 위촉을 받아 재외동포사총서, 캐나다 한인이민사를 집필한 적이 있다. 이 땅에 본격적으로 한인이민이 시작된지 어언 반세기가 흘렀다. 1905년 캐나다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캐나다에 유학생으로 최초로 입국하였던 사람은 김일환이었으며 이후 많은 이들이 이 땅에 유학을 왔다. 최초의 한인 이민은 의사였던 황대연 박사(1914-1999)를 꼽는다. 그는 서울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후 1947년 앨버타 라먼트 병원에서 인턴 수련을 마친 후 1957년부터 온타리오주 블라인드 리버에 정착하여 의사로 개업했다. 지역주민들은 그를 매우 존경하여 아예 한 거리의 이름을 Wang Street로 명명했을 정도였다. 그는 토론토에 있는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에 한국문화 전시실을 개설하고 이를 후원하는 한국예술진흥협회의 초대 회장으로서 다대한 기여를 하였다. 필자가 토론토에서 공부하던 1980년대 이분이 토론토에서 개업하고 계셔서 만난 적이 있다. 

이날 좌담회의 중론은 이런 사안은 어느 특정 단체가 아니라 전 교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하는 사안이 되어야 하고 특히 교회·성당·절 등 종교단체들도 자신들의 교회. 성당에만 매몰되지 말고 그들의 사회적 책무를 일깨워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이날 좌담회의 백미는 10여 명의 늘 푸른 청년회 회원들이 행사의 진행을 도왔으며 무엇보다 감동했던 것은 그들이 원하는 교민문화센터 청사진을 도면설계와 함께 제시한 점이었다. 많은 교민 2세들이 한글학교를 다니지만, 모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익힐 기회와 공간이 있을 때 비로소 모국어 학습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백인들은 우리가 굳이 헝가리계 캐나디안 혹은 우크라이나계 캐나디안이라 말하지 않지만, 동양인들은 몇 대가 지나가도 외모가 바뀌지 않는 한 늘 Chinese-Canadian 혹은 Korean-Canadian이라 불린다. 이와 같은 현상을 캐나다에서는 Hyphenated Canadians라 한다. 

인간의 정체성은 자신을 둘러싼 전통과 문화적 요소 등이 상호작용하는 다차원적인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런데도 교민 숫자가 최소 5만이 넘는다는 광역 밴쿠버에 한인들이 공동 행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 늘 식당이나 호텔 등을 전전해야 한다. 밴쿠버에서 가장 누추하고 위험한 거리에 있는 현행 한인회관은 그나마 주차장 시설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끊임없는 분쟁과 반목, 법정 소송 등으로 대다수 교민들로 부터 냉소와 외면을 받은 지 오래다. 우리와 역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관계인 일본문화센터를 보면 현재의 한인회관은 우리의 처지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샘플이다. 밴쿠버 일본인회관(Nikkei Centre)은 우아한 정원과 상설 역사박물관이 있고 토론토는 일본인회관이 소재한 거리 이름이 아예 6 Sakura Way, Toronto로 명명되었고 후원회원들의 절반이 아예 비 일본계일 정도이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력, 비판적 사고력, 판단력을 얻는다. 역사를 잊는 자에게는 미래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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