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희 (사)한국문협 밴쿠버 지부 회원
영화를 보면 암살하는 장면들이 있다. 힘이 센 상대를 정면에서 대결하지 않고 상대가 무방비 상태일 때 공격하는 것이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훌륭한 전술이 아닌가? 약자가 강한 자를 상대로 승부를 역전하는 장면은 역사의 고비마다 굽이굽이 펼쳐져 있다. 반대로 내가 방심하여 패배하기 쉬운 가장 위험한 장소는 어디일까? 일상에서 내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위험한 장소는 어디인가? 여러 곳이 있지만 그중 대부분에게 납득될 만한 곳은 집. 가정이 아닐까?
필자의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 중들에 강력계 형사가 한 명 있다. 하루는 그 친구와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가 개그맨 이경규의 양심 냉장고라는 몰래카메라 프로가 사회적으로 이슈몰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도 전국적으로 캠페인을 해야 해."
" 무슨 캠페인?"
"칼 끝을 둥글게 둥글게 캠페인"
전국적으로 온 가정의 칼을 모두 둥글게 하면 전국의 살인 사망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말이었다.
“정말이라고. 그래서 우리 집 칼은 내가 다 끝을 둥글게 갈았어. “
살인 현장을 많이 둘러본 그 친구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진지한 표정이 기억난다. 게다가 근거로 들이대는 현장경험들은 제법 논리를 갖추기도 했다. 자신만의 경험을 근거로 한 이야기였지만 아주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다. 돌아보면 집안에 무시무시한 연장들이 얼마나 즐비한가? 또한 집에서 먹는 음식은 어떤가? 끼니때마다 매번 무슨 내용물이 들어가는지 세세히 검열하며 먹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 바쁜 세상에 매번 내가 먹을 것을 만들어 먹을 수도 없다. 역사를 들춰 봐도 적지 않은 왕들이 의문사를 당했다. 그중에 독살당한 경우도 꽤 있다. 내가 무방비 상태로 잠들어 있는 상황은 또 어떤가? 생각을 조금 풀어주니 섬뜩하며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생각이 정신없이 흔들리며 날카로운 칼날로 변신한 때이다. 생각의 칼날들이 내 자아를 공격한다.
그러한 위험한 공간이 갑자기 사랑스러운 공간으로 뒤바뀌는 때가 있다. 상대방을 믿을 때이다. 신뢰 분위기가 형성되면 같은 공간이 천국으로 변한다. 지상의 천국은 가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서로 믿을 수 있을 때 상상 속의 지옥이 천국으로 변한다. 마찬가지로 서로 믿지 못할 때 천국이 불신 지옥으로 변한다. 도저히 믿지 못할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를 당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인 호구로 여겨주어 감사하기는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비슷한 일이 일상의 언어생활인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대화가 펼쳐지는 방향이 어디로 가는가에 따라 천국이 전개될 수 있고 대화는 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 대화의 방향이 힘의 주도권 쟁탈 전. 상대를 조롱하고 깎아내려 그 명성을 발가벗기려 할 때. 나의 우월함을 당신에게 인정받고 추앙받으려 할 때 지옥문이 열린다. 상대방의 비난과 명령이 내 의견과 질문을 뭉개버리고 내가 할 일들이 내 의사와 달리 결정될 때. 내 의견들이 상대의 권위와 나이. 성별. 인종의 다름과 계급의 차이. 지식과 경험이 많고 적음에 따라 내 행동이 주변의 규칙. 정해진 결정에 복무해야 하는 당위사항이 될 때. 그리하여 나라는 존재 자체가 내 의사와 상관없이 상대방이 원하는 목적의 한 부분이 될 때 누구나 억압되는 자유. 지옥을 느낀다. 같은 대화라도 상대방의 의사를 먼저 듣고 그 처지를 물어보고 세심한 배려의 감정이 오가는 분위기. 그리하여 새로운 깨달음이 내 존재가 성장의 발판을 디딜 때 다음 만남이 가능성을 가진다. 관계의 길이 열리고 신뢰의 꽃잎이 뿌려진다.
변화가 심해질수록 기존의 익숙한 질서가 조각조각 나서 전체의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다. 범위 설정과 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해석은 다르고 인지도 다르기 마련이다. 모두 맞지만, 누구도 맞지 않는 일들이 생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진리가 된다. 다른 맥락에서 파생된 새로운 가치들이 새로운 혼란과 경쟁을 부르고 전체를 보기 힘든 사람들은 소음에 귀를 닫는다. 혼란 안에서 관계를 형성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미 형성된 관계라도 작은 외부 충격과 다른 의견에 다툼으로 번지고
관계는 단절된다. 어렵게 만든 단체는 깨지고 다음 만남은 기약이 없다. 이제 다른 존재와 친밀감을 형성하기가 힘들어진다. 해서 이 시대의 새로운 질병은 불안과 신경증을 넘어 단절. 외로움이 되었다. 바야흐로 친밀감 형성의 수난 시대이다.
누가 나의 진정한 이웃인가? 어디가 안전한 공간인가? 우리는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 무엇을 요구받는가? 먼저 친절함이다. 친절한 공간과 공감과 배려는 환대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2% 부족하다. 이제 예쁘고 친절함은 상품의 형태로 시장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제 예쁨과 친절함은 돈만 있으면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이 친절함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이 진정성과 일관성이다. 친절함을 믿지 못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금 상대방의 친절이 내일도 변함이
없으리라는 진실함의 기대. 진정성과 일관성이 관계를 지탱하는 신뢰의 지반이다. 지금 친절하고 그것이 진정한 마음을 품고 내일도 지속될 것이라는 일관된 믿음이 사회에 충만할 때 주변의 지옥들이 천국으로 변화하는 놀라운 일상이 함께하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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