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맥길대 생쥐 실험 결과
폐포 면역세포 기동력 떨어진 탓
폐포 면역세포 기동력 떨어진 탓
역한 담배 냄새를 피하기 위해 선택한 과일향 전자담배가 폐 건강에 더 치명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같은 전자담배여도 향을 첨가하면 흡연자의 폐 면역 능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지타 타나발라슈리아르(Ajitha Thanabalasuriar) 캐나다 맥길대 교수 연구진은 24일 국제 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과일향 전자담배 연기에 노출되면 폐의 박테리아(세균) 감염률이 최대 10만배 증가한다”고 밝혔다.
전자담배는 잎을 태우는 담배(연초)와 달리 니코틴이 들어있는 용액이나 고형물을 전자장치로 흡입하는 방식이다. 종류는 크게 액상형과 궐련형으로 구분된다. 액상형은 니코틴 액상을 가열해 수증기를 흡입하는 방식이며, 궐련형은 담뱃잎을 찌거나 가열해서 피우는 방식이다.
전자담배는 담배 특유의 역한 냄새가 없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지난 8월 발표한 ‘2019~2023년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분석’에 따르면 국내 전자담배의 흡연률은 2019년 5.1%에서 지난해 8.1%로 증가했다. 잎담배 흡연률이 같은 기간 37.4%에서 36.1%로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전자담배의 사용률 증가세는 가파른 편이다. 특히 과일향을 첨가한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판매량이 계속 늘고 있다.
연구진은 과일향을 넣은 전자담배가 폐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동물 실험을 진행했다. 생쥐는 별다른 향을 첨가하지 않은 전자담배와 과일향을 첨가한 전자담배의 연기를 10일간 매일 흡입했다. 이후 폐렴과 패혈증을 일으키는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을 감염시킨 후 결과를 관찰했다.
연구진은 녹농균에 감염된 후 24시간이 지나 생쥐의 폐에서 분비물을 채취해 분석했다. 그 결과, 과일향이 첨가된 전자담배 연기를 맡은 생쥐의 폐 분비물에는 mL(밀리리터)당 10억마리(CFU)의 녹농균이 번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향을 첨가하지 않은 전자담배를 맡은 생쥐는 녹농균이 1만마리에 그쳤다. 같은 전자담배 연기를 맡더라도 과일향 여부에 따라 박테리아 감염률이 최대 10만배까지 차이날 수 있다는 결과다.
과일향 전자담배가 폐 건강에 더 치명적인 이유는 면역세포의 기능 저하가 꼽혔다. 폐와 혈관 사이에서 산소,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폐포에는 면역세포인 대식세포가 있다. 폐포 대식세포는 외부에서 들어 온 바이러스, 박테리아 같은 병원체를 잡아먹는다. 마치 중요한 시설을 지키는 경비병처럼 인근을 순찰하다가 병원체가 침투한 곳으로 모여 들어 단번에 제압하는 식이다.
과일향 전자담배 연기는 폐포 대식세포가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능력과 함께 이동성을 크게 위축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대식세포가 다른 폐포로 이동하는 비율은 무향 전자담배 연기를 맡았을 때 33%였던데 비해 과일향 전자담배 연기를 맡은 경우에는 9%로 급감했다.
녹농균이 폐에 침투하더라도 폐포 대식세포가 이동하지 않으면 번식이 활발해져 감염에 취약해진다. 연구진은 과일향을 내는 향료가 대식세포의 이동성을 결정하는 유전자 ‘CDC42′의 발현을 억제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타나발라슈리아르 교수는 “가향 전자담배가 면역체계를 교란할 수 있는 만큼 적절한 규제와 공중 보건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특히 기저질환이 있거나 감염에 취약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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