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가버린 여름 뒷자락 따라 나간 저녁 산책길
내 뒤를 밟은 모기 한 마리가
눈치도 못 채게 허벅지 뒤를 물고 갔다
이 까다로운 몸,
아침이 되자 온 허벅지가 단단히 부어올라
청양고추를 문지른 듯하다
참 가벼운 녀석의 실처럼 가느다란 입으로
실로 어마어마한 영향력이 아닌가
나는 며칠간 잠 못 들고
가렵고 아프고 열이 나게 부어오른
피부를 얼음찜질하며
모기의 생애를 생각한다
어딘가 물속에서 태어나
해맑게 물장구나 쳤을
모든 갓 태어난 존재가 그렇듯
제 주변을 정화했을 시간
곧 한평생
채식주의자로 사는 아비와
제 자식 잉태하기 위해 남의 피를 빠는 어미가 되어
어릴 적 울지 못한 울음을 엥엥
줄기차게 울어 댈 짧은 삶
대대로 되풀이되는 비슷한 삶을
모기 물린 상처에 잠 못 드는 밤 소원해 본다
혹시라도 내 가볍거나 뾰족한 입놀림에
누군가 아파 잠 못 드는 이 없기를
그리고 나 자신 또한
잠 못 들게 하는 밤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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