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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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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4-12-20 16:34

바들뫼 문철봉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집을 새로이 짓고서 매해 12월이면 크리스마스트리 전구들을 단다. 벌써 10년째이다.
해마다 새로운 전구들을 사서 하나씩 더하여 처음 현관, 다음은 덱, 그다음은 지붕 앞 처마로 이어지니 점점 규모가 커져간다. 이렇게 마음먹게 된 동기는 캐나다서 겪은 ‘크리스마스트리 투어’ 때문이다.
90년대 초 캐나다 밴쿠버에 이민하였을 때, 먼저 이민 와서 사는 이웃들이 ‘크리스마스트리 투어’를 가자고 했다. “뭐지? 뭔 트리를 관광한다고?” 하며 내키지 않아 했다.
예전 마을 뒷산에서 노간주나무를 베어다가 집과 교회에 세워 놓고 반짝이 별과 성탄 카드를 달아놓던 걸 떠올리며 별 걸 다 구경 다니네. 대단해봤자 큰 백화점의 상업적 홍보를 위한 휘황한 장식과 큰 교회의 반짝이 등이 달린 십자가 정도겠지 하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이웃은 밴쿠버 썬까지 들이밀며 여기가 베스트고 저기는 어떻다며 계속 졸랐다. 하여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이에 마주한 것들!
온 동네가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을 하고 있고 집마다 개성 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마치 동화의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냥 입이 쩍쩍 벌어졌다. 마냥 감격하며 “어떻게 동네 전체가 이런 추리를 밝힐 수 있지?” “집 전체를 꾸미는 데 얼마나 걸리고 또 돈은 얼마나 들까?” “저들이 모두 크리스천인가?” 속 좁고 촌스러운 생각을 하면서도 “우와! 으이야!”하며 넋을 놓고 보았다. 이렇게 하룻밤을 돌며 본 것이 써리와 랭리의 너덧 군데였고 이후 해마다 성탄절 투어를 나섰다. 이러면서 자연스레 나도 내 집을 가지면 이렇게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해야지 하고 벼르다가 이제 하게 된 것이다.
지금 내 사는 마을엔 크리스천이 별로 없다. 80여 호 되는 제법인 시골 마을이지만 내 집 말고 한두 집 더 있는 정도니 없는 듯하다. 이래서 우리 집 크리스마스트리가 밝혀지면 이웃들이 “아, 크리스마스네?”하고 함께 즐거워한다. 이것만으로도 보람이지만 고이 간직한 크리스마스의 추억들이 떠올라 매번 즐겁게 한다.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울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울린다.
저 바닷가에 사는 어부들에게도 탄일종이 울린다.♬
 
유치부 때 처음 교회 회중들 앞에서 부른 노래로 트리 전구를 달면 가장 먼저 흥얼거리게 되는 캐럴이다. 선친을 따라 깊은 산골과 바닷가 마을들을 두루 옮겨 다니며 살아서 노래할 때마다 이곳저곳의 정서가 오롯이 살아난다.
지금은 아주 먼 추억이지만 크리스마스이브 전까지 교회의 마당과 강대상을 장식하던 일을 잊지 못한다. 가장 먼저 잘생긴 노간주나무를 베어 와서 교회 현관과 강대상 양옆에 세우고 색종이를 오리고 붙여 고리 테이프를 만들어 휘감고 은박지와 색종이로 별과 공을 만들어 붙이는 일, 강대상 벽에 흰 도화지와 화선지로 ‘축 성탄’을 오려 붙이는 일, 배경으로 마구간과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오려 붙이는 일 등이 12월 한 달을 온통 바쁘고 짧게 한 기억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 밤을 새우며 놀다가 돌던 새벽 송, 조심하는 발걸음에 사그락사그락 서릿발 밟히는 소리, 눈이 온 밤이면 뽀드득뽀드득 밟히는 눈 소리, 곱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촛불 등 달린 집 앞에서 역시 또 촛불 들고 부르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잊을 수가 없다.
촛불이 호야 불이 되고 호야 불이 랜턴 불이 되면서 이제는 트리 전구가 되었다. 지금은 이 전구도 수없이 많은 엘이디(LED) 등으로 발전되어 형형색색으로 반짝인다.
세상이 변하고 발전해 더없이 화려해도 내가 지녀온 저 크리스마스트리의 추억은 지울 수가 없다. 12월, 이때가 되면 아련한 저 끝에서 점점이 커지며 다가와 새겨지고 또렷해지는 추억인 것이다.
이렇게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의 일이 이젠 내게 겨울 절기 의식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물론 밴쿠버의 ‘크리스마스트리 투어’ 마을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내겐 또 나름의 보람과 추억을 되새기고 쌓아가는 것이 되었다.
올해는 또 난데없는 일로 온 거리마다 촛불이 넘쳐난다.
각자의 바라고 소원하는 것은 다르겠지만 ‘평화!’, 전쟁이 아닌 ‘평화!’, 이것 하나는 같은 것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평화의 등불도 새로이 만들어 내어 건다.
 
“아기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행복한 새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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