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 캐나다 한국문협 수석고문
남자는 주걱에 붙은 밥알을 뜯고 다시 밥을 푼다
밥풀에 묻어나는 분노가 밥알처럼 엉킨다
지렛대 같은 운명이 남자의 목 줄기를 움켜쥐고
스물다섯 시의 저녁이 분노를 퍼 나른다
한 여자가 지나가고 또 한 여자가 스쳐가고
스쳐간 옷깃마다 먹물 같은 얼룩의 핏자국
심장 여기저기 박혀 바늘 끝으로 솟는다
마당에 내려와 놀던 새들도 소식 아득히 저물고
부스럼 같은 상처만 얼룩지는 밤,
밥솥의 밥알들이 툭툭 흩어지듯
꺾인 무릎사이로, 닫힌 창틀 사이로
하현달이 길게 하품을 하며 지나간다
남자의 목 줄기에 걸린 하현달
절름절름 저 은하를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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