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광고문의
연락처: 604-877-1178

새해에는

이현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01-20 08:56

이현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또 새해가 밝았다. 을사년 뱀띠 해다. 어렸을 때는 왜 하필 12간지에 징그러운 뱀이
들어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세상에 뱀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자,
코끼리, 거북이, 봉황, 학 등 상서로운 다른 동물들도 많은데 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뱀은 성경에서 슬기롭고 지혜로운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을사년에서
'을'은 푸른색을 상징하며 동양의 오행에서는 생명력과 성장을 상징하는 나무를 뜻하기도
한다. ‘을’과 ‘사’, 이 둘이 합쳐진 푸른 뱀의 해 '을사년'은 새로운 시작, 지혜로운 변혁을
의미한다고 한다.
 
 새해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여러 가지 목표를 설정한다. 필자도
젊었을 때는 거창하고 웅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스케일이 작아져 요즘은
그저 그런 소박한 목표를 정하곤 한다. 그러나 이 소박한 목표마저도 작심삼일이 되고 말은
적이 많다. 작고하신 부친께서는 생전에 ‘너는 시작은 많이 하나 끝을 맺지 못하는구나’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남들보다 학교를 일 년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나는 또래들보다 덩치가 작았다. 중학교 때
몸집이 작다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동네에 있는 태수도장에 등록을 했다. 태수도는
태권도와 공수도의 장점만 취합한 무술로 파괴력이 뛰어났다. 유단자인 검은띠를 따기
위해선 일 년 정도의 수련이 필요한데 청띠를 따고 반년 만에 그만두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글쓰기에 취미를 붙여 이런저런 문예지에 응모해 여러 번 상을 받았다. 어린 마음에
우쭐해져서 친구들에게 나중에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적도 있다, 그동안
써놓은 글이 꽤 되지만, 유명 작가는커녕 아직 책 한 권 내지 못하고 있다. 한때는 바둑에
심취해 고수들의 기보를 연구하고 친구와 틈만 나면 바둑을 두었다. 바둑을 같이 두던
친구는 세월이 흘러 아마 3단의 경지에까지 올랐는데 나는 아직도 6, 7급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70년대 초반에는 벤처스 악단과 당시 국내인기 그룹사운드인 히식스와 키보이스의
영향을 받아 연주가의 꿈을 안고 기타 학원에 등록해 열심히 기타를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아직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후 당구, 스키, 수영, 탁구, 테니스,
볼링, 골프 등을 돌아가며 배웠다. 그러나 이 모두가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도 미약하였다.
다만 한가지 위안이되는 것은 비록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시도는 해보았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수양대군(세조)을 왕위에 올리고 영의정을 두 번이나 지낸 책사 한명회가
노환으로 병석에 누워 생명이 위중해졌다. 세조의 아들인 성종은 그가 평생 나라에 공헌한
바가 크므로 승지를 보내어 그의 유언을 들어오게 하였다. 내심 그가 요구하는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줄 생각이었다. 일반 사람 같으면 이 기회에 자기 자식의 입신양명 등
후사를 청원할 만도 한데 한명회는 내방한 승지를 통해 딱 네 글자만 적어 보냈다.
   ‘종신여시(終愼如始)/나중을 삼가기를 처음과 같이하라’

무릇 인간이란 처음에는 의욕이 넘쳐 일을 시작하나 나중에는 흐지부지되는 경향이 많으니,
부디 임금께서는 초심을 잃지 말고 끝까지 흔들림 없이 성군의 길을 가라는 당부의
말이었다. 
 
 작년 10월 중순경, 밴쿠버 한인 성당에서 신약성경 필사 반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장고 끝에 필사를 신청했다. 가톨릭에 입문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부끄럽게도
아직 한 번도 성경을 완독하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성경 필사였다. 올해 9월을
목표로 이번에는‘종신여시’, 끝까지 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회귀본능 2025.08.08 (금)
저녁 준비로 산 연어 한 마리를 손질하면서 그는알에서 나와 강에서 살다가 바다로 간 연어의 회귀를 생각해본다자기장 속 기억을 더듬으며 거센 물줄기를 거꾸로 헤엄치는 귀향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허우적거리는 안간힘이 필요한 일이다 모국을 떠나 이역만리세월을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나그네 거꾸로 이민을 간다마음속에 묻은 처음으로 되돌아가려는 반사의 몸짓이다그는 연어를 닮았다민물에서 짠물로 바뀔 때의 냄새가 그의...
김영선
   어느새 8월이다. 마냥 뜨겁고 한없이 길 줄만 알았던 햇살도 수그러지고, 바야흐로 입추(立秋), 가을로 접어드는 초입이다. 산책길 늘 만나는 나무는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푸르렀는데 속살부터 홍조를 띄워가고, 잎들 사이사이로 바늘 같던 햇살은 참빗같이 성겨져 가지 사이로 조용히 스며든다. 문득 시절(時節)마다의 이름들과 별칭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 걸음을 멈추고는 폰을 꺼내서 구글 창에’한국 세시 풍속 사전’ 과 각 달의 별칭을...
민완기
  술 마실 때 형, 동생 하는 친구는 많아도  급하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친구는 별로 없다.                      나 죽었을 때 술 한잔 따라주며  눈물을 흘려 줄 친구는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공자  최근에 가끔 숨이 차는 현상이 있어 오랜만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모니터로 내 차트를 살펴보던 가정의가 살짝 핀잔을 준다.  “5 년 만에 오셨네요. 이제 연세도 드셨으니 1, 2년에 한...
이현재
숫돌 사원 2025.08.08 (금)
숫돌은 아버지의 사원이었다늘 마음을 다스리고 벼리시던 집,세상이 거꾸로 돌아갈 때나하늘이 내려앉을 때에도 아버지는 침묵으로한숨과 분노를 갈았다그러나 그 사원이 다 닳아질 때까지아버지의 한숨과 분노는 날이 서지 않았다아니, 날을 세울 수가 없었다등 뒤로 혁명처럼 돌아앉기만 했던 두 세 번의 정변, 이데올로기의 한복판에서 좌로 우로 바람이 불었다혁명의 칼날 앞에서는 등 뒤에 비수가 꽂혔다 더 이상 아버지는 존재하지...
이영춘
은밀함이 사라졌다.   추수감사절 연휴를 딸네서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녹색 장삼 걸친 삼나무에 둘러싸인 오두막이 그리워 발길을 서둘렀다. 녹색 그늘이 다 지워지고 없다. 삼나무 가지들이 뭉텅 잘려 나가고우둠지에만 이파리 몇 장이 남아있어 주변이 황량하다. 마치 녹색 베레모를 쓴 상이군인이 전장에서 두 팔을 잃고 돌아와 상심에 빠져있는 모습 같다.    ”대체 누구 짓이지?” 남편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분명 묵은...
김해영
   3주째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한국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밴쿠버 국제공항 국제선 도착 게이트 앞, 그 커다란 상징물 근처에서 말이다. 첫째 주에는 큰 아들을, 둘째 주에는 둘째 아들을, 그리고 이번 주에는 조카를 기다렸다. 같은 비행기, 같은 시간인 데도 매번 느껴지는 이 설렘은 도대체 뭘까.  아마도 이 공간 자체가 주는 특별함 때문일 것이다. 같은 목적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윤의정
매혹스러운 장미여!모든 사람이 유혹되니난 널 피하려 하였으나선선한 여름 뜨락에다마스크 로즈 향 덫을 놓고밤새 넌 날 기다렸구나. 향에 찔린 시린 가슴에마비된 발걸음 멈추어게슴츠레 너를 본다.도톰한 붉은 꽃 입술 이슬 맺혀 영롱하다. 붉은 입술이 다가와 비비니너의 이슬에 나의 수염이 젖었다.유혹의 향기에 취하여심 호흡하며 신음하니난 이미 너의 포로요, 노예가 되었다. 내 떠나갈 때같이 가고 싶으나 널 꺾음이 널...
김철훈
오래된 생각 2025.07.25 (금)
뭘 잘 못 버리겠어 타국살이 공간이 얼마나 된다고서랍도 옷장도 과거로 꽉 찼어그러니 사람도 못 끊어내 저도 해 지면 외롭겠지 싶어서 허구한 날 비 내리는 이 타향에서돌아가고 싶은데 겹겹이 접은 마음 바람에 널어 넣고 숲에도 걸어놓고반짝이는 강물에도 바다에도 데려가지 모천으로 가는 길 팔천 킬로미터연어처럼 거슬러 돌아간다해도낳아준 어미도 낳을 새끼도 없건만고단한 날에도 많이 웃은 날에도세월 얼른 보내고...
윤미숙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