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재료에서 많은 영감··· 메뉴에 활용하기도

알렉스 김 셰프(가운데)가 지난 1일 오타와에서 진행된 캐나다 요리 경연대회 우승 이후 기뻐하고 있다 / Canadian Culinary Championship
☞ 알렉스 김 셰프는? 15살 때 에드먼턴으로 유학을
간 후 NAIT(Northern Albert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요리를
전공했다. 이후 앨버타의 Fairmont Hotel
Macdonald, Fairmont Chateau Lake Louise 등 앨버타 최고급 호텔 식당에서 경험을 쌓았고, 2017 년 밴쿠버로 와 3년간 샹그릴라 호텔에서 셰프 드 퀴진(헤드셰프)을 맡았다. 이후
글로벌 레스토랑 그룹(Glowbal Restaurant Group)으로 이직해 2022년부터 밴쿠버 대표 파인다이닝 식당 중 한곳인 파이브 세일즈의 요리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Q. 캐나다 요리 챔피언십에서의 경험은 어땠나요?
요리로 중압감을 받는다는 것이 즐거우면서도 정말 긴 여정이라 힘들었습니다. 지역 예선부터 결승까지 총 9개월을 준비했는데, 특히 본선을 준비하는 4개월 동안은 스트레스가 정말 많았고,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어요. 대회 전날까지도 메뉴를 수정했고, 머릿속에서 계속 '이렇게 해야겠다, 저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 대회 기간 동안에는 하루에 2시간씩만 잤던 것 같아요. 이번 대회를 통해 스트레스와 중압감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요리로 받는 스트레스는 결국 즐겁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은 저에게 큰 자산이 될테니까요.
Q. 결승전 준비 과정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제 시그니처 디시를 선보이는 시간이었어요. 570명 분의 음식과 11명의 심사위원을 위한 요리를 준비해야 했죠. 오타와에서 가장 먼 밴쿠버에서 참가한 셰프였던만큼, 준비할 게 많았어요. 5시간 동안 정신없이 요리를 하면서, 저를 도와주는 학생들을 트레이닝하는
것까지 동시에 진행했어요. 모든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 뿌듯하네요.
* 알렉스 김 셰프는 결승전에서 ▶은대구 & 가리비 테린(terrine, 잘게 썬 가리비를 다진 후 차게 식힌 요리) ▶사과와 던지니스 게를 곁들인 새우 만두 ▶소금, 된장을 곁들인 튀긴 갈파래(sea lettuce) 타르트와 구운 쿠시 굴(Kusshi Oyster) 요리를 스파클링 와인과 함께 선보였다.
Q. 셰프로서 경력은 어떻게 쌓았나요?
처음엔 앨버타의 작은 호텔 안에 있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고, 친구의 추천으로 에드먼턴의 페어몬트 호텔에서 3년 정도 일했죠. 사실 당시에도 더 넓은 시장인 밴쿠버로 가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진 않더라고요. 진로를 고민하던 중 제 상사 셰프의 조언으로 5성호텔인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로 옮겨 갔어요. 그곳에서 3년간
다양한 국적의 셰프들과 일하며 많은 걸 배웠고 실력을 인정받아 부주방장으로 승진하기도 했지만, ‘이번에
밴쿠버로 가지 않으면 평생 이곳에서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준비를 한 끝에 2017년부터 밴쿠버 샹그릴라
호텔 그룹 레스토랑에서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Q. 현재 직함이 요리 디렉터인데, 정확히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지금은 글로벌 레스토랑 그룹 식당들과 파이브세일즈를 동시에 관리하고 있어요. (편집자주: 글로벌 레스토랑 그룹은 Glowbal, Coast, Rileys,
Black+Blue, Trattoria 등의 식당을 보유하고 있다. ) 각 식당의 헤드셰프들과 협력해 메뉴를 개발하고, 오너들의 비전을
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죠. 지금은 파이브세일즈의 부주방장을 육성하고 있는데, 레스토랑의 비전과 셰프의 철학이 맞아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수 있어,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려 노력 중입니다.
Q. 헤드 셰프에 따라 레스토랑의 콘셉트와 운영 방식이 달라지기도 하나요?
그럼요. 밴쿠버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라
캄보디아, 한국, 프랑스 등 다양한 나라 출신의 셰프들과
함께 일하죠. 그리고 이들 모두 각자 다른 입맛과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가장 이상적인 건 셰프가 레스토랑의 스타일에 맞추는 거예요. 하지만
어떤 셰프들은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기도 하죠. 그럴 땐 어느 정도의 조율이 필요해요. 무조건 '네 스타일대로 해라'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 레스토랑의 비전과 셰프의 개성이 조화를 이뤄야 해요.
Q. 스스로 고집하는 요리 스타일이 있나요?
요리 학교에서 프랑스식을 기반으로 배웠기 때문에 테크닉은 유럽 스타일이죠. 하지만 재료나 맛의 조합은 제한하지 않아요. 한국과 일본 재료는
물론이고, 생소한 재료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요. 레스토랑은
비즈니스이기도 하니까 메뉴의 70%는 고객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음식으로 채우고, 나머지 30%는 팀과 제가 즐기면서 실험할 수 있는 창의적인 요리로
구성해요.
Q. 요리의 영감을 할머니에게서 받았다고 들었어요.
어린 시절 방학 때 마다 시골에 갔을 때 할머니께서 끓여 주시던 돼지고기 김치찌개는 제
인생 최고의 음식이에요. 할머니께서는 간을 세게 하셨는데, 그
국물에 밥 세 그릇을 뚝딱 먹을 정도로 중독적이었죠. 2주 정도 할머니댁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3~4kg씩 살이 쪘고, 엄마 요리는 너무 싱겁게 느껴졌었죠. 할머니께서는 농사도 지으시고, 직접 김치, 된장과 간장까지 만들던 분이셨어요. 시골 집 뒷마당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재료들, 옥상에 말린 고추 냄새가 지금도 생생하네요. 어릴
땐 그저 맛있게 먹기만 했지만, 알게 모르게 그 과정에서 전통 조리법과 자연 재료의 소중함을 배웠던
것 같아요.
Q. 최근 한국 요리가 전 세계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앞으로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해외에서 보통 한국 음식이라고 하면 간장, 설탕, 고추장 베이스의 매운 음식만 떠올리는데, 사실은 훨씬 다양하죠. 육류는 물론 해산물을 활용한 요리도 많아요. 해외에 소개된 한국
음식이 너무 뻔할 수 있는데, 만약 실력 있는 셰프들이 한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한다면 더 널리 사랑받을
거라고 믿어요. 최근 뉴욕 등에서 미쉐린 스타를 받은 한식당도 많이 있는데, 이게 바로 한식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증거죠. 저도 깻잎과 같은
한식의 요소를 테이스팅 메뉴나 소소한 부분에 조금씩 활용해요. 저는 팀원 중 한식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먹여보고, 얼굴 표정이나 맛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이 재료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요. 대부분 ‘맛있다’고 하면, 그때 요리에 적용해보죠.
Q. 여러 음식을 많이 경험했을텐데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땐 어떤 생각을 먼저 하나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아무래도 셰프인지라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소스는
뭘 썼을까? 재료 손질은 어떻게 했을까? 조리법은 어떤 방식일까? 계속 분석해보죠. 그냥 즐기기보다는 한 입 한 입 음미하면서 연구하는
편이에요. 정말 맛있는 음식은 집에서 꼭 재현해 봅니다. 그렇게 직접 만들어 내 것으로 만들면, 단순히 맛을 즐기는 것을
넘어 그 경험의 가치가 몇 배로 커지거든요. 작년에 유럽에서 미식 투어를
하면서 정말 다양한 음식을 먹었는데, 기대 이상의 맛을 준 곳도 있고,
맛은 좋지만 서비스가 아쉬운 곳도 있었고, 훌륭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싼 곳도 있었죠.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제 요리에 영향을 줬고, 실제로
그때 경험한 몇 가지 요리는 지금 제 메뉴에도 포함되어 있어요.
Q. 집에서도 가족을 위해 자주 요리를 하시나요?
쉬는 날에는 아내를 위해 종종 요리를 하곤 해요. 아내는
어릴 때부터 한식당을 운영하시는 장모님께서 해 주신 요리를 많이 먹고 자라서 그런지, 미각이 저보다
훨씬 정확해요. 제가 해주는 요리가 별로일 때 제가 상처받을까 맛없다고는 안 하는데, 음식을 남기더라고요. 그래서 오기가 생겨 파스타 하나를 만들더라도
온 정성을 다하려고 해요. 그리고 파스타에 치즈를 얼마나 넣을지, 마지막에
뿌려야 할지 확인을 받죠.
Q. 최근 인기를 끌었던 흑백요리사를 보셨나요? 만약
출연한다면 우승할 자신이 있나요?
캐나다 요리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나서, 주위에서
흑백요리사와 관련된 질문을 계속 하더라고요. 궁금해서 뒤늦게 정주행했는데, 한국 셰프 분들의 수준이 정말 높아서 놀랐어요. 요즘 한국의 파인다이닝이
많이 발전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한국에서만 배우고 요리를 했다면, 이제는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고 돌아오는 셰프들이 많아요. 만약 섭외가 온다면? 글쎄요. 출연에 대해서는 아직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밴쿠버에서 일도 해야 하고,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죠.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Q. 요리사가 꿈인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요리사가 되고 싶다면 적어도 첫 10년은 워라벨보다는
배우는 데 집중해야 해요. 요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원리도 알아야 하고 예술적인 감각도 필요해요. 소금이 단백질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효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같은 과학적 지식부터,
플레이팅, 질감, 온도까지 신경 써야 하죠. 그리고 요리만 잘한다고 좋은 셰프가 되는 건 아니에요. 팀을 리드하고, 비즈니스적으로 운영하는 능력도 갖춰야 하죠. 배우는 단계가 끝나면, 자기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고 발전시켜야 하고 결국엔 배운 걸 나누는 과정이 중요해요. 저도 많은 사람들에게 배웠고, 그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거든요. 자기만 알고 있겠다는 생각보다는, 배운 걸 공유하면서 더 성장하는
게 진짜 좋은 셰프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Q. 셰프로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앞으로 3~5년 동안 제 스타일을 확립하고, 밴쿠버뿐만 아니라 캐나다와 한국에서도 더 알려지는 게 목표예요. 그 과정
속에서 상을 받는다면 더 많은 손님들에게 제 요리를 선보일 기회가 되겠죠. 그리고 제가 함께 일하는
요리사들을 성장시키는 것도 큰 목표 중 하나예요. 요리사들이 단순히 일하는 게 아니라 배워서 성장하고, 승진하면서 더 큰 무대로 나아가는 걸 보는 게 정말 기쁘더라고요. 그래서
개개인에게 맞는 플랜을 만들어주고, 단계적으로 배워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단순히 요리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좋은 셰프들을 길러내는 것도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편 파이브 세일즈(Five Sails)에서는
오는 3월 19일까지 알렉스 김 셰프가 캐나다 요리 챔피언십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당시 선보였던 요리를 6코스 메뉴로 선보일 예정이다.
양송희 인턴기자 joyyang04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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