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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아녜스(Agnes Kim) ch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03-24 08:56

수필 차상 입상작
                                                   미망인
                                                                                      김 아녜스(Agnes Kim)
 
봄인가?
 
창밖에서 나풀거리는 하얀 꽃잎의 잔잔한 파동이 안개처럼 번지며 너울너울 다가온다. 부드러운 바람에 꽃잎을 맡긴 나무, 이맘때 흰 꽃을 피우는 산딸나무다. ‘나의 꽃나무’로 삼은 나무. 목련같이 요란한 향기도 없고, 빼어난 자태도 아닌 그저 소박하고 수수한 모습이 딱 나와 닮았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밴쿠버에 와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온 꽃이다. 오늘 그 은은하고 수수한 꽃잎들이 내게 날아와 겹겹이 내 몸에 붙는다. 흰 꽃잎 옷이 입혀진다. 죽음을 애도하는 소복, 상복으로 입혀진다.
 
나는 미망인(未亡人). 남편이 죽을 때 같이 죽었어야 했는데 아직 따라 죽지 못한 미망인. 아니 아직 그를 잊지 못하는 사람, 未忘人이다.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고, 기적적으로 의식을 찾는다 해도 단기간…… 그나마 지금 상태의 식물로 ......"
오 마이 갓. 이건 마른 하늘에 내려치는 날벼락이다. 어떻게 갑자기 이런 일이…….
그날은 내가 병원으로 환자 방문 봉사활동을 가는 날이었다. 아침을 먹고 TV 앞에 앉아 있는 그를 보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을 나섰다. 내가 봉사활동을 다녔던 곳은 더이상의 재활이 힘든 환자들이 입원한 extended care 병동이다. 환자 방문 전에 먼저 성당을 들러야 하는데, 그 날은 웬일로 시간을 잘못 보고 와서 환자 방문을 포기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 왜 벌써 왔어?"
"시간을 잘못 알고 갔어."
"정말? 당신 같은 사람이 그런 실수도 하네!"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다시 TV로 시선을 돌리던 그, 나는 이삿짐에 실어야 할 책이나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아래층 서재로 내려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위층에서 우당탕탕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여보, 뭘 떨어뜨렸어? 뭐가 떨어졌어? 뭐야?"
놀란 마음에 급하게 뛰어올라와 보니 그는 앉아있던 소파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누웠고 테이블 위의 물컵과 키보드가 함께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나 좀 일으켜 줘."
평소 그의 목소리가 아니라 음성 변조기에서 나오는 소리, 뇌출혈 광고에서 들었던 소리였다. 내 힘으로 그를 일으킬 수가 없거니와 뭔가 큰 일이 났다고 판단, 즉각 911에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질문에 대답을 했다. 도착한 응급 대원은 그의 상태를 살피며 평소 먹는 약을 확인하였다. 내가 물었다. "뇌출혈인가요……?" 그들은 그의 정맥에 약물을 넣는 것 같았고, 뒤이어 도착한 소방관들이 그를 들어 구급차에 싣고 M 병원으로 갔다.
응급실 젊은 의사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당신 남편을 다시 정상으로 만들어 돌려드리겠습니다." 라고 안심시키며 이내 CT 촬영을 했다. 뇌의 혈관이 막혀 뚫어야 하는데 전문의를 부르는 것보다는 큰 병원으로 가는 편이 더 낫겠다고 간호사에게 VGH로 이송할 준비를 지시했다. 그는 어눌한 음성으로 "소변 보고 싶어. 또 어디로 가는 거야? 오늘 이사 문제로 변호사한테 전화해야 하는데." "응, 우선 큰 병원으로 가야 한대. 전화는 이따가 내가 할게." 담당 간호사는 응급 도구와 약을 넣은 큰 백팩을 메고 구급차에 그를 싣고 떠났다. 아들 차가 따라갔고 내 차가 따라갔다.
 
VGH 응급실에 도착하니 수술을 집도할 의사들이 대기해 있다가 남편을 넘겨받아 수술실로 들어갔고 아들이 서류에 사인을 했다. 대여섯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수술실 전광판에 있던 그의 이름이 없어지더니 중환자실 명단에 올라 있었다. 그는 머리에 붕대가 감겨 있었지만 눈을 마주치고 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간호사가 지시하는 대로 팔과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움직일 수 있었다. 막힌 혈관을 발견해서 뚫었다고 하니 "하느님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왔다. "괜찮을 거니까 다들 집에 가. 내일 목요일이니 아침에 쓰레기통 내놔야 해." 다들 웃었다. 수술하고 누웠어도 목요일이니 쓰레기통 내놓으라는 지시! 머리가 아프다는 그의 말에 간호사가 약을 가져다 주었고, 면회시간 제한이 있으니 내일 다시 오라는 말을 듣고 일단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형부가 완쾌하지 못하면 언니가 고생일 텐데……" 하며 걱정하는 동생한테 괜찮다고 연락하면서 그 밤을 보냈다. 새벽녘 아들의 전화, 첫 수술에서 막힘은 뚫렸지만 손상된 주변 조직에서 출혈이 많아서 2차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고 연락 받고 병원으로 가니까 엄마는 천천히 오라고! 아니, 세상에…… 엊저녁만 해도 멀쩡히 쓰레기 걱정까지 했는데…….
 
그는 전날 있던 중환자실이 아니라 환자 한 명을 간호사 한 명이 돌보는 수술 후 회복실에 누워 있었다. 의식이 없고 불러도 모르고 손을 잡아도 온기가 없었다. 살면서 이런 모습을 또다시 볼 줄이야! 반응이 없는 그를 보니 가슴에 큰 바위 하나가 쿵 떨어졌다. 수술을 한 의사들과 담당의는 최선을 다했지만 소생 가능성은 없다는 결과를 알렸다. 현재 그에게 인공호흡기 착용, 수액으로 수명 유지, 수혈, 혈압 보조제 투여 등의 의료 행위는 치료라기보다 사망까지의 시간을 연장하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연명치료를 하고 있다는 뜻인가? 나의 오빠가, 동생이 중환자실에서 산소 마스크를 하고 온갖 호스에 휘감겨 고통스러워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형도 그랬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처한 이 경우…….
 
형제들의 그런 죽음을 보며 남편과 나는 우리의 마지막을 준비했었다. 우리는 산소마스크에 의지하고 호스에 매달려 살지 않겠노라고 서로의 소신을 언약해 두었다. 사고가 나기 며칠 전에는 자기는 죽으면 화장해서 뿌리라는 말까지 남겼었다. 불의의 사고든 말기 질환이든 삶의 마지막에서 혼수상태가 되면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안다. 그저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때까지가 내 인생이다.
 
그는 밴쿠버로 이사온 후 운전 면허를 신청하면서 장기 기증을 희망했고, 나는 시신마저도 기증한다는 의사를 등록했다. 우리는 평생을 맞벌이하며 넉넉하게 돈을 벌었지만 묘지를 미리 사 놓지 않았다. 훌륭한 삶으로 이 세상에 기여한 것도 없는데 죽어서 땅을 차지하고 누워있고 싶지 않았다. 영혼이 떠난 육신은 대형 폐기물. 조용히, 가벼이 세상을 떠나기로 했다.
 
이런저런 우리들의 삶에 대한 원칙, 명료한 종결 원칙을 상기하면서 나는 그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시켰다. 이 세상 오직 나만이 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내 뜻을 확인한 담당 의사는 산소호흡기를 떼는 시간, 온 가족이 모이라고 했다. 병원은 그에 대한 마지막 의례를 진행했고 담당 의사의 설명이 있은 후 산소마스크를 제거하는 순서에 이르렀다. 나는 차마 그를 볼 수가 없었다.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함께 그들의 위로 속에 있었다. 덜덜 떨렸다. 내가 결정한 것, 내가 잘 했나? 그게 그가 원했던 것일까? 그 상황에서도 치료를 더 해주어야 했을까?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는 치료라지만 그냥 끝까지 갈 걸 그랬나…… 꺼지는 불씨도 끄지 아니한다는 말씀도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의 마지막 시간을 그렇게 단호하게 끊어낼 수 있었을까? 내가 참으로 모질구나... 만약 내가 거기 누워 있었다면 그는 어떻게 했을까?
 
산소마스크가 제거된 후 병실로 다시 들어가니 그는 코를 골며 오히려 편안한 모습으로 평상시처럼 자고 있었다. 머리 위에 걸려있던 약봉지도 몇 개 줄어들었고, 넓은 방에 간호사와 우리 가족만 그를 지키고 있었다. 몇 시간은 괜찮을 터이니 잠시 쉬고 오라는 친구들의 배려로 집에 왔다. 16년 살아온 이 집. 그가 이 집에 다시 올 수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의 모습이 여기저기 있는데…… 그의 온기가 아직도 느껴지는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부모 형제를 먼저 보낸 경험도 별 소용이 없었다. 그의 형제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제 아비를 지키던 아들은 아버지와의 마지막 시간을 오롯이 같이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담담히 말했다. 오직 모니터만으로 그의 상태를 알 수 있으니 생명줄이 거기에 걸린 듯했다. 오르락내리락하던 그의 바이탈 사인이 조금씩 직선으로 바뀌어 아주 천천히 또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모니터가 꺼졌다.
"아부지가 엄마 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네."
그는 이 세상에 그의 아내와 아들을 남기고 떠났다. 간호사가 마지막으로 사망 확인을 했어도 그는 여전히 평화롭고 따뜻했다. 말없이 그저 편안하게 잠든, 믿을 수 없게 편안한 모습이 그가 남긴 큰 유산이었다.
 
46년을 함께 살았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은 원앙 같은 부부가 하는 말. 우린 원앙처럼 마주 보고 산 시간보다 경주마처럼 앞을 보고 함께 달려왔다. 그는 노총각으로 혼자 오래 지냈기에 무슨 일이든 혼자 생각해서 결정했고 그 결론을 내게 말해주었다. 하다못해 부모님이 남긴 유산도 전부 교회에 봉헌하겠노라 혼자 결정하고 본인 뜻대로 가족들에게 공표했다. 많은 경우를 본인 마음대로 하게 둔 셈이니 나를 주장해 봤자 그의 논리를 당할 재간이 없었다. 설령 내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어도 내 주장보다는 그를 따르는 것이 더 편했다. 한국 남자의 전형적인 가부장적 모습. 가끔 마누라 실수를 잊지 않고 지적하는 남편, 그는 ‘남의 편’이었다.때론 그의 독주가, 독재가 지겹게 싫어서 친구들에게 "어디 소리 안 나는 총 있으면 좀 가져와 봐."라는 하소연도 했더랬는데...
"이거 맛있네, 당신도 먹어 봐." 이렇게 권하는 일 없이 먼저 음식을 먹고, 길에 나서도 나란히 걷는 것보다 그는 나보다 한두 걸음 앞서 갔다. 그런데 최근 어느 날부터 그는 나를 앞에 두고 뒤에서 따라왔다. 빨리 걸을 수가 없어서……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밤운전이 어렵다고 모임을 안 갔고, 복잡한 도로에서는 운전을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나를 운전석에 앉혔지 그 전에는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지 않았다. 노년의 그는 가끔 하찮은 실수를 했고 그로부터 마누라의 실수도 이해를 했다.
 
선두와 말미가 바뀐 지 불과 몇 년. 이젠 뒤에 그가 안 보인다. 습관적으로 뒤돌아봐도 그저 잔상만 어울거릴 뿐. 열심히 걷다가 또 뒤돌아 그가 있나 다시 본다. 외출해도 집에 급하게 돌아올 필요가 없다. 밥 차려줄 사람이, 밥 때문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위로에 내 마음을 얹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깊이 깨달았을 뿐……. 오히려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남편이 죽었어도 잘 살고 있군.' 행여 그런 느낌을 줄까 싶어 옷차림도 화려한 것은 망설여진다. ‘오늘 저녁은 뭘 해 주나.’ 장을 보면서도 그가 좋아했던 식품을 들었다 놨다 한다. 끼니를 챙겨주고, 맘에 안 들어 투닥투닥하고, 한 번만 더 해봐라 그냥 안 둔다고 벼르고. 그런 것들이 그동안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
 
등 뒤에서 나를 밀었던 에너지의 사멸. 동력을 잃고 혼자 가야하는 길. 행동 반경이 작아지고 위축되어 지금 나는 길을 잃고 공중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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