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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5-03-24 09:04

수필 부문 장려상 : 임 현숙 <잊을 수 없는 기억>
시 부문 장려상 김윤희<견디는 나무>
견디는 나무
                                                                         김윤희
 
 
차선을 너머 문득 눈에 들어온
이름모를 나무들
전시물도 장식품도 아닌데
몇백년,몇십년의 세월동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구나
 
마른가지에 잎새의 옷을 걸쳐
풍성해 보이기까지 오랜 인고의 시간
옆에서 너와 정답게 소곤되던 친구가 떠나
슬픔이 차분해지기도 전에
넓다란 도로 생겨 허전함마저 도려냈겠지
큼지막한 집 한채 두채가 빽빽히 들어서고
뿌리내린 정든 곳이 타향이 되니
낯선 불편함 감수한 채
세찬 바람 매서운 눈발 맞으며 참아야 했겠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이 내려간 뿌리가 굵게 자리잡아
점점 견디는 것 익숙해지고
즐비하게 스치는 각종 색색의 차 보며
허탈함 위안삼고 고독함 덧입어 우뚝 서 있구나
 
태생적부터 간간히 내리 쬐는
따뜻한 공기에 서러움을 말리며
무수한 세월 세파의 기를 인내로 누르며
하루 하루 견디고 있구나

=====================


잊을 수 없는 기억
                                                                                                               임현숙
 
출근하는 막내의 도시락을 준비한다. 밥은 반 공기 정도 담고 반찬을 많이 담는다. 막내는 해 주는 대로 잘 먹는 편이지만 고기반찬을 좋아한다. 밥을 풀 때마다 십여 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뼛속에 각인되어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오타와에서 기다리던 소포가 도착했다. 드디어 막내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온다. 군대 간 아 들의 입고 간 옷과 신발이 든 소포를 받고 대성통곡했다는 엄마의 심정을 알 듯하다. 아들이 보낸 다섯 개의 상자에는 지난 사 년간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아들은 밴쿠버에서 비행기로 4시간 반이나 멀리 떨어진 오타와에서 홀로 대학 시절을 보냈다. 우 리가 사는 밴쿠버에는 학부에 본인이 지망하는 건축설계 학과가 없어 먼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내성적이라 외곬이 될까 봐 걱정을 많이 했지만 스스로 한국 학생이 거의 없는 곳을 선택해 적성 에 맞는 공부를 하며 미래를 설계해 갔을 것이다.
 
둘째와 9년 터울의 막내로 가족의 사랑과 보호 속에서 자라서 홀로서기가 그리 수월하진 않았을 텐데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마치게 되어 고맙고 대견스럽다. 어려움 모르고 누리며 지낸 누이들과 달리 아들이 대학에 입학할 무렵 집안 형편이 기울어 제대로 뒷받침 해 주지 못해 늘 안쓰럽고 미안했다. '오 년만 일찍 오지 그랬니 · · · .' 생활비를 제때 못 보내 줄 때 마다 입버릇처럼 되뇌던 말이다. 영하 30도의 추위에 학교까지 자전거 통학을 하고 스튜디오에서 밤을 새운 후 집에 돌아와 끼니를 직접 해 먹어야 했을 어려운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한국 에서의 송금이 끊긴 후 밴쿠버의 집 렌트비며 가족 생활비도 감당하기에 벅차서 아들에게 제때 송 금을 못 해주었다. 친구들이 유명한 건축물 견학을 위해 세계 여행을 갈 때 막내는 아르바이트하며 오타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4학년 성탄절 무렵에 막내가 모처럼 입을 열었다.
 
"엄마, 성탄절에 집에 가고 싶어요."
 
막내는 어찌어찌 비행기 표를 마련해 집에 오게 되었다. 공항에서 마주한 막내의 모습은 마치 난 민 같았다. 초중고 시절엔 부족함 없이 지내며 동글동글하던 얼굴이 뼈만 남은 몰골로 걸어 오는데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다. 우리는 집에 도착해서 삼겹살을 구워 식탁 에 둘러앉았다. 나는 밥공기에 밥을 수북이 퍼 아들 앞에 놓아 주었다. 막내는 더 큰 그릇에 밥을 많이 달라고 했다. 막내는 국 대접보다 더 큰 그릇에 가득한 밥을 다 먹으며 늘 배가 고팠다고 말 하는데 삼겹살을 집어 들던 내 젓가락이 공중에 멈춘 채 부들거렸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
 
막내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밴쿠버에 유학을 오게 되었는데 서울 모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며 걱정 없이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다. 나 또한 학교 어머니회와 육성회 쪽에 치맛바람을 날리기도 했다. 재벌은 아니어도 먹고 입고 생활하는 것이 남부럽지 않게 자랐는데 한창 먹을 나이에 터무니없는 생활비를 쪼개 쓰느라 늘 배고프다는 그 말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 젓가락을 거두지 못한 채 한참 을 눈물 흘렸다. 오늘날, 백화점 식품부에 가보면 온갖 먹을거리가 현란히 진열되어 있고 재래시장 보다 몇 배 비싼 가격에도 인산인해를 이룬다. 나는 그 풍요의 그림자, 저 바깥에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때때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를 보아도 솔직히 크게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내 아들이 충분히 먹지 못해 배고프다는 말은 가슴에 대못으 로 박혔다. 평소에 작은 밥공기 한 그릇도 많다고 하던 아이가 저 큰 그릇에 담긴 밥을 다 먹는 것 도 가슴 미어지는데 한참 먹어야 할 나이에 늘 배가 고팠다는 그 말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고 밥상을 대할 때마다 떠오른다.
 
인간의 3대 욕구는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그리고 사회적 욕구라고 한다. 그중에서 첫 번째 욕구 인 생리적 욕구, 즉 음식, 물 공기 그리고 수면 같은 기본적인 욕구의 결핍은 다른 욕구의 실현을 지연시킨다고 한다. 비상을 꿈꾸는 청년기의 결핍이 아들에게 미쳤을 영향을 생각하면 부모로서 디딤돌이 되어 주지 못한 점이 회한으로 남는다.
 
이제 막내는 건축회사에서 설계사로 일하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고 있다. 스스로 이겨낸 그 세월이 초석이 되어 삶의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굴하지 않고 이겨나가리라 믿는다. 일생의 어느 한 순간이 불행하다고 전 생애가 허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일어선다면 반드시 빛 을 발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도시락 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막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난했던 시절 날마다 되뇌었던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상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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