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희 /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아이고 우리 딸이 너무 바빠서 먼지도 못 닦고 다니는구나!”
딸의 차 운전대 위에 하얀 눈처럼 먼지가 쌓여 있었다.
"엄마! 그거 건드리지 마! 아직 브레넌 털이 남아 있어, 그냥 놔둬. 엄마, 플리스." 딸의 목소리는 울음을 삼킨 듯 떨렸다. 브레넌이 떠난 지 벌써 반년도 넘었는데 ...
"아직은 아냐. 좀 더 있다가 닦을게. 지금은 그냥 놔둬."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지난 여름 방학을 며칠 남겨 두고 브레넌(핏벌과 라브라도르 혼혈)은 하루가 다르게 다리 힘이 빠져갔다. 학교 교사인 딸은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날은 브레넌을 나한테 데려다 놓고 출근했다. 15살이 넘은 녀석은 사랑스러운 견공이였다. 나를 보면 반갑다고 제 몸을 내 다리 쪽에 대고 서서 오래동안 꼬리를 흔들어 대곤 했다.
딸에게 브레넌은 자식과 같았다. 뉴욕에 살았던 딸은 팬데믹이 시작된 그 전 해에 브레넌과 함께 이사와 나와 함께 살았다. 후에 콘도를 사서 나갔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우리 집에 놓고 다녀서 나와도 정이 들었던 녀석이었다. 저녁에 개를 찾으러 딸이 집에 오면 제일 먼저 브레넌 산책을 시켰다. 이층에 사는 아들네도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함께 공원으로 나간다. 한 마리는 이효리네 집에서 입양한 캠퍼이고 다른 꼬마 푸들 잡종은 밴쿠버가 고향인 테디다. 공원에서 녀석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달리고, 쫓아가고, 가히 구경거리다. 여름엔 풀 밭에 뒹굴고, 겨울에 눈이라도 오면 아이들이 던지는 눈덩이를 쫒아가 발로 차고, 강아지들뿐 아니라 우리 집 아이들도 덩달아 행복한 시간이었다. 특히 브레넌은 제 목줄을 입에 물고 뛰기를 좋아했다.
아직 여름방학은 2주 남아있었다. 녀석의 상태가 나빠지면서 딸은 매일 우리 집에 브레넌을 데려왔다. 내 방은 문만 열면 뒷마당이라 비교적 브레넌이 쉽게 밖으로 나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녀석은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불안이 찾아왔다.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브레넌이 제 주인이 방학하면 떠나게 해 달라는 간곡한 기도를 했다. 브레넌에게도 말했다.
“네 주인이 집에 편히 있을 때 가야 해. 지금은 아니다. 며칠만 참아라!”
그렇게 며칠을 버티다가 드디어 방학이 되었다. 일단 브레넌이 제 주인과 함께 있게 되어서 안심은 되었지만 문제는 더 심각했다. 콘도 4층에 사는 딸이 황소 새끼만 한 브레넌을 더 이상 건사하기 힘들어졌다. 브레넌은 일이 다금해지면 누워있다가 문 쪽으로 겨우 가서 선다. 밖에 나가고 싶다는 표시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참지 못한다. 딸은 얼른 용기를 받쳐주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했다. 보다 못한 내가 한마디 했다. 브레넌을 보내 주어야 할 때가 왔다고.
그때는 주말이었다. 브레넌을 받아 줄 동물병원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딸은 다급해져서 여기저기 문의했다. 한 곳에서 수의가 직접 방문해 준다는 정보를 받았다. 집에서 처리 한 후 데리고 가는 조건이다. 녀석과 마지막 작별 인사도 하고 무엇보다도 딸을 지켜주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딸네로 갔다. 저녁 7시쯤 수의사가 보조원과 함께 방문 왔다. 수의사는 브레넌이 거부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쿠키도 주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며 친숙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나도 브레넌이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언짢았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까 일어나지는 못해도 평소에 하던대로 꼬리를 흔들었다. 브레넌은 밥 주는 할머니를 좋아했다. 수의사는 드디어 브레넌의 다리에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주사 놓을 때마다 쿠키를 건네면서. 그렇게 서너 번 주사를 놓고 나서 마지막으로 잠자는 약을 투여했다. 안락사 시키는 순서 같았다.
브레넌이 점점 깊은 잠에 빠져들어 갔다. 딸은 드디어 브레넌을 끌어 안고 울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다.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것인가 나는 속이 탔다. 수의사 팀은 말없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개 주인에게 넉넉한 맘으로 시간을 주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호의였다. 9시가 거의 가까워 오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딸에게, "이제 보내주자. 다 끝났어. 저 사람들도 너무 오래 서서 기다리고 있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딸은 나에게 항의하듯 “엄마, 좀 기다려도 돼. 브레넌 데리고 가는데 내가 천 불이나 지불했어." 그리고 또 얼굴을 브레넌 목에 묻고 울었다. 가족처럼 지냈던 브레넌과의 이별의 시간은 괴로움 그 자체였다.
동물의 안락사는 절대적으로 동물 주인의 선택에 달렸다. 아직도 의식이 분명하고 먹는 것도 그런대로 잘 먹었는데, 다만 다리 힘이 없어지고 용변을 가리지 못하는 이유로 개들은 안락사를 당한다. 임종을 끝까지 지켜보며 보내는 개 주인은 거의 없다고 한다. 대부분은 다 쓴 물건을 버리듯 수의 병원에 개를 버리고 간다. 그러면 개는 병원 냄새가 나는 병실에서 낯설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원치않는 죽음을 맞게 된다. 평생을 주인에게 충성하고 기쁨을 안겨 주었건만 얼마나 비정한 인간들인가!
그리고 몇일 후, 딸은 브레넌의 넋을 기리는 파티를 열었다. 며느리는 꽃다발을 샀고, 손녀들은 브레넌 그림을 그려 카드를 만들어 갔다. 착한 이웃들이 보내온 조문 카드, 꽃다발들.. 그리고 호리병처럼 생긴 사기 항아리가 그 가운데 있었다. 재로 변해 항아리에 들어 간 브레넌의 잔해다. 벽에는 옆집 화가 아주머니가 그려 주었다는 브레넌의 초상화 그림이 걸려 있었다.
또 며칠이 지났다. 딸은 예쁜 손 글씨로 ‘브레넌을 사랑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라고 쓴 카드를 붙인 쿠키 봉지를 수북히 담은 큰 바구니를 들고 왔다. 그걸 다 어쩌려고? 브레넌이 산책 다니던 길가에 놓겠다고 하였다. 먼저 우리에게 보여 주려고갖고 온 것이다. 아들은 ‘누나는 너무 감정적이야!” 하고 혼잣말로 내 등 뒤에서 중얼거렸다.
브레넌의 일생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사람은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안락사를 선택한다. 그리나 동물은 주인의 선택으로 안락사를 당한다. 일생을 주인에게 충성하고 사랑했던 강아지들의 생명은 주인의 선택으로 마감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생명은 소중하고, 모든 생명은 스스로 세상에 오지 않듯이 가는 것도 생명의 주인에게 달렸는데도 인간은 생명의 주인으로 행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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