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목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젊은 날 최전방 백암산 중턱에서 만난 불에 탄 주목과 구상나무의 그루터기들, 살아 천년
죽어서 천 년을 버텨오며 옹골찬 기개로, 선 굵은 삶을 살았던 주목과 구상나무에게서 늘
푸름과 꼿꼿함을 배운다.
전쟁의 포연 속에 육신을 불태웠어도, 꿈틀거리며 밀려오는 혹독한 칼바람에도, 자신을
이겨내고 그루터기로 살아남은 홀연한 기개, 세상의 어느 누구도 뿌리로 이어지는 강인한
삶의 의지를 꺾지는 못하였으리라.
다시 덕유산 향적봉에서 젊은 날 바라보았던 그대의 의연한 모습을, 불에 탄 그루터기가
아닌 서서 우는 주목과 구상나무로 마주하게 되었다. 결코 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명력,
하얗게 상고대를 둘러쓴 그대는 유구한 세월을 이겨낸 지상의 승리자로 해돋이와 해넘이를
꿈꾸는 이들에게 외로움 이긴 기백을 보여주었다.
보아라!
백암에서 덕유의 향적봉까지 주목과 구상나무는 결코 외롭지 않다. 생을 다하여 고사목이
되었어도 철 따라 반겨주는 이들의 길잡이로, 불 밝힌 가지마다 하얀 희망의 봄을 잉태한다.
늘 푸른 나무의 푸름은 수액이 다하여도 푸르다. 그대 멀리 있어 손에 닿을 수 없기에 더
아름답듯 세한의 이 아침 달려가는 덕유산 향적봉 하늘카페에서 마시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의
고독이, 늘 푸른 나무가 되어 행복해지는 아침, 주목과 구상나무에게서 듣는다, 새로워지기
위하여 푸르러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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