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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집 텃밭 가꾸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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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5-07-18 15:49

바들뫼 문철봉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캐나다서 돌아와 살게 된 지금의 동네에는 커다란 정자나무 두 그루가 있다. 동구 밖 큰길에서 마을로 들어서며 누구나 우러러 보게 되는 키에 폭이 엄청 넓은 나무다. 하나는 수령이 3백 년이 넘은 은행나무로 보호수이고 다른 하나는 식목 60년의 회갑을 넘긴 느티나무다. 이 나무들 아래 정자가 놓여 있어 마을의 어른들은 늘 여기서 신선놀음을 한다.
  정자에 앉아 서쪽을 보면 조그만 호수 같은 바다가 보이고 이 건너에는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솟아 있는 신도시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 뒤로는 나직한 산이 에워싸고 있는데 이 산의 봉우리가 세 개라 일봉산, 이봉산, 삼봉산이라 부른다. 우리 마을은 이
봉과 삼봉이 뒷등으로 감싸고 있어 보기에도 아늑하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아담한 마을이다. 이 동네의 나직한 촌집을 얻어 살게 된 지가 벌써 십수 년이다. 처음, 이 촌집에 세를 얻어 살겠다니 아내는 못 산다며 밴쿠버로 돌아간다 했다. 이러고 미적대며 반년이 지나는 사이 “시골 인심이 살아 있네? 살만한데?” 했고 왜냐고 물었더니 “나갔다 오면 처마 밑에 누군지도 모르게 이것저것 푸성귀를 놓고 가네!” 했다. 나중 알고 보니 동네 이웃들이 우리를 객지에서 들어와 사는 사람이라고 자기들 텃밭에서 이것저것 가져다가 나눠 준 것이다.
  이렇게 텃밭도 없이 낮고 좁은 촌집에서 이웃의 정 나눔만 받으며 살다 어느 해 터를 조금 넓혀 안채를 헐고 새로이 집을 앉혔다. 김에 대문도 없애고 마당 가운데 작은 연못을 파고선 삽작까지 이어서 텃밭을 일구었다. 근데 이 재미가 여간 아니다. 지금, 이 텃밭에는 이웃들로부터 얻어만 먹던 채소들이 제철로 한껏 키를 키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고 있다. 상추는 꽃대를 키워 씨앗을 달았고 고추와 가지, 토마토는 제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열매들을 주렁주렁 달았다. 하지감자를 캐고 난 자리에
심은 고구마는 벌써 순들을 뻗어 두렁을 덮었고 여주, 오이, 수세미, 호박은 울과 나뭇가지를 무성히 타고 올랐다. 요 조그만 텃밭에서 이렇게 자라니 촌집의 하루살이는 자연스레 이들을 들여다보는 재미로 시작된다.
어제 꽃을 달았던 가지와 고추는 밤사이 한 뼘씩이나 자라나 있고 어제는 보지 못했던 오이와 가지, 호박이 성성한 잎들 사이에 숨어 있어 “아~!”하는 탄성을 뱉게 한다. 지나치게 무성한 잎들은 전지가위로 잘라주고, 딱정벌레와 노린재는 보는 대로 잡아내고, 잡초를 뽑다 보면 어느 사이 아침 해가 솟아 있다.
  땀을 훔치며 마당으로 내려서는 발길 끝에 채송화와 송엽국이 아침 해를 따라 얼굴을 열고 반긴다. 봉선화도 이슬방울을 달고선 기지개를 켜듯이 잎을 세운다. 나팔꽃은 기상나팔 분지 한참 지났다며 웃고 있고 칸나와 달리아, 원추리, 참나리가 예쁜 얼
굴로 키 자랑을 한다. 꽃들은 수선화와 히아신스, 팬지, 영산홍, 붓꽃과 작약, 목단에 이르기까지 이른 봄꽃들로 시작해 피고 지더니 어느새 여름꽃들로 와있고 아침마다 새로운 얼굴들을 내밀며 나를 반긴다. 이 반김에 응대하며 “아~! 아~!”하는 순간 뭇 생명의 신비로움이 나를 감싸며 함께 놀아주니 참 고맙고 재미난다고 할 밖에.
  어쩌다 늦은 밤 뜨락에 나서 꽃들을 보면 얼굴을 닫고 혼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본다. ‘그렇지, 꽃들도 잠을 자지…….’ 이런 생각 하다 보면 신비의 속, 비밀스러운 어느 공간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에 빠져든다. 또 그냥 “아~~!” 할 뿐이다. 누구는 이래서 텃밭 속에서 자연의 순리를 배우고 하늘의 섭리를 깨닫게 되는 철학자가 된다는데 나는 순간순간 그저 “아~!”하고 감탄만 터뜨릴 뿐이다.
  이렇게 매 순간 입이 벌어지게 하는 꽃과 채소와 나무를 품은 텃밭이 있어 참 좋다. 좋은 정도가 아니다. 잠 많고 게으른 나를 절로 깨워 아침마당으로 불러내어 늦잠을 없애주고, 풀을 메고 물을 주며 신선한 땀을 흘리게 한다. 아침저녁, 봄 여름 가을 겨
울로 자연의 이치를 알게 하며, 아름답고 신비로운 기운으로 동화 속 요정들을 만나게 하니 그저 신나고 재미나 고마울 뿐이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하나 더 있다. 땀 흘려 가꾼 채소와 어여쁜 꽃들을 이웃과 지인들로 나누어 먹는 재미다. 이 재미는 소소함을 넘어 뿌듯한 보람까지 더한다. 한밤에는 고라니도 살짝이 와서 치커리와 상치로 냠냠하고 간다. 그제는 아래채 황토방이 좋다며 가끔 찾아오는 부산 친구들이 텃밭 서리를 한다며 푸성귀와 고추, 호박, 가지, 오이를 따며 그렇게 신나 한다. 저들은 훔쳐 간다는데도 보는 나는 마냥 흐뭇하기만 하다. 이렇게 내 텃밭으로 더불어 나누니 즐겁고 행복하다. 텃밭에서 얻는 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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