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술 마실 때 형, 동생 하는 친구는 많아도
급하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친구는 별로 없다.
나 죽었을 때 술 한잔 따라주며
눈물을 흘려 줄 친구는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공자
최근에 가끔 숨이 차는 현상이 있어 오랜만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모니터로 내 차트를 살펴보던 가정의가 살짝 핀잔을 준다.
“5 년 만에 오셨네요. 이제 연세도 드셨으니 1, 2년에 한 번은 꼭 검진을 받도록 하세요.”
그러더니 혈액검사 난에 당뇨, 콜레스테롤, 전립선 등 십여 가지 항목에 체크를 했다. 그리고 엑스레이와 대변검사, 심장 테스트를 추가했다. 혈액 검사는 꼭 공복에 받으라는 말을 덧붙였다.
인터넷으로 Life Labs를 검색했더니 예약이 꽉 차 있어 동네 근처에서 워크 인으로 검사를 받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7시쯤 검사소에 갔더니 이미 수십 명이 앉아 있고, 20여 명 정도가 접수대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접수를 포기하고 귀가했는데, 큰딸이 운 좋게도 포트 코퀴틀람 근처의 한 검사소에서 예약 취소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내 이름을 넣었다고 연락이 왔다. 거기에 가서 피를 3통이나 뽑고, 가슴에 고구마 줄기 같은 호스를 부착하고 심장 체크를 했다.
일주일쯤 후 의사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혈액검사와 심장 테스트는 이상이 없으나 흉부 시티촬영과 대장내시경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생각 끝에 흉부 시티촬영만 하고 대장내시경 검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십여 년 전에 대장내시경 검사를 준비하느라고 곤욕을 치렀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장을 비우는 처방된 액체 약을 마시고 검사 당일 아침까지 수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렸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런 고생을 다시 반복하기가 싫었다. 또한 나이가 들면 장이 약해져서 천공 등 이런저런 부작용이 많다는 말을 자주 들어 은근히 겁도 났다. 그래서 전문의들도 나이 75세가 넘으면 대장내시경을 잘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건강검진을 받는 사람들은 자각증상이 있어 오기도 하지만, 단순히 자신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 보고자 오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건강검진의 이점은 질병의 조기 발견일 것이다. 그러나 건강검진만으로 인체의 모든 질병 여부를 판별해 내기는 어렵다. 병원에서 실시하는 모든 검사를 받는다고 하여도 완벽하게 모든 질환을 찾아내기는 불가능하다.
필자는 아직까지 특별히 아픈 데도 없어 건강검진의 중요성을 그리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평생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고 그 흔한 링거 한번 맞아본 적이 없다. 당뇨, 콜레스테롤, 혈압 등 이른바 성인병은 남들 이야기였다. 건강한 DNA를 타고난 것 같고 식성도 한몫을 했다. 평생 소식을 했고 내 몸에 안 좋은 음식은 입에서 스스로 거부를 한다. 그렇다고 특별히 음식을 가리지는 않는다. 자장면, 라면, 햄버거 등 먹고 싶은 건 다 먹는다. 다만, 아이스크림, 맥주, 오이, 참외 등 찬 성분의 음식은 몸에서 받지를 않아 잘 안 먹는 편이다.
요즘 흔히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2024년도 한국 인구 연령별 생존확률 통계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통계에 의하면 70세까지 생존확률은 86%, 80세는 30%, 85세는 15%, 90세는 5%밖에 안 된다. 즉 90세가 되면 100명 중 95명은 저세상으로 가시고, 5명만 생존 하고, 80세가 되면 10명 중 7명은 저세상으로 가시고 3명만 생존한다는 결론이다. 어떻게 보면 80세까지 사는 것도 대단한 축복이요 행운이라고 볼 수 있다. 노년이 되면 모든 신체 기관이 노후화되어 젊었을 때의 기능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내가 혹시 죽을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불안하여 이런저런 검사를 반복하며 노심초사하기보다는, 이를 순리로 받아들이고 걷기, 조깅 등 규칙적인 운동과 자신의 체질에 맞는 식생활을 갖는 것이 노후를 안락하게 보낼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은 단명한 집안이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환갑을 넘기지 못했다. 그래서 젊었을 때의 희망 생존 연령은 칠십이었다. 이제 나이 칠십을 훌쩍 넘겼으니,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남은 생에 대해 그리 큰 미련은 없다. 그저 사는 날까지 건강하고, 공자님 말씀대로 나 죽어 울어줄 몇 명의 친구만 있다면 장수하지 못해도 그리 섭섭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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