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경력 50주년 맞은
중식 요리사 여경래
중식 요리사 여경래

여경래 셰프는 “본래 ‘칼판’(재료 손질 담당) 출신이지만, 방송에서 ‘불판’(웍으로 음식을 만드는 파트)만 나오는 걸 보고 웍 다루는 법을 배웠다”며 “칼판과 불판 양쪽을 알았기 때문에 중식의 세계를 더 잘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1975년 8월 11일, 푹푹 찌는 한여름날이었다. 열다섯 살 소년 여경래는 아버지 친구 왕씨 아저씨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왕씨 아저씨는 관철동 보신각 뒤에 있던 작은 중식당 ‘회현반점’으로 소년을 데려갔다. 식당 주인은 그에게 철가방을 들려 줬다. “이제부터 네가 배달 담당이야.” 그는 그날부터 식당에서 먹고 자면서 배달 일을 했다.
소년은 밤마다 펑펑 울었다. 공부를 곧잘 했는데도 가난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해 억울했고, 친구들은 자기보다 공부를 못해도 학교에 다니는 게 배 아팠다. 그렇게 울기를 일주일. 문득 ‘나를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도와줄 친척도 없었다. 그는 다짐했다.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다. 이 일이 내 운명이고 미래다. 천직(天職)으로 여기고 열심히 하자.’
그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배달하는 틈틈이 주방에서 일손이 필요할 때마다 돕겠다고 자청하며 조리 기초를 배웠다. 선배 요리사 곁에서 그들의 노하우를 곁눈질로 터득했다. 밤에는 낮에 봤던 조리 노하우를 공책에 써서 정리하고 그림까지 직접 그려 자신만의 요리책을 만들었다. 소심한 성격을 고치려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으려고 버스와 지하철에서 일부러 “하하하” 큰 소리로 웃다가 미친놈 취급받기도 여러 번.
어느덧 여경래는 한국을 대표하는 요리사로 우뚝 섰다. 세계중국요리협회 부회장이자 한국중식연맹 회장이다. 중국 정부는 그를 ‘세계 100대 중식 요리사’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흑백요리사’ 등 여러 TV 프로에 출연하고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며 연예인급 대중 인지도를 얻었다. 후배 요리사들은 그를 ‘사부(師父)’라고 부른다. 단순히 조리 기술뿐 아니라 인성과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는 인생 멘토라는 의미가 담긴 존칭이다.
여경래를 만난 8월 11일은 그의 요리 경력이 꼭 50주년을 맞은 날이었다. 그는 “지난 100년간 중화요리는 화교가 주도해 발전시켰지만, 앞으로 100년은 한국인이 한국의 식재료와 미각을 통해 ‘한중차이(韓中菜)’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경래 셰프가 선배 요리사들을 곁눈질해 배운 조리 기술을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공책. 이런 공책이 10여 권에 달한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나를 구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15세 때 학교 그만두고 중식당에 들어갔다고요.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었어요. 어머니가 ‘너는 중국 사람 아들이니 중식 기술을 배우면 먹고는 살 수 있지 않겠느냐’며 보내신 거죠.” 그의 아버지는 화교(華僑)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걸 눈앞에서 목격했다고.
“교통사고였어요.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어요. 겨울이었어요. 부추를 수원 시내에 가져다 팔고 온 가족이 영화를 보려고 했어요. 버스를 기다리다 아버지가 차에 치였어요. 제가 ‘아빠 죽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장지에서 아버지 관 뚜껑에 흙을 뿌린 기억도 희미하게 있어요.”
예전에 화교 중에는 무역업을 하는 화상(華商) 말고도 농사를 짓는 화농(華農), 주물 공장 등 기술직에 종사하는 화공(華工)도 상당수 있었다. 화농들은 당시 한국에 없는 채소 씨앗을 중국에서 가져와 경작했다. 주 재배 작물은 양파·양배추·토마토·당근·피망·우엉 등이었다.
-그렇게 학교를 그만두기 싫었나요.
“공부를 못하지 않았어요. 회현반점에 가기 전에는 수원에서 서울 신촌 중국인 학교까지 기차로 통학했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지만 싫지 않았어요. 사실 미술을 하고 싶었어요. 그림 실력이 괜찮았거든요.”
-배달을 얼마나 했나요.
“1년 정도요. 첫 식당에선 조리 도구는 잡지도 못했어요. 그때 중식당 주방에서 쓰던 무쇠 웍(중국식 프라이팬)은 엄청 크고 무거웠어요. 어렸던 저는 덩치도 작고 힘도 약해서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거예요.”
-그럼 요리는 언제부터?
“회현반점에서 1년 일하다 노량진 ‘신발원’으로 옮겼어요. 그때 처음 주방에서 수타(手打)를 배웠죠. 제면 기계 나오기 직전이었어요. 손님이 짜장면 주문하면 수타로 반죽을 쳐서 면을 뽑았어요. 하루에 밀가루 한 포대씩은 팔았으니 평균 100그릇은 넘었죠. 한 포대가 120그릇이라고 했으니까. 어려서 힘든 줄도 몰랐어요. 본격적인 요리는 다시 1년 뒤에 옮긴 세 번째 식당 ‘야래향’에서 배웠어요. 주방에만 20명이 넘는 큰 식당이었어요.”
-식당을 자주 옮겼네요.
“옮길 때마다 새로운 기술, 음식을 배울 수 있었거든요. 야래향 이후로도 한남동 ‘거목’, 여의도 ‘열빈’, 방배동 ‘함지박’ 등 대형 고급 중식당으로 계속 옮기며 일하고 배웠어요.”
-어려서부터 중식을 먹었을 테니 요리가 쉬웠을 거 같은데요.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라 집에서 한식만 먹었어요. 살던 데가 수원 시골이라 근처에 중식당도 없었고요. 짜장면은 서울에 일하러 와서 처음 먹어봤어요.”
-동생(여경옥)도 유명 셰프입니다.
“서울 올라오고 3년 지나서 동생을 데려왔어요. 제가 일하던 중식당에 소개했죠.”
-중식 주방은 특히 엄하다면서요.
“당시 제가 중국말이 서툴렀던 게 도움이 됐어요. 욕해도 잘 못 알아들었으니까(웃음). 제가 긍정적인 편이에요.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낙천적인 분들이라 그 영향이 컸나 봐요. 솔직히 저는 아주 부지런했기 때문에 욕을 별로 안 먹은 거 같아요. 윗사람이 시키기 전 일을 해 놨거든요. 그리고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있나요.”
-공책에 요리법을 그림과 글로 직접 정리했다고요.
“요리 교재가 흔치 않았어요. 게다가 요리하는 걸 못 보게 하는 요리사가 많았어요. 옆에 서 있으면 ‘경래야, 가서 양파하고 무 가져와’ 시켜요. 가져오면 이미 요리가 끝나 있어요. 조리법을 눈치껏 배워야 했어요. 퇴근해서는 선배들에게 ‘훔친’ 조리법을 새벽까지 정리했어요. 미술에 소질 있던 게 도움이 됐죠. 과거에는 당근 등 채소나 과일을 용·봉황 따위로 깎는 카빙(carving) 장식이 많았어요. 카빙하는 법을 공책에 그렸어요. 제가 그동안 요리책을 여러 권 펴낸 건, 후배들이 저처럼 고생하지 말고 배우라는 뜻에서예요.”
-좋은 선배·스승도 많이 만났지요.
“칼판(재료 손질 담당 파트) 3대 명인이던 왕출량씨와 오학지씨에게 칼질 기술과 비법을 배웠습니다.”
-칼판 출신인데 불판(웍으로 음식을 만드는 파트) 기술까지 습득한 이유는.
“원래 불판을 싫어했어요. 불판 담당들이 게을러 보였거든요. 담배나 피우고 잡담하다가 주문 들어오면 그제야 웍으로 잠깐 지지고 볶으면 끝이야. 우리 칼판은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는데. 그러다 1970년대 말쯤이었을 거예요. 방송에 중국 음식이 나왔는데, 불판만 나오는 거예요. 불쇼가 화려하잖아요. 그때 불판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칼판과 함께 불판도 알았기에 총주방장도, 내 식당을 운영할 수도 있게 된 것 같아요.”
◇성격 고치려 버스 타고 미친 듯 웃었다
타고난 성실함에 피나는 노력이 더해지자 실력이 빠르게 늘었다. 탁월한 조리 솜씨와 함께 무협 영화 검객처럼 칼을 돌리는 손기술로 ‘류 스푸(여 사부)’라는 별명이 붙었다. 중식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8년 만인 23세에 주방 서열 2위까지 초고속 승진했다. “월급이 60만원이었어요. 당시 샐러리맨 연봉이 30만원 정도였으니까 되게 많이 받은 거죠.” 고급 중식당이 호텔로 들어가는 흐름에 따라 그도 호텔로 옮겼다. 서울 크라운호텔, 팔레스호텔 등을 거쳐 타워호텔에서 마침내 식당 주인 겸 요리사를 뜻하는 ‘오너셰프’가 된다.

셰프 중에서 드물게 잘 웃는 편인 여경래 셰프는 “거울에 비친 험악한 내 얼굴에 놀라 인상을 고치려고 하루 수백 번 웃는 연습을 했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타워호텔(현 반얀트리)에서 중식당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고 오너셰프가 됐죠.
“제가 가장 오래 일했던 곳입니다. 27세였던 1987년 타워호텔 부주방장이 되고부터 쭉 있었어요. 2001년 경영진이 위탁 경영을 제안했어요. 임대 보증금 10억원을 지인들에게 부탁하니 순식간에 25억원이 들어왔어요. 인생을 헛살지 않았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웠어요. 타워호텔이 2006년 문 닫기 전까지 오너 셰프로 지냈죠. 지금 운영하고 있는 ‘홍보각’은 2007년 서울 장충동 그랜드 앰배서더 호텔에서 문을 열었죠. 2020년 호텔에 불이 나 잠시 닫았다가 2023년 강남 노보텔 앰배서더에서 영업을 재개했습니다.”
-시그니처(대표) 메뉴가 ‘모자새우’죠.
“새우 속에 새우알과 돼지고기를 다져 넣고 튀긴 뒤 마늘 소스를 곁들여 내는 요리입니다. 어미인 새우와 자식인 새우알이 함께 들었다고 모자(母子)입니다. 불도장(佛跳牆)도 인기입니다. 냄새에 반해 수행하던 스님이 절 담장을 뛰어넘는다는 이름의 보양식이죠. 상어지느러미, 오골계, 송이, 관자, 죽순, 망태버섯, 해삼, 생선 부레 등 고급 재료 18가지를 이틀 동안 궁근하게 끓인 호화로운 국물 음식입니다.”
-최현석 셰프는 여 사부가 끓여준 짬뽕을 인생 짬뽕으로 꼽던데.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어요. 손님들이 짬뽕만 주문할까 봐요, 하하!. 손님이 주문하면 기쁜 마음으로 만들어 냅니다. 뭐든 좋아해 주시고 찾아주시면 감사하죠.”
-성격 고치려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크게 소리 질렀다고요.
“원래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그렇게 타고난 데다 어려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더 숫기가 없어진 것 같아요. 1980년대였나, 대기업에서 신입 사원들에게 공공장소에서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소리 지르게 하는 걸 봤어요. ‘나도 저렇게 성격을 고쳐야겠다’ 싶었어요. 사회생활 하려면 외향적이어야 할 것 같아서요. 버스나 지하철에서 ‘하하하’ 크게 웃었어요. 승객들이 ‘미쳤나’ 하는 얼굴로 쳐다보더라고요. 그렇게 3년을 했어요. 사회생활 하기 딱 좋게 성격이 바뀌더군요.”
-오너셰프 되고 나서는 웃는 연습도 했다고요.
“호텔에 있을 때 서비스 교육을 받았어요.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 팀장이 와서 ‘우리는 거울을 보고 하루 100번씩 웃는다’고 하더라고요. 주방에서 일할 때라 ‘그래 웃어라, 미친놈들’이라며 흘려들었어요. 오너셰프가 되고서 어느 날 화장실에 갔다가 거울을 봤어요. 험악하게 인상 쓴 남자가 보이더라고요(웃음). ‘내 인상이 저렇게 나빴나’ 싶더라고요. 저런 얼굴로 세상을 살고 있었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오너셰프로서 손님을 맞으려면 안 되겠다 싶어서 그날부터 웃는 연습을 죽도록 했어요.”

여경래 셰프의 대표 메뉴인 '모자새우' /조선일보 DB
◇“중식 미래는 한국 요리사가 이끈다”
여경래는 연예인 못잖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요리사다. 방송·유튜브 등 활발한 대외 활동 덕분이다. 지난해 출연한 ‘흑백요리사’가 큰 히트를 치면서 해외에서도 알아보는 스타 셰프가 됐다. 제자 박은영 셰프와 함께 등장하는 유튜브 채널 ‘여가네’는 구독자가 33만명에 육박한다.
-식당도 잘되는데 방송과 유튜브를 왜 열심히 하나요.
“처음에는 재미로 했어요. 하다 보니 중식에 대해 대중에게 알려드릴 게 많더라고요. 중식과 중식 요리사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도 심어줄 수 있고요. 세상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기도 하죠. 수익도 조금 창출되고요.”
-‘흑백요리사’는 괜히 나갔다가 떨어질까 부담되지 않았나요.
“솔직히 그랬죠. 그런데 오랜만에 열정을 불살라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떨어져도 득이 될 것 같았어요.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될 것도 같았고요.”
-까마득한 후배인 ‘철가방’ 임태훈 셰프와 붙은 첫 대결에서 져 탈락했죠.
“임 셰프가 더 잘해서 이긴 거죠. 오랜만에 요리한 거라 힘들었어요. 요즘은 칼질·웍질을 직접 하지 않거든요. ‘흑백요리사’가 새벽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24시간 촬영하는 강행군이었어요. 떨어지고 나니 ‘이제 푹 잘 수 있겠네’ 마음이 오히려 편하더라고요(웃음).”
-지금은 후회 안 하죠?
“홍콩·마카오·대만에 가면 현지인들이 사진 찍자고 몰려들어요. 전에는 한국 관광객들만 알아보더니(웃음).”
-박은영 셰프와 동반 출연도 화제였습니다.
“재밌겠더라고요. 박 셰프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고요.”
-중식 주방에 여성 요리사가 여전히 드물죠.
“제가 거의 처음 여성 요리사를 받았을 거예요.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장점이 될 거라 믿었어요. 주방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졌죠.”
-요즘은 중식당 주방에 한국인 요리사도 많죠?
“중국 사람보다 한국 사람이 더 많죠. 앞으로 중식은 한국인 요리사가 이끌어갈 겁니다.”
-한국의 중국 음식을 ‘한중차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셨죠.
“한국 중식은 산둥(山東) 지역 중식인 루차이(魯菜)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한국인 입맛에 맞춰 변화했습니다. 쓰촨(四川) 요리나 광둥(廣東) 요리처럼 하나의 독립된 중식의 갈래로 봐야 한다는 뜻에서 ‘한중차이’라고 부르자고 했어요.”
-한중차이의 특징은 뭔가요.
“중국 요리사들도 많이 묻습니다. ‘한중차이는 세계에서 가장 담백한 중식’이라고 답합니다. 한국 손님들은 기름이 적고 간이 세지 않아야 좋아합니다. 매운맛, 국물 음식, 탕수육 같은 튀김을 유난히 선호하고요. 중화요리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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