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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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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5-09-02 10:47

김아녜스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시간당 100mm의 기습 초극한 강우, 양동이로 물을 쏟아붓는 물길이 열렸다.
  얼마 전 텍사스 과달루페강의 범람이 아직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한국 TV 뉴스 화면의 폭우에 잠긴 마을 전체가 황톳빛 물바다, 자동차 지붕이 보일 듯 말 듯, 고립된 주민을 구조하는 보트, 축사를 나온 소들이 집을 못 찾고 헤매는 모습에서 내 유년의 장마가 떠올랐다.
   7월 장마 통에, 어머니는 갓 낳은 나를 다라이에 담아 이고 언덕배기 교회로 피신하셨다고 했다. 동네 어른들은 나를 '장마둥이'라고 불렀다.  공덕동 394번지 일대는 한강보다 저지대이다. 집중호우로 한강 물이 차오르면 물이 빠져나가야 할 하수관이 역류해서 오히려 물이 솟아 나왔다. 도꾸 짖는 소리가 유별났던 어느 여름밤, 물이 댓돌까지 찰랑이고 마당을 헤엄쳐 마루로 올라와 위험을 알렸던 도꾸.. 그때의 재난 대응은 지극히 원시적이고 간단했다. 젖으면 안 되는 살림살이를 높은곳으로 올리고 대문을 잠그고 하수도를 틀어막고 다 같이 지대가 높은 교회로 갔다. 할머니 말씀은 '불은 화마라서 잿더미로 만들어도 물은 순해서 남기고 간다'라고 하셨다. 비가 그치고 물이 빠져 집으로 돌아와 보면 대문 안쪽에 이런저런 물건들이 쓸려 나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몇몇일 젖은 살림살이를 씻고 말리고 이부자리를 빨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즈음이면 한강 물이 맑아져서 빨래하러 갔다. 다라이에 빨랫감을 이고 가는 엄마와 숙모들 뒤에 따라가면서 떨어지는 것이 없나를 살피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빨랫배에 오르면 배 밑에 뚫린 부분에 빨래판이 있었고 한쪽에 빨래를 삶는 솥이 걸려 있던 배. 모래사장에 펼쳐 널은 흰 홑이불에 반사된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물비늘 반짝이며 잔잔한 수면, 그 사나운 물결을 잠재운 건 뭘까..
  한 여름이면 그런 물난리를 겪으면서도 대를 이어 살았으니 내 기억 속의 한강은 아직도 추억으로 흐른다. 여름에는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큰 민어 한 마리와 솥을 싣고 밤섬으로 놀러 가면 도꾸는 배를 따라 헤엄쳐 왔다. 여의도 비행장의 에어쇼는 맞은편 강둑에서 보는 게 최고로 잘 보여서 모두 강둑에 모였다. 어른들 틈에 끼어 있다가 아버지 어깨 위에 올라앉으면 빨강, 파랑, 초록 연기를 뿜으며 곡예 하는 비행기가 내 머리에 닿을 듯했다. 강물이 꽁꽁 언 한겨울, 썰매 타러 가는 오빠를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지켰다. 오빠는 외발 썰매 한가운데에 나를 앉히고 씽씽 달렸다. 해빙기에는 위험하니 한강에 안 가고 샛강에서 썰매를 타다가 물이 녹은 웅덩이에 빠졌다. 오빠는 어른들이 피운 모닥불에 나를 데려가 말리고 엄마한테 말하면 다시는 썰매를 안 태워준다고 겁을 줬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기념으로 사 남매에게 스케이트를 사 주셨다. 방에 담요를 깔고 연습하면서 강물이 얼기를 기다렸다.  그 강 언저리가 사계절 나의 놀이터였다. 물에 잠재된 에너지, 소수력이 나를 키웠던 걸까...내 스스로 정한 닉네임은 '맑은 물'이다.
  마포 배수펌프장 시설이 들어온 이후 집에 물은 안 들어왔지만, 장마 때면 동네 사람들과 물구경을 가곤 했다. 저녁 먹고 한강 둑에 올라가면 엄청난 유속으로 흘러가는 흙탕물에 집도 떠내려오고 소도 떠내려왔다. 동네 어른들은 "저 소 잡아라" 소리쳐도 아무도 감히 그 물살에 들어가는 사람 없이 발만 동동 굴렀다. 불어난 강물은 무서웠다. 둑이 터지면 마포는 물바다라고 하시면서 "넌 장마둥이야!" 왠지 내가 장마의 원인 제공자 같은 생각에 불편했던 별명! 그래도 장마 때마다 떠오르는 나의 별명, '장마둥이'
  물은 순하다는 할머니 말씀이 지금은 틀린다. 지구는 이미 난폭해졌다. 기후 위기는 이미 우리 곁에 생존의 문제로 와 있다.날로 그 규모가 대형화, 다양화되는 자연재해, 그 앞에 무릎 꿇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과 그들이 창조한 과학 문명. 재난 대응 대피 요령만 익힌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 겸손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장마둥이인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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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산 박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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