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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원칙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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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6-04-03 14:59

정성화/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엄마는 매사에 철저했다. 그리고 당신 나름대로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었다. 여덟 식구가 아버지의 군인연금으로 근근이 끼니만 해결하던 시절, 엄마는 아버지 연금이 들어오는 날이면 늦은 밤에라도 부식가게의 외상값을 갚으러 갔다. 내일 아침에 갖다 주면 되지 않느냐고 아버지가 말했지만,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집을 나섰다. 엄마의 철저함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내민 통장으로도 증명되었다. 세 개의 통장 중 한 통장 앞면에는 ‘장례식 비용’이라 적혀 있었고 천만 원이란 돈이 들어있었다.


삶에 있어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방향이란 자신이 지키려는 원칙들에 의해 정해지게 된다.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경우 바르게’ 살려고 애썼고, 당신의 원칙을 지키며 살았다. 어쩌면 그 원칙들이 당신을 지키고 우리 집을 지켰던 게 아닌가 싶다.


나도 엄마처럼 살려고 한다. 위기가 닥쳐오면 현실로 받아들이고 되도록 정면 돌파하려고 마음먹는다. 울거나 징징대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로 나누고, 할 수 있는 일에 나의 모든 힘을 욱여 넣으려 한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집 형편이 ‘하한가’를 찍었다. 내가 대학에 가는 방법은 등록금이 없는 국립사범대학에 진학하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기에 유리한 학과를 택해야 했다. 적성이나 소질을 생각할 처지가 아니었다.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하늘이 도와주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을 절대 서운하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건 내가 서운함을 많이 느껴봤다는 얘기도 된다.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고 바로 중학생 과외를 시작했다. 가르치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사춘기 학생들의 변덕스러움이나 학부모의 비위를 맞추는 게 힘들었다. 갑과 乙의 관계에서 갑은 더러 성질을 부려도 되지만, 乙이 그랬다가는 바로 해고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 감정을 누르는 연습을 많이 했다.


어느 해 사월 초파일 날이었다. 절에 가다가 경찰관에게 걸렸다.


“신호 위반하셨습니다. 면허증 주세요.”


얼른 면허증을 꺼내어 두 손으로 건넸다. 나의 공손함 때문인지 경찰관은 범칙금 용지를 손에 든 채 도대체 어디 가는 길이었냐고 물었다. 부처님 생일잔치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픽 웃으며 가장 가벼운 범칙금 부과했다. 편치 않은 상황이라 해도 농담을 섞으면 믹스커피처럼 달달해진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데 농담만 한 게 없다고 믿고 있다.


첫 직장은 중학교였다. 동료 교사들과 무난하게 지내려면 화가 나더라도 일단 참아야 한다는 걸 몰랐다. 내가 화를 내며 말하는 바람에 ‘드센 여자’라는 이미지만 남았다. 그 후로 내 감정이 누그러진 후에 상대방에게 말하는 걸 원칙으로 삼게 되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온갖 험한 말을 끌어다 붓고는 “나는 원래 뒤끝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무도함을 그 한마디로 덮으려는 의도가 싫다. 그런 사람과는 되도록 거리를 둔다. 이리저리 검토하고 분석해 본 결과, 나는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목표를 내 능력에 맞게 잡고 작은 성취에도 기뻐한다. 더러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더라도 나를 너무 나무라지 않는다. 실수 한 번으로 내가 배우는 것은 열 가지 이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노년이 두렵지 않다. 읽고 싶은 책이 많고, 흥미로운 것들이 내 주위에 많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즐겁게 살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세상을 걷는 방식은 ‘나선형’이다. 나선형이란 소라 껍데기처럼 빙빙 돌아가는 모양이다. 직선으로 걷는 것보다는 느리겠지만, 나는 더 많은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며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만의 속도로 걸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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