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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2018.04.23 (월)
가끔 머리 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말도 못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길 듣곤 했는데 그 날그 자리에서 내가 그랬다.산만하게 풀려버린 생각의 끈이 미처 동여매여지기도 전에 눈만 말똥거리다 맥없이 허를 찔린 기분이다. 아니, 전혀예상치 못한 뜻밖의 물음이라 질문의 요지조차 간파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옳다. 게다가 순발력을 발휘해재치 있게 받아 쳐보기엔 나의 사고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의외로 너무 이성적이다. 얼마 전에 나는 문학에 관심이...
섬별 줄리아 헤븐 김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그 시절에는 외삼촌댁에 사시는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양 발에 무명 실타래를 걸어 놓고 실을 감고 계시는 모습을 보는 건 흔한 일이었다.때때로 나는 할머니의 양 발에 걸렸던 실타래를 나의 두 손에 걸어 놓고 할머니를 돕기도 했고, 그것이 무료해질 때쯤이면 실타래를 할머니의 두 손에 걸어 놓고 내가 실을 감아 나가기도 했다. 할머니와 내가 서로 호흡을 맞춰 양손과 어깨를 들썩이며 움직여 실을 감아...
섬별 줄리아 헤븐 김
내미는 손 2016.09.10 (토)
어둠이 내려 오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내가 밖으로 나왔을 땐 비가 내리기 시작한 탓인지 물기에 젖어 들어가는 어둠은 이미 밤 공기를 뱉고 있었다. '어?' '어디지?'둘러 보았던 곳을 두어 번 재차 가보고서야, 불독의 표정이 연상되어 헌터라고 이름까지 지어 부르던 내 하얀 차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 도난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상의 불안한 설정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의 전율은 괴기영화를 관람 할 때의 억지 공포와는 전혀...
줄리아 헤븐 김
막상 두고 가려니 못내 아쉽기만 하다.처음부터 내 것은 아니기에 욕심을 부릴 처지는 못되지만, 욕심을 낸 들 내 손에 쥐어 질것도 아니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조차도 실은 우스운 일이다.작은 아들아이가 밴쿠버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부터 언젠가 내게 지금과 같은 일이, 일어 날 수도 있다는 걸 예상 했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떠나는 것에 대한 회한이 그리 크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이사 날을 넉 달여 남겨 놓고, 첫번째...
줄리아 헤븐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