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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의 피아노
2019.03.06 (수)
하늘이 잿빛으로 내려와 있다. 버스정류장에 벌써 몇 대의 버스가 서고 지나갔지만 마을 앞엔 한 사람도 내리지 않는다. 도로 위에 돌개바람이 불어 먼지와 티끌들을 공중으로 말아 올린다. 겨울의 황량한 바람이 스쳐가고 있다.'어쩌면 첫눈이 내리려나?’숙이는 창문에 눈을 대고 바깥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감나무와 대추나무가심하게 흔들리며 바람 소리를 낸다. 참새 떼들이 몸을 떨며 공중으로 사라진다.숙이는 교회당에 가기 위해...
정목일
골반이 틀어진 여인(하)
2019.03.06 (수)
배가 두 번 연거푸 급충돌하는 순간 여인의 상·하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뒤틀리며 사춘기 무렵 틀어진 골반이 바로잡혔다. 여인은 욕지도 주민 숙원이었던 공중목욕탕 사업을 해결한 통영 시장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자기 의지 없이 죽음의 바다에 내던져진 사람들에게 마음이 쏠려 오래가지 않았다. 서서히 생명들이 죽어가는 바다에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사라지고 폐허와 같은 정적만이 떠돌았다. 무관심이라는 죽음의 정적도 이보다...
박병호
삼 겹줄 인생
2019.02.27 (수)
50여 년이 스쳐 간 아득한 옛이야기다. 1960년대 초엽 내가 섬기던 군인교회는 군악대와 헌병대와 함께 영외에 자리하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던 나로서는 군악대의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었고, 또래 중에는 서울대 작곡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 병장을 비롯하여 나름대로 학교에서 중창단으로 활동하던 친구들이 여러 명 있었다. 하루는 외출에서 돌아온 이 병장이 소식 하나를 들고 왔다. 의정부 시민단체에서 주최하는 노래자랑에 대한...
권순욱
꽃샘 추위
2019.02.27 (수)
겨우내 막혔던 그리움의봇물은 터져뻗어 올린 실가지마다 전신이 온통열꽃 발진으로 불덩어린데느닷없는 음지의 반란인가매화꽃 앙가슴 뒤흔들어 놓는이 혹독한 꽃샘추위는 기진한 춘궁의 영혼들몸살 져 눕고현기증 끝의 각혈처럼울컥 목까지 치받쳐 오르는나의 바닥 모를 이 몹쓸 그리움을봄아, 많이 아픈 봄아, 어이 할거나어이 할거나Spring Cold-Snap Bong-Ja...
안봉자
책장 앞에서
2019.02.27 (수)
도킨스와 하라리, 베르베르와 이정모가 사이 좋게 어깨를 밀착하고 있다. 사이 좋게? 인지는 사실모르겠다. 시비를 걸거나 영역다툼을 하지 않고 시종 점잖게 어우러져 있으니 나쁜 사이는 아닌 것같달 뿐. 책들은 과묵하다. 포개 있어도 붙어 서 있어도 일생 서로 말을 걸지 않는다. 책들은 다 수줍음을탄다. 자리를 바꿔 달라 보채지도 않고 어디로 데려가 달라 꼬리치지도 않는다. 즉각적인 피드백을양산하는 다중 미디어들이 창궐하는...
최민자
해가 지는 산 위에서
2019.02.27 (수)
그날해가 지는 산 위에 바위를 딛고 선 그림자, 나는 먼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죽음으로 잇닿아 소리 내어 우는 풀벌레, 새소리--움직이지 않는 소나무처럼넋을 잃어 회한과 절망이 교차하는 눈망울엔 이슬처럼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갈 곳이 없는 나, 멋진 휘파람이라도 불었으면 후련할 가슴에서, 가슴에선이미 소리를 잃었다어머니가 있는 고향아 폐허가 된 고향아니면 고독의 편력(遍歷)에 점(點) 찍힌 비극오, 나는 저 만치 이끼 푸른 옷을...
성기조
직립 보행 소고
2019.02.25 (월)
종이 한 장 집으려다 허리를 다쳤다 고통스럽고 구부정해진 평등의 원칙기둥의 뿌리가 뽑힌 날마른 뼈 사이 고인 냉각수가 터졌다펑크가 나기 전까지우리는 반항의 종잣돈 허리춤에 끼고 연중무휴 활화산이었지뒤돌아 앉은 과거에 빗장을 풀고덥석 무리한 질문을 던졌다 중간이 무너지고 넘어갈 강은 있는지뒤엉켜 샛강이 범람하듯작은 음극에 양지바른 내부는 외출을 준비할지다리로 받치고 있는 힘의 무게로내 몸의...
김경래
겨울, 바다에 서다
2019.02.25 (월)
잿빛 하늘 먹구름으로 고인 체흐르지 못했던 시간들마침내 헝클어진 머리채 풀어헤치며 철지난 소나기로 오열한다아무도 없는 겨울바다이간질하는 칼바람에 휘말려 칼춤을 추는 날 선 비수들허연 거품 물고 파도로 침몰한다 만신창이 온몸으로그러나 바다는 아우성하는 아픔들을 말없이 품어 담는 어미의 가슴이다열 길 물속,자궁 속 같은 그 적막의 한 가운데서 가시를 면류관으로 잉태하는눈멀고...
백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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