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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에 2018.11.02 (금)
눈이 부시게 고운가을엔 난 마음이 불편하다물어볼 말도 없지만내일이면 너무 늦을 것 같아한 번의 만남이라도 좋은 이런 핑계가얼른 생각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코스모스 꽃잎이 날리는가을엔 늘 마음이 바쁘다띄울 사연도 없는데예쁜 꽃잎이 다 날리기 전에꽃잎에라도 마음을 적어 보내고 싶은간절한 소원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낙엽이 거리에 쌓이는가을엔 왠지 마음이 급하다받을 사람도 없는데아름다운 단풍이 다 지기 전에내 마음을...
나영표
그해 3월 첫 장날은 찬 공기가 남아 있어도 추위를 느끼지 못할 만큼 화창했다. 따뜻한 희망을 품은 남풍이 부는 바다는 은빛 물결로 잔잔했다. 짙푸른 물이 물결치며 만든 새파랗고 신비로운 색상들이 고흐의 ‘몽마주르의 고귀한 석양 하늘’을 떠올렸다. 꿈을 안고 떠나는 사람들을 설레게 만드는 부두에는 남해 섬들과 통영을 오가는 30톤 여객선 하나가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빛바랜파랑과 때 묻은 흰색이지만 태평양 횡단에나 어울릴 이름을...
박병호
열매에 대하여 2018.10.22 (월)
익지 않은 열매는 왜 푸를까?  답은 익지 않아서이다. 말장난하냐고? 아니, 진언이다. 무림의 고수에게 칼날의 광휘를칼집 안에 감추고 내공을 다질 시간이 필요하듯, 열매들도 무르익기 전까지는 이파리와비슷한 보호색으로 위장하여 본색을 감출 필요가 있다.열매의 첫 번째 사명은 번식에 있으므로 씨가 여물기 전에 곤충이나 새에 먹혀서는 낭패다.덩샤오핑의 대외 기조 정책이었던 도광양회韜光養晦가 식물들에게는 초 짜 상식인 셈이다....
최민자
뿌리 2018.10.22 (월)
산 능선에 올라 앉아산 아래 바닥을 생각한다바닥은 하늘이 된다는 것을오르지 못한 것들의 바닥은 뿌리가 되고뿌리들은 땅의 기운이 된다는 것을오늘 하늘 능선에 올라 와서야 비로소 알았다어느 날 태백산에 올라와서야 알았다환웅은 바닥을 행해 내려온 하늘의 아들이라는 것을웅녀는 하늘을 받아 안은 땅의 딸이라는 것을하늘과 땅 두 손뼉 마주쳐 불꽃 튀는 사랑으로탄생된 제국,제국은 곧 바닥의 뿌리들이 모여 사는 곳바람의 숨결들이 모여...
이영춘
오래전 나는 딸의 친구와 가깝게 지낸 적이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노미였다. 밴쿠버에서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해 이삿짐을 막 들여놓고 있는데, 노미가 엄마의 손을 잡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사람 맞을 준비가 안 돼 당황하는 내게 그 모녀는 정원에서 꺽은 꽃 한 다발을 내밀며 간단한 환영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은 쿠키를 만들어 찾아오고 또 다음날도, 그렇게 매일 우리 집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노미가 그...
박정은
미소 2018.10.16 (화)
꽃은식물의 얼굴향기는꽃의 미소 얼굴은사람의 꽃미소는사람꽃의 향기 모든 미소는아름다워라신비롭고아름다워라!  The Smile                                    Bong Ja Ahn                                                                          Flowers...
안봉자
너무 좋은 향기 2018.10.16 (화)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가끔 놀랄 때가 있다. 아주 하찮은, 그리고 아주 작은 것들이지만그것들에서 발견하는 소중한 진리가 빛 바랜 내 삶의 화폭에 신선한 충격의 색깔로 살아나곤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 '그까짓 것쯤'으로 여겨 버릴 수 있는 사소한 것들, 그러나그것들로 인해 참으로 소중한 것들을 얻곤 한다.오늘도 밖에 나갔던 작은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자꾸만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제 누나더러 발을...
최원현
초록 불길에 취한 추억을 꺼내 들고싱그럽던 몽마르뜨 거리를 반추한다가을로 도배한 숲 길 마로니에 아래서 발 밑에 구른 것은 시한 줄 낭만 한 줄무엇을 주어 들까 바람에게 물어보니시한 줄 시한 줄 하여 원고지를 주웠다 낙엽 진 나무 밑이 이리도 적막한가오늘 울음이 타는 시상을 받아 들고산책 길 호숫가에서 가을 한 줄 꿰맨다
이상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