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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화가로 알려진 로제티(D.G.Rossetti)는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풍자한 적이 있다. ‘무신론자에게 최악의 순간은 그가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때라고.’ 무신론자의 가장 나쁜 순간은, 진실로 감사하고 싶은 데 감사할 대상이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감사는 먼저 하늘에 향해 하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들에게 불편한 마음을 줄 수 있는 표현이겠다. 그렇다면, 신을 믿는 종교인들, 신자들의 최악의 순간은 뭘까? 진실로 감사해야...
석창훈
 스키나 크릭에서 수셔티 베이까지 8.6km를 남겨둔 마지막 날 아침. 늦잠 늘어지게 자고 11시 출발!을 선언했는데도 야성이 밴 팀원은 새벽 5 시부터 일어나 부산을 떤다. 허니문 중인 신랑과 새색시 깨지 않게 살짝 몸을 일으켜 발개진 모닥불 앞에서 오늘의 일정을 점검한다. 5 시간 걸리는 구간이라 말하지만 분명 쉽지 않은 길이리라. 우리와 반대쪽을 걸어온 젊은...
글: 김해영 ∙사진:백성현
그 산에 가려거든진달래 작은 씨를 들고 가시라산 굽이굽이 봄그림을 그릴 것이니그 산에 가려거든 단풍나무 씨를 들고 가시라 하늘이 노을을 내리어 가늘 산을 그릴 것이니그 산에 가려거든솔씨 한 톨 들고 가시라 벼랑끝 절경으로 키울 것이니그 산에 가려거든 머루 알을 모아들고 가시라산도 그 뜻을 기리어 흐뭇해 하리니그 산에 가려거든소쩍새와 함께 하시라그 울음...
유병옥 시인
얼멍얼멍한 하늘을 보고 잠에서 깨어난다. 팀원들은 어젯밤 하늘의 비의(秘儀, 신비한 의식)에 초대받은 감동에 취해 꿀떡잠에 빠져있다. 레인저의 야트(천막집)가 있다 해서 주변 정찰을 나선다. 비치 중간쯤 푸드 캐치와 레인저 야트, 그리고 햇볕 채광판이 있다. 게시판에 붙은 타이드 스케 줄을 살핀 후 돌아와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하늘이 며칠 참았던 가랑비를...
글: 김해영 ∙사진:백성현, 홍메이
괜히 갔었잖아제 마음 텅 비어버렸으니사흘밖에 머물지 안했는데도십년은 더 흘러간 것 같고본디 제 마음알게 됐잖아어둠 속에 앉아 있어도어둡지 않고보이지 않던 것들 다 보이는빈 산의 바람소리에 젖어 들던 마음놓고 올 순 없잖아해 돋는 먼동에 슬픔 자우고달빛 닿은 마음으로 살아나던 그리움놓아버릴 순 없잖아비운 가벼움과 그 기쁨모르면 몰랐지알고 나면 놓을 수...
유병옥 시인
 빨간 우의, 파란 우의를 걸친 성현 씨 내외가 나란히 걸어온다. 등이 불룩한 한 쌍의 거북이다. 안개 속에 신혼의 기억들이 아련히 피어난다. 매쉬멜론처럼 살캉거리고 달콤하던 시절, 자줏빛 행복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지.  추억의 백사장이 끝나고 몇 개의 쪽비치 골목을 들락거리면 바다 쪽으로 고개 내민 톰볼로(Tombolo)에 이른다. 어려운...
글 김해영, 사진 백성현
산속의 린다는봄이 오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산모통이 돌아언덕 위의 나무숲에긴 해걸음으로 빛이 살고바람결에도 태초의 이야기가 숨쉬는 그 길에서는 언제나 열 네살 그 나이입니다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나무들이 자라나는 그 푸르름이 언덕을 넘어 갈 때산들이 말하는 이치를 조금씩 알아가면 어느덧 마음의 집은 산입니다늘 새롭게 저무는 노을이 찻잔에...
유병옥 시인
 다행히 크리슨튼 포인트(25.5km 지점)는 검은 자갈돌 아래 잔모래알을 품고 있다. 발치까지 물이 든 줄도 모르고 팀원들은 잘 잔다. 난 밀물과 빗줄기, 신발창 탈착증 염려에 잠 못 자 빨간 토끼눈으로 새벽에 일어나니 하늘이 울먹울먹하고 있다. 그도 밤새 고민했던 걸까? ‘괜찮아, 밑창 떨어질 때까지 가보는 거야. 포기는 언제든 할 수 있는 거잖아.’마침 가져온...
글 김해영, 사진 백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