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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꽃의 바람
2022.09.26 (월)
전화기 너머에서칼과 칼이 부딪치고핏빛 칼꽃이 만발해요동물의 말소리처럼음성도 억양과 색깔이 다 다르죠싫은 소리도 상냥하면 달콤하게 들리고예사말도 거칠면 욱하게 해요꽃잎에 베인 가슴에핏방울이 맺히고팡터질 때마다 성품이 드러나지요카나리아처럼 말하고 싶은데입술이 길길이 칼꽃을 피우니귀를 봉해야 할까입술을 잠가야 할까요.
임현숙
당신의 눈을 아끼고 사랑하라
2022.09.26 (월)
잔디가 제 색을 잃고 맥을 놓아 버렸다.언제나 비가 오려나. 투명한 하늘이 오늘따라 흐릿하게 보인다. 2년 전에 다중 렌즈를 바꾸었는데 또 다시 바꾸어야 하나. 안 봐도 될 것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속절없는 세월에 눈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카페를 운영한 지 열 네 해 째이고, 컴 작업을 좀 많이 하는 편이다. 간단한 건 아이패드와 아이폰으로 해결하는데 수시로 신호가 오고 깜빡이고 부르르 떨고… 어디 눈을 가만두는가. 앞 못 보는...
박오은
노년의 삶
2022.09.26 (월)
외롭지도 그립지도 사랑하고 싶지도 않지노년의 삶 그건 바람이 멈춘 호수 같아마치도 아이스러운 삶으로 되돌아가 있는이제 여유로움의 시간을 걸으며온 집으로 되짚어 하루하루 다가가는 길원점 그 시작의 출발점으로깊어 가는 주름은 나를 버리게 하는 선물나이가 들어가는 그리고 얻는 비움격동의 시간을 지나서야 가질 수 있지봄날 새벽 새들이 저리 바쁘게 지저귀는 건사랑을 찾으려고 보내는 아우성울지 않는 새도 어느 곳에선가 평화를...
김순이
속이 빈 조가비
2022.09.19 (월)
최근에 읽은 프랑스 소설 ‘안남’(安南)을 읽고 종교와 인간에 대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 소설의 원저자는 크리스토프 바타유이고, 이 책을 번역한 이는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화영 명예교수이다. 이분은 원제인 ‘안남’을 ‘다다를 수 없는 나라’라고 명명하였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베트남의 노동운동이 일어난 1787년의 “떠이썬 운동’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과 루이...
이종구
오후
2022.09.19 (월)
내 시야를 간지럽히는 이 태양을좀 더 쬐게 하여 주시옵소서 노을이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습니다 지나는 철새와 간드러진 아이의 웃음벼랑 끝에 달린 풀꽃의 흔들림까지 아직은 만나 손잡고 사랑해야 할 내 생애의 아쉬움이 너무 많습니다 조금만 더 이 햇빛 아래 머물게 하여 주시옵소서.
김경래
모녀(母女) 3대 여행
2022.09.19 (월)
"어우, 짜.김치가 너무 짜.” 19살 딸이 겉 절이 김치를 먹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어떡하지, 요즘 내 입이 이상해…맛을 못 보겠어.” 갱년기가 왔는지 요즘 따라 입맛도 밥맛도 없는 내게 커다란 파도 같은 기억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예전에 엄마에게 했던 말이었다. 엄마가 갱년기를 심하게 앓고 있을 때, 난 엄마의 아픔이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음식이 짜다 달다 라고만 투정을 했었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리고 “안 먹어.”하면서 밥...
허지수
무궁화나무
2022.09.19 (월)
아침마다 피던 꽃 무더기잎새 푸른 칠월 꽃 피어나면서늘바람 불어올 때까지 수천 송이피고 지고 또 피는 무한 꽃 차례올해도 변함이 없을 줄 알았다몰랐다, 내내 기다려 보아도봄 날에 눈이 나고 잎이 피는그런 찬란한 시간 오지 않고무겁고 어두운 기운만이 온몸을휘감아 버릴 줄 진정 몰랐다팔월이 마루에 다 오르도록이파리 하나 없이 텅 빈 그 자리지난 겨울 답치기로 쳐내 버렸던얼기설기 얼크러졌던 가지는가시 못 되어 점점 박여오는데마침내...
강은소
트럭커의 신세계
2022.09.12 (월)
내가 살아온 지난 70여 년은 과거 어느 시대와 비교가 안 되는 천지 개벽의 삶을 살아온 느낌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서울은 6.25전쟁 이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농경사회의 풍경이 남아있었다. 종로통 도로변에는 기와집이지만 골목에는 초가집들이 있어 가을에는 초가집 지붕 갈이를 하였으며, 거리에는 소달구지가 배추나 장작을 날랐다. 집집마다 화장실은 푸세식이라 몇 달마다 변이 차면 똥퍼 아저씨가 와서 치워야 했다. 심지어...
김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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