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정책은 퇴조한 것일까?

문영석 yssmoon@gmail.com

최종수정: 2024-06-28 08:59


           지난 6 6~9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 결과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주요 국가에서 극우 성향 정당들이 약진했다. 이 같은 극우 정당들의 약진 배경으로는 침체한 경제 상황에서 급격한 물가 상승과 저성장 속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유럽인들의 경제에 대한 불만들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급격한 이민자들의 유입도 극우 정당들의 입지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유럽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유입되는 난민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난민들이 몰려들면서 사회·경제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극우 정당들은 일자리와 주택 부족 문제를 이민자 문제와 결부시켜 경제난과 전쟁 피로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의 반이민 정서를 자극해 정치적 입지를 넓혔고 극우파 정치 지도자들이 무언가 희생양을 찾아야만 하는 시점이다. 캐나다도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민이 캐나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44%, 작년보다 6% 증가했다.

 

           1971년 캐나다가 다문화주의를 국가적인 문화정책으로 채택한 이후 급격한 세계화와 더불어 다문화주의는 서구의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수용됐다. 그러나 살림살이가 궁색해지면 마치쌀독에서 인심나듯 외국인들에게 너그러워질 수가 없다. 언제나 정치인들은 팽배한 국민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희생제물이 필요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늘 보아왔다. 이민자들에 의해 형성된 북미나 호주와는 달리 민족국가들이 대부분인 유럽은 이민자들을 사회의 정식 구성원으로 보지 않고수입된 노동력정도로 보고 있다. 특히 소수민족과 종교에 대한 혐오증은 과거 자신들이 다스리던 식민지인들이 몰려와 사회적 안전망을 갉아 먹고 있다는 인식이 보수층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문화주의에 대한 사망선고는 섣부른 판단이며 경제가 회복되면 언제라도 부활할 수 있는 사안이다. 신보수주의의 등장과 함께 현재 다문화주의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지만 자유. 민주사회에서 인권은 어떤 경우에도 훼손되거나 억압할 수 없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소수자들에 대한 권익 보호와 문화적 다양성의 유지 및 보존에서 출발한 다문화주의는 필연적으로 소수자 문제와 부딪히게 된다. 다문화주의는 소수자들을 위한 인권 보호라는 정치적 변호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회의 기득권층으로부터 차가운 비평과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시민사회의 개방성은 평등한 인간 공동체의 기초이며 시민사회의 건강한 발전과 자율성을 담보로 한다. 세계화의 물결은 이제 어느 국가도 고립되어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며 무역을 통한 상호의존도가 엄청나게 증가한 상황에서 문화적. 종교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문화정책은 국제무역과 국가 간 상호협력에도 지대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문화적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하고 지구상의 다양한 문화들이 갖고 있는 특수성과 고유한 가치에 대해 새로운 비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인권이란 모든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이자 문화적 우상 혹은 성역으로 떠올랐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은 상호 간 상충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다문화주의의 기본적 이상인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다수의 횡포 앞에서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인권 보호나 사회 구성원 간의 평등은 사회복지 정책 같은 물질적 혜택만으로 달성될 수 없다. 진정한 평등은 다양한 구성원들을 공평하게 정치나 주민자치 과정에 참여시키고 소수자들을 포용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캐나다는 2001년 홍콩에서 태어난 피난민으로 캐나다에 왔던 에이드리엔 클랙슨과 2005년 아이티 출신의 피난민이었던 흑인 여성 미카엘 장을 캐나다 연방 총독에 잇달아 선임하였다. 내각책임제 하의 국가원수이긴 하지만 난민 출신의 소수민족 여성들을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에 연이어 선임한 것은 캐나다가 만인에게 평등한 기회의 나라임을 온 세상에 공언한 셈이다. 선진국이란 단순히 국민소득의 증가만이 아니라 이 정도의 고양된 시민 의식과 국격(國格)을 가져야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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