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숙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곧 서리가 내릴 세라 청자 빛 하늘을 이고 고구마를 캔다. 배불뚝이 고랑을 타고 앉아 호미 질을 하는 손길이 어느 때보다 넉넉하다. 고구마를 캘 때는 줄기 둘레를 널찍하게 파야 상처를 내지 않는다. 넝쿨이 무성해서 팔 뚝 만 한 수확을 기대했으나 잔챙이 뿐이다. 가뭄이 심했던 올해는 이만한 수확도 고맙기만 하다.
이때 어디선가 툭! 하고 가을이 떨어진다. 보나 마나 알 밤이다. 밤나무 네 그루에 열린 밤 송이가 아람을 벌어 알 밤을 쏟아내고 있다. 그도 시원찮으면 밤 송이 째 떨어진다. 호미를 놓고 밤 송이를 만져본다. 앙상한 가시 속에 꼭지 반대 지점에 열 십자로 거무레한 금이 그어져 있다. 얼핏 보면 산 달이 가까운 임산부의 배를 보는 듯하다. 참 신비하다. 바로 거기가 벌어지면서 알 밤이 나온다. 영락없는 여인의 자궁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밤나무는 제 새끼들을 잉태하여 성장하도록 거친 밤 송이 속에 부드럽고 안락한 아방궁을 준비해 둔 것이다. 밤 송이는 비록 가시로 중무장을 했을지언정 제 속에 키우는 새끼들에게는 최상의 조건을 마련해 준다. 여름 내 잎 속에 꼭꼭 숨겼다가 햇살이 영글면 못 이기는 척 출산을 하는 밤나무는 엄마다.
고구마를 캐다가 알 밤을 줍기 시작한다. 그건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풀숲에, 꽃밭에, 비탈에 떨어진 알 밤을 줍기 위해서는 천하장사도 몸을 구부려 고개를 숙여야 줍는다. 바람이 한바탕 불고 가면 선물이 쏟아진다. 나는 이 밤을 얻기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퇴비를 주거나 소독을 하거나 심지어는 풀 한 포기 뽑아준 일이 없다. 그럼에도 밤나무는 풍성하게 보시를 한다. 밤을 주어보면 손안에 느끼는 중량감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눈을 감고 조용히 밤나무에게 경배를 한다.
다시 고구마를 캔다. 제법 큰 것은 줄기 밑에 직립해서 요지부동이다. 삼 형제, 사형제가 서로 어깨를 겯고 단합된 모습을 뽐낸다. 이럴 때 손바닥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먼저 제일 큰 놈을 잡고 흔들어 본다. 말하자면 타진이다. 끄떡도 안 한다. 그러면 고구마가 깔고 앉은 옆구리 흙을 살살 파낸다. 또 흔들어본다. 자칫하다가는 부러져버려 조심스럽다. 이렇게 차례로 캐 놓은 놈을 보면 왜 그리 대견한지, 잘 키운 자식들을 보는 느낌이다. 아마도 우리 자식들도 서로 의지해 험한 세상을 잘 걸어가 달라는 염원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걱정이다. 제비 새끼들이 입을 벌리고 엄마 아빠가 물어다 줄 먹이를 기다리 듯 이맘때면 우리 자식들도 고향에서 보내는 택배를 기다릴 텐데, 올해는 모든 게 흉작이라 다섯 상자를 채우려면 진땀 나게 생겼다.
고구마는 겸손한 식물이다. 여름 내 비닐로 씌운 흙 속에서 묵묵히 자양분을 받아 새끼를 키우지 요란을 떨지 않는다. 날이 가물거나 바람이 몰아치거나 줄기 들을 땅에 부복 시키고 제할 일만 한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번듯한 작품을 지상에 올려놓는다. 배고픈 이에게 한 끼의 행복한 식사가 된다. 고구마처럼 겸손하고 후덕한 일생이었으면 좋겠다.
짧은 해가 서산을 넘을 때면 하늘은 온통 석양으로 물든다. 두 골 이랑은 캐 놓은 고구마로 그득하다. 먹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배부르다. 담을 그릇을 가지러 뒤란으로 돌아간다. 거기에는 쇠잔해진 오이 넝쿨이 덕을 의지한 채 말라 있다. 한 백 년 쯤 땅속에 누워 탈골해 버린 모습이다. 무성하게 잎 피우고 열매 맺어 우리 집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었던 채소다. 오이 덕 앞에서 가만히 합장한다. 한 생애를 아낌없이 소진해 버린 어머니를 만난다.
가을은 결코 혼자 온 게 아니다. 여름이 남기고 간 결과물이다. 가을 깊어가는 나이에 허술하게 보낸 여름을 후회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밤나무 아래서, 고구마 밭에서 경배하는 것은 자연이 알려주는 스승 다움 때문이다. 들녘에 벼 이삭도 산골 다랑어 밭에 수수 이삭도 너붓이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명이 뿌리내리게 해 준 대지에게 햇빛과 비와 바람으로 잘 키워준 위대한 섭리에게, 그리고 고달프게 매달려 가꾸어 준 농부에게 바치는 경배다. 나도 지금 만추가 되어 천지 만물에게 경배하고 싶은 은혜로운 시간 위에 있다. 내일이 어떤 모습으로 올지 모르지만 이 가을 앞에서 만은 아기가 되어 철 없이 뛰어놀고 싶다.
가을에 생식력 있는 것들은 모두 만삭이다. 사과나무는 빨갛게 익은 사과를 주렁주렁 매달고 곧 몸을 풀 기세다. 어디 사과 뿐 이랴, 발 뿌리에 채이는 풀 씨들도 만삭이 되어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촤르르 몸을 푼다. 하여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 아니라 여성의 계절이다. 출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 인지를 몸소 보여주는 모성의 계절이다.
자금 등 뒤로 불어와 채근하는 소슬 바람에 길을 떠나려고 짐을 싸는 사람은 먼저 그대의 어머니에게 머리 숙여 경배하고 집을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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