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밴쿠버 신춘문예 공모전 대상작
“다음 역은 미림 역,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후 하차 바랍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달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사라진 후, 한 달 보름 만에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약속 시간에서 이미 십 분이나 늦었다.
‘따돌려야 해!’
약 백 미터를 더 달려 편의점에 쓱 들어갔다.
‘1초 2초 3초…10초!’
주위를 살핀 후 편의점을 나와 다시 뛰었다. 혹시라도 있을 미행자를 따 돌려야 했다. 엄마와의 만남이 탄로 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헉헉!”
나는 헐떡이며 빨간 신호등 앞에 멈추었다. 대각선 방향에 노란색 간판의 ‘엄마 손’ 빵집이 보였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빵집 문을 빠끔히 열고 들어갔다.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엄마가 손을 흔들었다. 뛰어가 엄마 품에 확 안기고 싶었지만, 말없이 사라져 버린 엄마에 대한 분노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엄마, 내가 좀 늦었죠? 복지관 앞에서 참견쟁이 세미 외할머니가 버스를 타시는 거예요. 다행히 사람이 많아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세미 할머니가 꼭 뒤따라올 것 같아서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뛰어왔어요.”
나는 어색한 공기에 막 떠들었다.
“그래, 고생했네. 엄마가 우리 지우 많이 보고 싶어서 보자고 했어.”
엄마가 나를 안으려고 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아직 내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미행자는 없었어요. 비밀은 지켜질 테니 안심해도 돼요.”
“다행이네. 배고프겠다. 엄마 딸 크림빵 좋아하지?”
10월이 끝나가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여느 날처럼 동생과 공부방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여는데 엄마의 고함 섞인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무슨 생각으로?”
나는 놀란 동생 손을 잡고 까치발을 한 채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누나, 왜 그래?”
“쉿!”
나는 동생에게 주의를 주었다.
‘무슨 일이지? 엄마 아빠가 왜 싸우지?’
동생이 유치원에 들어간 지난봄,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엄마는 아침마다 콧노래를 불렀다.
“어서 서두르자, 우리 예쁜이들!”
“엄마는 공부하는 게 그렇게 신나? 난 공부가 싫은데.”
동생은 행복해하는 엄마를 신기해하며 묻곤 했다.
“그럼, 좋지!”
그렇게 공부하는 게 행복하다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졌다.
‘혹시 할머니가?’
옆 동에 사는 할머니는 가끔 엄마를 불러 청소와 반찬을 시켰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엄마가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다.
“애 엄마가 집에서 살림이나 잘하면 되지, 어딜 그렇게 나다녀!”
할머니는 대 놓고 엄마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
그리고 아빠와 다툰 그날, 엄마가 사라졌다.
엄마가 없는 집은 텅 빈 학교 운동장 같았다. 말을 잃어버린 아빠는 혼자 술 마시는 날이 점점 늘어 갔다. 엄마 얘기를 묻고 싶지만, 할 수가 없었다.
“지우야, 동생 잘 챙기고 공부 열심히 하는 게 힘든 아빠 돕는 거야. 네 에미가 밖으로 도니 이런 사단이 난 거야.”
가끔 반찬을 만들어 오는 할머니는 잔소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지우야, 혹시 가족들 몰래 엄마 만나러 올 수 있니?”
나는 분명 엄마가 미웠는데, 마음과 달리 심장이 제 맘대로 콩콩 뛰었다. 그리고 드디어 엄마를 만났다.
“밥은 잘 먹고 다니고? 동생은?”
“왜 말도 없이 사라졌어요? 엄마는 우리가 잘 지낼 거로 생각해요?”
나는 마음과는 달리 대뜸 쏘아붙였다. 이렇게 대답하려 한 게 아니었다. ‘우린 괜찮고, 엄마는 어떻게 지내냐?’고 물을 작정이었다.
“그렇구나….”
엄마 얼굴이 많이 수척해 보였다. 못 본 척 테이블에 놓인 크림빵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목과 가슴이 막혀 왔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 괜스레 코끝이 찡해 버블티에 꽂혀있던 빨대를 힘껏 빨았다.
‘후루룩후루룩!’
‘하나, 둘, 셋….’
나는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엄마를 원망하고 있던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엄마랑 할 얘기도,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마카롱을 사서 건네주었다. 단 걸 좋아하는 아빠와 지민이를 위해 엄마가 유일하게 굽는 빵이 마카롱이었다. 고소한 마카롱 굽는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지는 날은 아빠의 퇴근도 빨랐다.
“우릴 버리고 갔으면서 마카롱은 왜?”
꾹꾹 눌러뒀던 말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엄마가 눈물을 훔쳤다. 엄마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엄마가 빵집 앞에서 넋 나간 사람처럼 서 있었다. 마음속에 꼭꼭 닫아뒀던 감정들이 고개를 들고 일어섰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아팠다. 되돌아가서 엄마에게 안기고 싶었지만, 마음과는 달리 엄마를 뒤로하고 내달렸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었다.
“최지우, 네 아빠 첫사랑이랑 바람났다며? 너 새엄마 생겼다며?”
소문쟁이 세미였다. 세미는 작년 3학년 때 내 단짝인 소정이를 고아라고 소문을 내고 다녀 다툰 뒤, 나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소정이는 엄마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할머니랑 살고 있었다.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급식 판을 떨어뜨렸다.
“쨍그랑!”
“뭐, 뭐야?”
아이들이 소란스러운 소리에 몰려들었다.
“아니거든! 너 어디서 그딴 소리 들었어?”
“호호! 등잔 밑이 어둡지.”
‘아빠가 바람이 났다고?’
큰소리는 쳤지만, 너무 놀라 온몸이 얼어버렸다. 어떻게 급식실을 나왔는지 기억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계단에 가서 앉았다. 소정이가 다가와 내 손을 꼭 잡았다. 소정이 손에 끌려 교실로 돌아갔지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모두 내 뒤통수에 대고 수군대는 것 같았다. 방과 후 종이 울리자마자 교실을 나섰다. 신발장 앞에서 세미와 그 일당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이야. 그래서 지우 엄마가 집을 나갔대.”
“와, 대박!”
아이들의 말이 화살처럼 가슴에 박혔다. 나는 운동장으로 내달렸다.
“지우야! 같이 가자!”
나를 부르는 소정이를 뿌리치고 달렸다. 아파트 정원 벤치에 앉았다. 아빠한테 따지려고 전화기를 꺼냈다. 전화기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아니야, 아닐 거야!’
나는 무서웠다. 결국 전화를 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한 말이 생각이 났다.
‘네 에미가 밖으로 도니 이런 사단이 난 거야.’
“지우야!”
소정이가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난 소정이 어깨에 기대어 흐느꼈다.
“지우야, 우리 만화방 가자. 네가 좋아하는 My Little Princess 새로운 시리즈가 나왔다더라. 오늘 실컷 만화나 보자.”
그 말에 나는 울음을 멈추고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My Little Princess’ 시리즈를 골라 자리에 앉았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만화였는데, 글자들이 머리에 둥둥 떠다녔다.
거리가 온통 반짝이는 불빛과 캐럴로 물들어 갔다. 돌아오는 토요일은 두 번째로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엄마를 만날 생각에 공부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우, 너 여기 좀 앉아 봐라.”
갑자기 저녁에 할머니가 와서 말했다.
“너, 네 에미 만났니? 세미가 네가 친구랑 하는 말 들었다는데. 토요일에 또 만날 거라며? 엄마 만나면 말해. 네 에미가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고.”
“제가 경솔했어요. 어머니, 지우 엄마가 오해할 만했어요.”
아빠가 거실 구석에 시들어 가는 벤저민을 응시한 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해라구요? 어떻게 그런 걸 오해라고 할 수 있죠?”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뭐야? 나 빼고 엄마 만나러 외할머니네 갔다 온 거야?”
동생은 엄마가 외할머니가 아파 다니러 간 줄 알고 있었다.
“흐어엉! 나도 갈래! 엄마 보고 싶단 말이야!”
고집을 피우는 동생 손을 잡아끌고 방으로 들어왔다.
“알았어, 너도 데려갈게. 그러니 그만 울어.”
“진짜지? 얼른 손가락 걸고 약속해!”
“카톡! 카톡!”
“지우야, 토요일 엄마랑 만나는 거 잊지 않았지?”
엄마의 문자에 답장해야 하는 데 아빠가 허락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다음 날 저녁, 나와 동생을 바라보던 아빠가 물었다.
“엄마 보고 싶니?”
“아빠, 저도 다 알아요. 하지만 전 아빠를 믿어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 지민이가 물총처럼 말을 뿜어댔다.
“아빠, 나는 하늘만큼 땅만큼 엄마 보고 싶어. 엄마가 해주는 돈가스랑 마카롱도 먹고 싶고. 엄마랑 크리스마스 선물도 살 거야! 아빠도 엄마 보고 싶지?”
동생의 기습 질문에 아빠 얼굴이 빨개졌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토요일 아침, 당직인 아빠는 출근하고 없었다. 그런데 식탁에 조그만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지우야, 동생이랑 엄마 만나고 오렴.”
신나서 조잘대는 동생 손을 잡고 온누리 백화점 역에서 내렸다.
“누나, 다 왔어? 엄마 빨리 보고 싶다.”
“지민아, 저어기 봐!”
나는 저만치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서 있는 엄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엄마다. 정말 엄마가 있어! 누나, 우리 엄마 정말 맞지?”
동생이 잡고 있던 내 손을 뿌리치고 엄마를 향해 달려갔다.
“엄마!”
엄마도 우릴 발견하고 달려왔다. 지민이가 엄마 품에 확 안겼다.
“엄마 왜 이제 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엄마 나빠!”
“그랬구나, 우리 지민이, 그 새 키가 더 컸네! 엄마도 지민이 너무 보고 싶었어.”
엄마랑 지민이는 부둥켜안고 자석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어색하게 한 걸음 뒤로 서 있던 나도 살짝 동생 틈에 끼여 엄마에게 안겼다. 엄마가 팔을 크게 벌려 우리를 더 꼭 안아줬다. 내 마음속 얼음이 사르르 녹으며 가슴이 뭉클했다.
“엄마가 정말 사랑해! 우리 지우랑 지민이!”
“나도 엄마랑 누나 우주만큼 사랑해!”
‘나도 엄마 사랑해요. 지민이도. 그런데 엄마, 뭔지는 잘 몰라도 엄마가 오해하고 있는 게 있대요.’
말이 한참을 목에서 맴돌았다. 엄마가 사준 아빠 목도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민아, 서둘러! 지금 출발할 거야! 안 나오면 우리끼리 간다.”
“안 돼! 잠깐만 기다려. 헤헤헤!”
봄이 오는 길, 한참을 달려 ‘청주’라고 쓰인 표지판이 보이는 도시에 도착했다. 외할머니집이다. 마당에 들어서자 새콤달콤한 돈가스 소스 향과 고소한 마카롱 굽는 냄새가 났다.
“엄마다!”
앞서가던 나를 제치고 지민이가 한걸음에 뛰어가 현관문을 열었다. 돌아보니 아빠가 멋쩍게 웃고 있었다.
“아빠, 누나! 빨리 들어와. 엄마야. 엄마가 돈가스랑 마카롱 해놨어. 야호! 신난다.”
“어서 들어가요. 아빠!”
나는 아빠 손을 끌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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