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이라는 특유의 능력을 가진 인간의 적응력은 대단하다.
지난해 이맘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미화 50달러를 돌파하면서 밴쿠버의 기름값이 리터당 1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던 당시, 소비자의 반응은 덤덤했다. 2005년 8월 29일, 유가는 배럴당 미화 70달러를 돌파하고 밴쿠버의 기름값은 리터당 1.10달러에 달하면서 한번쯤 기름값에 대한 아우성이 요란할 법한데도 별 요동이 없다.
캐나다인들은 기름값 폭등에도 ‘이럴 수는 없다’는 호들갑보다 ‘이 보다 더한 경우도 있었다’며 놀랍도록 시세에 순응한다. 기름값 때문에 운전을 중단하거나 소형차량으로 바꾸는 경우도 많지 않다.
경제 전문가들은 1983년 오일쇼크 당시 배럴당 40달러 수준이던 기름값을 현재의 물가수준으로 환산하면 배럴당 81달러까지는 여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물가상승에 대한 압박이 크지 않은 상태인데다 정보통신(IT)을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의 변화로 20여년전의 위기의 재발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분위기다.
사실 캐나다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세계 2위의 산유국이다. 알버타주를 중심으로 한 오일샌드(oil sand)의 매장량은 1744억 배럴에 이른다. 캐나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오히려 표정관리 하느라 바쁘다.
오일샌드는 한때 정제에 필요한 기술과 채산성 문제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채산성 한계로 여겨진 배럴당 20달러의 3배를 넘는 국제유가는 캐나다 경제발전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시설확충과 함께 향후 10년간 생산량을 대폭 늘일 계획으로 해외 투자자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오는 9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밴쿠버 방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기름값만큼이나 치솟은 주택시장은 이미 일부에서 가격거품 붕괴론이 제기됐고 ‘조정’을 넘어서는 ‘냉각’을 점치지만 시장의 열기는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투기’라는 도덕적 잣대는 ‘합리적 기대소비’ 앞에 무색하고 가격폭락으로 인한 학습효과도 시세의 분출을 잠재우지 못한다. 조만간 가시화될 금리인상도 시장에서 충분히 예상하고 있는 수준과 속도일 것이라는 전망때문인지 큰 반향은 없어 보인다.
기억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일에는 자상함을 보이며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에는 태만하다. 발타자르 그라시안(Balthasar Gracian Y Morales) ‘세상을 보는 지혜’ 중에서
/이용욱 기자 블로그 blog.vanchosun.com/senn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