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간의 일정으로 밴쿠버를 방문하고 있는 해군순항훈련함대가 27일 밴쿠버 시내에서 갖기로 했던 의장대 시범 및 군악대 시가행진은 결국 무산됐다.
총을 빙빙 돌리기도 하고, 변화무쌍한 형태의 군무를 일사불란하게 보여주는 의장대 시범은 일반인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시가행진과 함께 국군의 명예와 국위 선양에도 앞장서 온 대표적 행사의 하나다.
이런 행사가 무산된 것은 밴쿠버 시청과의 협조과정에서 불거진 몇가지 문제 때문이다. 행사를 준비해왔던 밴쿠버 총영사관은 무산된 이유를 “행사당일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예보, 협의장소가 관중동원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보험금 등의 비용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군의 행사가 우천으로 중단되는 경우는 없으며, 의장대와 군악대 시가행진이 갖는 의미가 관중의 수나 신경 써야 하는 ‘쇼’에 불과하지도 않다. 또, 지난해 수교 40주년을 맞아 긴밀한 상호 협력체제를 자랑하는 양국간 외교관계와 수출 2000억달러 돌파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한국의 위상을 감안할 때 관중동원과 비용부담은 무산된 사유치고는 너무 궁색해 보인다.
더욱이 해군순항훈련함대가 러시아 입항기간동안 한인이주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의장대 시범과 군악대 시가행진은 물론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태권도 시범, 해군 홍보단 '사물놀이팀'의 공연을 가졌던 것에 비해 밴쿠버 행사가 맥이 빠진 모습인 것도 같은 이유때문이다.또 이는 해군순항훈련함대의 사기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규모는 줄이되 환영행사는 성대하게 치러 순항훈련함대의 방문을 한인동포사회 전체의 축제로 만든다"며 기자회견까지 자청했던 밴쿠버 환영준비위원회는 변경된 일정조차 제대로 알리지 않아 교민들의 원성을 샀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사는 역으로 변경일정을 수소문하는 촌극까지 빚었는데 준비위원회 기획 관계자는 “신문에 난 광고 수정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며 “일일이 알리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면서도 “준비위원회도 한정된 예산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다. 공식 일정변경이 공문도 없이 광고수정만으로 가능하리라고 판단했다는 것도 문제지만 행사를 치르기에만 급급 했을 뿐 어떤 의미가 있는 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분위기였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기상을 고려해 실내에서 진행된 첫날 공식 환영행사에 많은 교민이 참여해 전례없는 성황을 이루었지만 비용을 반반 부담해서라도 의장대 시범과 군악대 시가행진은 열렸어야 하는데 모양새가 우습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이 점에 관해서는 해군사관학교동문회 주최만찬에 참석한 한 장교의 말을 우리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그는,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방문하는 곳마다 따뜻하게 맞아 주시는 동포들을 생각하며 가슴 뭉클한 애국심과 자긍심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라고 했다.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