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에 대한 단상
"공짜 치즈는 쥐덫 위에만 있다" 세상에 공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이자 무슨 일이든 대가가 있기 마련이라는 러시아 속담이다. 속담이 주는 교훈과는 달리 세상에는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따라 타인을 돕고 지원하는 '기부'라는 이름의 공짜가 존재하기도 한다. 물론 세제혜택이라는 반대급부가 있긴 해도 대가라고 말 하기는 어렵다.
밴쿠버 한인사회에서는 우리 모두의 소망을 함께 나누기 위한 행사가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데 한국과 캐나다의 수교 40주년이라는 의미가 더해짐에 따라 행사의 규모도 커지고 모금활동도 부쩍 많아졌다. 그렇다 보니 한쪽에서는 '동포사회의 경제적 능력에 비해 기부에 관해서는 상당히 인색하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기부를 원하는 단체와 모임이 너무 많고 잦아 오히려 도움이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살아 있는 정신이 아쉽다는 측에서는 '잘해 보려고 하는데 도와주지는 못 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아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고 '공짜 치즈는 쥐덫 위에만 있다'는 측에서는 '작년에 왔던 각설이'쯤으로 매도하는 분위기다.
당연히 모금활동을 통해 추진하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기도 하고 적잖은 성의를 표시한 뒤에도 이어지는 다른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이 되는 경우도 생긴다. 한인사회가 좁다 보니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에 안면 몰수할 수도 없는 처지인데 요즘 들어서는 이를 이용하는 듯해서 더 불쾌하다는 이야기가 이민 오신지 오래된 분들 사이에서 자주 들린다. 심지어는 일부 단체와 개인의 모금활동이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었으며 허울좋은 명분만 내세우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경우도 있다며 '이 참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벼르기도 한다. 이 같은 균열이 비단 모금활동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함을 더한다.
이웃, 특히 우리 한인사회의 화합을 위한 배려와 봉사정신이 약화되고 틈새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상호간 관점의 차를 극복해야 할 듯하다. 자신이 속한 단체만이 최고이고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식만 팽배하고 겉치레에 치중한 채 내실을 기하지 못할 경우는 한인 사회에서 완전히 외면 받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기부는 희망이라는 밭에 두는 거름이며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것은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으로 모든 것을 저울질 하려는 이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것 같다. 신록의 계절 5월,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며 다시 꾸는 하늘색 꿈이다.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