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Queer)
온타리오주 항소법원의 '동성결혼 허용' 판결에 대해 캐나다 연방정부가 항고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캐나다는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세계 세 번째 국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이 문제는 캐나다 전역을 찬반 양론의 극심한 대립으로 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결혼의 의미에 동성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발상은 반 성경적이며 말세의 징후"라는 사고와 "소수자 차별을 철폐하고 동성결혼의 인정은 물론 입양권까지 완전한 평등실현"이란 주장의 대립이 예사롭지 않은데다 여론조사도 조사기관마다 다르게 나오는 실정.
크레티엥 총리의 말대로 이것이 '사회의 진화'인지 아니면 '시류'에 편승한 것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지만 '정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해 달라'는 캐나다 동성애자들의 요구는 반세기 이상의 긴 투쟁의 결과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동성결혼 불허'에 찬성한다는 이유로 이를 시대 조류를 거스르는 반평화적인 사고로 치부하는 일도 자제해야 한다. 물론 동성애도 사랑의 한 형태다. 그러나 여전히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동성애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불편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동성애에 대한 이해가 비교적 넓은 밴쿠버에 살면서도 이 같은 시대 조류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몰라도 심정적으로는 공감하기 힘들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다. 그만큼 '동성애'라는 단어는 아직 남성과 여성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어지럽히는 일탈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동성애'에 대한 탄압과 폭력이 자본주의사회 발전과 더불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라고 흥분하는 것 또한 금물이다. 법적으로는 조화롭게 해결 해야 할 기본권 상충관계의 문제지만 '동성애'라는 성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논리적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성애'를 지칭하는 '퀴어(queer)'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가 '기묘하다'는 뜻이라는 점이 침묵하는 다수의 정서(情緖)라면 정서다.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