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길
두 딸과 아내를 캐나다로 보내고 혼자 지내온 40대 ‘기러기 아빠’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은 밴쿠버 동포사회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조기유학의 실익을 놓고 설전이 벌어지는가 하면 한국의 교육제도의 문제점은 물론 일시적 유행을 몰고다니는 한국인의 집단적 사고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심근경색 수술을 받고 치료 중이던 남편을 떠난 아내에 대한 질책도 높았고 한 달에 400만원씩 들어가는 교육비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자녀와 아내를 외국에 보내놓고 혼자 생활해 온 ‘나홀로 가장’에 대한 동정도 화풀이마냥 쏟아졌다.
한 독자는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뼈저리게 느끼며 허리가 휘는 우리의 아버지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고 했고 “아이들을 외국에 보낼 수 밖에 없다면 차라리 온 가족이 이민을 떠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또, ‘기러기 아빠’를 양산 하는 조기유학은 경제적으로 이득이 없고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밴’이라는 필명의 독자는 아예 “남들이 하니 나도 한다는 사고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열심히 체력단련하며 교양서적 많이 읽히고 그냥 한국에서 학교 공부에 충실하게 하라”며 조기유학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난해 밴쿠버 웨스트지역으로 아들, 딸과 함께 온 Y씨는 “아이들 핑계로 내 욕심만 챙기려 했다”고 후회했다. 그녀는 “평소 꿈꾸었던 해외유학과 자녀들의 영어교육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었지만 가족이 치루고 있는 희생이 너무 커 돌아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조기유학을 결정할 당시만 해도 “외국에서 영어를 배우고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게 하려는 부모 마음”을 강조했다는 Y씨는 조기유학 1년의 성과에 대해 주저하면서도 ‘친구 따라 장에 가기’식으로 비춰지는 것도 경계했다.
결국, 개개인의 앞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미래에 대한 투자’도 ‘큰 도움은 없지만 손해 본 것도 없다’는 정도가 소득이라면 조기유학은 여전히 ‘길 없는 길’이라고 여겨졌다.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